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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그럼에도 모든 것은 변한다. 본문
9월 26일 월요일 저녁, 고려대 생활도서관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의 강연이 진행됐다.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가 주최하고 고려대 인권연대국에서 공동 주최한 이 강연은 시작도 하기 전에 평지풍파를 겪게 되었다. 최근 출근길 투쟁으로 인해 ‘부정적 인식’이 커진 박 대표를 연사로 부르는 데 대한 반발이 있었던 듯하고 이로 인해 인권연대국의 국장단 해임안이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임안을 제안한 고려대 서울캠퍼스 중앙비상대책위원회는 국장단 해임 사유로 ‘5·18 광주 역사기행에서의 회비 남용’ 및 ‘사전 논의 없는 강연 인사 섭외 및 강행’을 들고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강연 인사’는 물론 박경석 대표이다. 그가 고려대에 온 것이 처음도 아닌데, 이번 일이 이 정도로 큰 논란거리가 되고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박경석 대표의 인지도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방증이라 생각된다.
물론, 오랜만에 스멀스멀 올라오는 고대생들에 대한 해묵은 원한을 참기는 쉽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두고 고려대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전락했는지 혀를 끌끌 차는 졸업생들이 많았지만, 과연 이들이 언제 달랐던 적이 있는가? 자의적으로 규정한 편협한 정상성에서 이탈한 모든 것을 앞장서서 비하하면서도,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정의로운 나’라는 뽕에 취하게 해주는 이벤트에는 무지성적으로 참여하는 징글징글한 엘리티즘. 그래서인지 이들의 반복되는 행동에 크게 화나지조차 않는다. 끝없는 분노에 대해 말하는 대신 박경석 대표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하는 데 이 지면을 쓰고 싶다.
박경석 대표는 인권 활동가들 사이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잔뼈가 굵은 활동가로, 장애인 운동의 굵직한 이슈를 도맡아 기획하고 추진한 인물이다. 1993년 장애 성인의 교육을 위해 장애인야간학교 ‘노들야학’을 설립하여 최근까지도 교장 선생님의 역할을 맡았었고, 올해 이슈가 되었던 이동권 투쟁을 몇십 년 동안 쉬지 않고 계속해온 인물이다. (지하철 탑승 시간을 지연시켰던 출근길 투쟁만이 아니라 지하철 승강기와 저상버스 확충을 위한 운동을 이끌어왔으며,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내려갈 수 없는 이동장애인의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 명절에는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집회를 한다) 그 외에도 부양의무제·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그리고 장애인의 자립 및 ‘탈(脫)시설’을 위해 종종 온몸에 쇠사슬을 감고 과격한 투쟁을 해왔다.
박 대표의 과감한 투쟁성은 항상 눈길을 끌었지만 나는 오히려 그의 꿋꿋함에 위안받곤 했다. 당장 어제 만났던 동료가 죽고(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2012년 故김주영 활동가 화재 참사·2017년 신길역 리프트 추락 참사…), 약속은 계속해서 번복되는, 내 몸 하나 투신해봤자 변하는 것 하나 없는 거대한 사회에 계속해서 몸을 부딪쳐가며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무리 삶을 소진해도 그 무엇도 바꾸지 못한 시간들 속에서 뼛속까지 지쳤지만,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도 선뜻 다른 길을 택하지도 못했던 나는 그에 대한 대답이 절실했다. 박 대표는 자신 또한 아무리 노력해도 손쉽게 제자리로 돌아와 버리는 사회 속에서 무력감을 느끼지만, 십 년이 지나고 또 이십 년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고 말했다. 바람불던 여름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어쩌면 그리 대단치 않을지도 모를 이야기를 들었던 그 날의 장면은 아주 오랫동안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너무나 소중한 말들이었기에 차마 누군가에게 얘기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날의 기억 없이도 삶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기에 그 기억들을 놓아주고 싶다. 어떤 것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하고야 만다. 이 말이 또 다른 누군가를 구원해줄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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