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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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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면/기획 인터뷰

SPC-민주노총 사회적 합의, 그 5년간의 투쟁 속으로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12. 12. 17:39

 

SPC-민주노총 사회적 합의, 5년간의 투쟁 속으로

지난 10, 국내 대형 식품회사인 SPC그룹에서 연이은 산재가 발생했다. SPC는 노동자 부족으로 인한 야근 및 장시간 노동 구조, 생산량을 맞추기 위한 철야 강행, 근로 중 부상을 당해도 바로 조치하기가 어려운 노동환경으로 지속적인 비판을 받아온 바 있으며, 이에 최근에는 SPC에 대항하는 법적·사회적 움직임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법적으로는 올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법)에 의한 처벌 가능성이 주목을 받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이번 사건의 본질을 살펴보고 현 사태를 종합적으로 톺아보고자 파리바게트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를 만났다.

권영국 변호사 ⓒ 본인제공

노동자와 시민사회 연대가 이끌어낸 성과

지난 113, 전격적으로 파리바게트와 민주노총간의 노사합의가 이루어졌다. SPC 본사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을 시작한지 14개월만이다. 이번 합의를 이끌어내기까지의 과정과 그 사회적 의미에 관해 물었다.

이 사회적 합의를 말하려면,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당시 파리바게트 가맹점에서 일하는 제빵사가 불법파견이기에 회사 측에서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고용노동부의 지시가 있었는데, SPC는 사회적 합의를 명목으로 우선 사태를 봉합하기에 바빴습니다. 이 합의는 원래 합의 날짜로부터 3년 뒤인 2021111일까지 이행이 완료되어야 했었죠. 그런데 막상 그 기한이 다 되어 오니까 SPC 측은 일방적으로 합의를 이행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는 오히려 이에 문제 제기를 한 노동자들을 탄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SPC가 문제를 해결할 의사를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 이 사례를 통해 명징하게 드러난 것이죠. 노동부나 검찰의 수사도 지지부진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파리바게트 임종린 지회장은 사회적 합의 이행, 노동기본권 보장 및 민주 노조 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53일간 단식 투쟁을 했고, 저는 옆에서 이 투쟁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노동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 좀 더 폭넓게 시민사회와 손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곧바로 노동시민사회 연석회의를 소집했고, 전국 행동을 네 차례 정도 하면서 파리바게트의 노동권 침해 문제를 시민사회에 알리려고 노력했죠.

물론 그러한 과정 속에서 공동 행동의 규모가 확대되었고 시민사회의 연대도 어느 정도 이루어졌습니다만, 여전히 시민들은 SPC와 관련된 문제를 노사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컸습니다. 그런데 최근 SPL 산재 사고가 발생하고 그 안에 있는 노동환경의 문제가 전면적으로 부각됨에 따라, 시민들의 인식에도 큰 변화가 찾아옵니다. 시민들이 노동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비윤리적인 기업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며 불매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불매는 공동행동이나 노조가 주도한 것이 아니었어요. 시민들의 자발적인 불매운동은 기업 자체에 압박을 가했고, 하루 빨리 기업의 손실을 막기 위해 SPC는 결국 합의에 동의합니다. 이렇게 하나의 단위 사업장의 노동자들의 권리문제가 침해되고 있을 때, 시민사회가 자발적으로 연대하고 참여한 전례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합의를 이끌어 냈다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즉 이번 노사합의는 고립되어 있던 노동자들과 시민사회가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전면적으로 보여준,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SPC의 고질적인 안전문제와 안전경영위원회의 실효성

SPC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이전부터 꾸준히 문제되어왔으며, 이를 증명하듯 산재 자료 역시 그 수치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이처럼 SPC에서 고질적인 안전 문제들이 발생하는 이유와 1114일 출범한 SPC안전경영위원회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유의미한 대응책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물었다.

올해 초, 던킨도너츠 공장의 비위생적인 실태가 언론에 보도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도넛 생산 기계들 곳곳에 기름때와 곰팡이가 끼어있고, 도넛 반죽에도 그 오염 물질들이 묻어 있었다는 내부고발자의 이야기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었죠. 여기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기계를 제대로 청소할 시간조차 갖지 않고 그대로 가동된다는 것입니다. 고객들에게 가장 민감한 위생 문제도 뒷전인 마당에, 안전 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겠죠. 던킨도너츠의 멈추지 않는 기계가, 주어진 인력 내에서 늘어나는 생산량을 소화하도록 밀어붙인 SPC의 강제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마어마한 생산 중심·이윤 중심의 기업 경영 방침에 의해 결과적으로 위생과 안전, 노동자들의 권리 침해 문제가 제기되어 왔던 것입니다.

게다가 이 안전경영위원회라는 것은 어쩐지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를 떠올리게 하더군요. 이재용 부회장의 면책을 위해 만들어진 삼성의 위원회처럼, SPC의 안전경영위원회 역시 형식적인 위원회를 하나 설치하여 현 사태에 대한 임기응변식의 대처를 한 것일 뿐입니다. 실제 노동자들의 의견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그 의견들을 어떻게 실질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인위적인 위원회만을 대안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그것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이 위원회의 실효성을 기대하기는 매우 힘들 것 같습니다.”

 

친기업적 정부에 외면당한 중대재법

기업의 안전보건조치를 강화하여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중대재법이 올해 1월부터 시행되었다. 많은 기대와 관심 속에서 발의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법안의 적용 대상이나 실질적인 효력에 관한 의문 또한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중대재법이 지니는 실질적인 효력은 무엇일지, 그리고 그 한계는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중대재법이 제정된 이유는, 그동안 모든 책임에서 제외되어 있던 기업의 최고 경영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생산과 안전에 대한 모든 결정 권한을 갖고 있는 최고 경영자를 처벌할 수 없으며, 생산과 안전 관리를 담당하는 그 담당자가 책임을 구는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기업의 안전 문화가 전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실증되어 왔고, 그렇기에 법률이 최고 경영자에게 직접적으로 안전보건 의무를 부여하고, 그 의무를 위반했을 때 처벌받도록 하는 구조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이 법이 잘 시행이 되었다면, 안전을 고려한 기업 문화나 시스템이 구축되어 지금보다 훨씬 발전적인 쪽으로 변화를 이룩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 전혀 이 법이 시행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벌써 시행된 지 10개월 정도가 지났는데, 기소가 된 사례가 많지 않아요.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사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이 중대재법이 과도한 규제라고 하면서,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계속적으로 언급해 왔습니다. , 중대재법의 시행령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 법을 무력화 내지는 법의 효력을 완전히 떨어트리겠다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주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다 보니 기업 내부에서는 어지간한 산재 사고가 발생해도 결코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정서가 형성되어버렸습니다. 중대재법을 엄정하게 적용하고 기소를 해왔다면 아마 기업에서는 훨씬 긴장하고 안전 문제에 대해 많은 신경을 쏟았을 텐데 말입니다. 중대재법이 지니는 실질적인 효력은 현 집권 세력의 정치적 입김 때문에 제대로 적용되지 않아, 결과적으로 이 법 자체가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형성하게 된 것이죠. 이는 법 자체의 한계가 아니라, 법의 적용 방식에 대한 한계입니다.”

 

새로운 연대, 새로운 의 필요성

최근 노동자들이 부당한 이유로 죽음에 이르는 것을 목도하면서, 안전사고에 대한 사회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중대재법 발의와 농성, 불매운동까지 한국 사회는 최근 몇 년간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러한 노력들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또한 산업재해를 발생시키는 기업 구조의 본질적인 변화를 위해 앞으로는 어떤 방향의 연대와 투쟁이 필요할지, 마지막으로 권영국 변호사에게 물었다.

최근 몇 년간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는 이제 더 이상 산업재해를 그대로 묵과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들이 자리 잡았습니다. 김용균 씨 사망 사건 당시 경향신문은 그동안 산업재해로 사망한 수많은 이들의 이름을 1면에 실어 신문을 발행하기도 했고, 이전 정부는 임기 동안 산업 재해를 절반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공언을 하며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과 중대재법 제정 등 법 제도를 변화시키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불매운동 역시 큰 공헌을 했고요. 그러나 이렇게 법적·사회적인 움직임들이 작금의 사태를 폭로하고 공론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만, 실질적인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은 기업의 지배구조와 생산 구조, 조직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노동 안전에 있어서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가 매우 힘든 것이죠. 따라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구체화·성문화한 법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업은 철저하게 이윤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안전을 위한 사전 투자보다 사후 사건 처리 비용이 더 낮다면, 절대로 기업은 안전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업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또 다른 수단으로서의 이 필요합니다. ‘에 의해 안전의 대비를 하는 비용보다 그것을 지키지 않을 경우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더욱 크게 만들 수 있다면, 그제야 기업도 긴장하게 될 것입니다. 최근의 인재(人災)들은 기업이 자율적인 안전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안전 문제를 간과하면 큰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것을 법적으로 정착시켜야만, 기업 구조의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와 동시에 시민들의 지속적인 연대와 참여 또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사실 대기업을 상대로 노조 혼자만이 투쟁했다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시민들이 함께 손을 잡고 계속적으로 이 투쟁에 참여했기에 SPC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죠. 이제는 시민들도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함께 연대하는 것이 일상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연대의 새로운 방향성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조수아 기자 sushua@korea.ac.kr

김연광 기자 dusrhkd99@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