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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본문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며칠 전 프랑스에 도착하여 평소와는 사뭇 다른 환경에서 11월호의 사설을 쓰고 있다. 도착한 첫날 파리 외곽의 한 지역에 머물게 되었는데, 도심이 아니라곤 하지만 도시 전체가 너무 어두워서 당혹스러웠다. 나중에 알아보니 최근 프랑스의 자체적인 전력난과 더불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원조로 인해 전력 소비량을 30퍼센트가량 줄였다고 한다. 이번 호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주제로 글을 쓰겠다고 일찌감치 점찍어 두었지만 과연 휴양의 나라에서 전쟁에 관한 글감을 제대로 떠올릴 수 있을지 난감하기도 하였는데, 현실에서 멀리 떠나왔다고 생각한 이곳에서 오히려 전쟁의 기운을 더 물씬 느끼게 된다. ‘유럽의 균형자’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이리저리 애쓰고 있는 프랑스의 미묘한 입장까지는 세세하게 알 수 없었으나, 파란 하늘에 어지럽게 빗금 그어진 전투기 비행운들로 대강의 분위기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학부 시절 선배들의 강요(?)로 종종 반전·평화를 주제로 한 발제를 준비하곤 했는데 당시만 해도 평화라는 말은 너무나도 어색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어설픈 이상론이라는 느낌이라 내가 쓴 글임에도 마냥 동의하기 어려웠다. 평화라는 대전제는 당연히 수용하지만, 그 단어는 어딘지 막연하고 추상적이어서 눈앞의 현실에 적용할 만한 개념은 아니라고 느꼈다. 전쟁이라는 말조차 먼 과거 속의 일처럼 생각되던 차에, 각국이 국력을 갖추는 노력은 세계적인 군비 경쟁을 불러올 뿐이라는 말이나 평화를 위해서는 ‘방어 전쟁’조차 용납될 수 없다는 말들은 모조리 낯설고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역사 시간의 상당 부분을 서구 열강들이 합심하여 식민지 조선의 이권을 침탈한 역사를 배우는 데 할애한 전형적인 한국인으로서, 강대국들의 도움을 바라기보다는 자체적인 국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알게 모르게 뿌리내려 있었던 것 같다.
전쟁은 어느새 9개월째에 접어들었고, 이제야 반전(反戰)과 평화(平和)라는 말들이 나에게도 물질성을 갖추어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핵전쟁의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그 우려가 결코 과장이 아닌 듯하다. 전황이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어려운 이 상황에서 제기되는 젤렌스키의 선제공격론이나 푸틴의 억지스러운 ‘더티밤(dirty bomb)’ 주장은 제3차 세계대전이나 핵전쟁에 대한 불안감마저 증폭시키고 있다. 러시아의 명분 없는 무리한 공세와 그것이 앞으로 불러올 여파를 굳이 고려하지 않더라도, 악마화되는 푸틴과 그에 맞서는 젤렌스키의 구도 속에서 많은 이들이 우크라이나의 항전 결정을 꽤나 우호적으로 평가해왔다. 그러나 책임론은 전쟁을 중단하는 데 필요한 논리이지, 그것을 지속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
전쟁과 죽음 앞에서 선악의 구분이나 인과 관계는 무의미해진다. 그렇기에 이상론보다도 더 비현실적인 참상 앞에서 사람들은 결국 평화를 택해야 하며, 또 택할 수밖에 없다. 전쟁을 압박하기 위한 총파업의 경험이, 먼저 배신하는 쪽이 승자인 상황에서 서로를 믿었던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베트남전 보도 이후 전세계로 퍼져나간 반전운동의 기억이 그것을 증명한다. 우리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원인을 짚는 데 익숙하지만 정작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연쇄들은 어이없는 믿음이나 사소한 결단에 좌우되곤 한다. 누군가에겐 비웃음을 살지도 모르는 이상론이 이곳에 도래하기를,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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