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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허락되지 않은 ‘법’을 살아가는 법 – 동성 커플 피부양자 자격 인정의 법률적 의미와 사회적 변화의 가능성 본문

1면/기획 인터뷰

허락되지 않은 ‘법’을 살아가는 법 – 동성 커플 피부양자 자격 인정의 법률적 의미와 사회적 변화의 가능성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4. 15. 13:00

 

  지난 2월 21일, 법적으로 인정된 ‘가족’에게만 적용되던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동성 부부 배우자에게도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 최초로 내려졌다. 소성욱씨와 3년간 동거하며 피부양자로 등록되었던 배우자가 동성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현행법상 ‘사실혼’은 남녀의 결합으로 해석된다는 이유로 피부양자 등록이 취소되었다. 소씨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받았으나 2심에서는 승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동성 배우자의 피부양자 자격은 인정하나 동성 배우자의 ‘사실혼’ 관계를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에 본지에서는 이번 판결의 법률적 의미를 살펴보고, 그것이 앞으로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아보기 위해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를 만났다. 

 

 

장서연 변호사 ⓒ 본인제공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우는 법의 무의식

 먼저 현행법상 ‘가족’은 어떻게 규정되고 있는 것일까. ‘정상적인’ 인간과 가족 형태를 명문화하는 법의 무의식으로 인해 성소수자의 법적 지위가 어떻게 부정·배제되고 있는지 물었다.

 “기본적으로 가족에 대한 정의 규정은 민법에 있습니다. 민법 제 779조를 보면,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1항 1호)와 ‘직계혈족의 배우자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가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1항 2호 2항)로 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건강가정기본법인데, 여기에서는 아예 가족의 정의를 ‘혼인·혈연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 단위’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두 법을 종합해보면, 가족을 혼인과 혈연 중심으로 이루어진 집단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죠. 말씀 주신 것처럼 이것이 소위 ‘정상적인’ 인간과 가족 형태를 명문화하는 법의 무의식입니다. 우리 사회가 이성애 중심, 성별 이분법적으로 제도화되다 보니까 성소수자의 법적 지위는 너무도 당연하게 배제되어 버리는 것이죠. 

 저는 현행법이 성소수자에 대한 공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민법이 만들어진 1950년대만 해도 동성 간 혼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 그런 전제가 없던 시대에 만들어진 법으로 현재의 상황을 재단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요. 헌법 제 36조 1항에 있는 혼인에 대한 규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兩性)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법원은 이번 소씨의 경우를 ‘사실혼’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이유를 헌법에서 ‘양성(兩性)’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고, 부부(夫婦), 부(夫) 또는 처(妻)를 지칭하는 이러한 용어들이 양성의 구별과 결합을 전제하고 있다고 해석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여성의 권리를 동등한 수준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 꼭 부부가 이성(異性)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성 중립적으로 해석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부부든 부모든, 남편이나 처가 갖고 있는 권리 의무가 동일하다는 차원에서 호명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과거 법이 성소수자의 고려 없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용어들 역시 시대에 맞게 재해석될 필요가 있습니다. 

 현행법의 이러한 부족함으로 인해 성소수자들은 법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거, 연금 등 사회보장의 측면은 물론 파트너가 아프거나 사망했을 때의 상속, 장례, 재산분할 청구권 등에서도 온전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합니다. 법적으로 혼인을 할 수가 없으니, 그 혼인의 효력으로서 발생하는 배우자의 권리까지도 모두 다 박탈되는 것이죠. 법에서 배우자의 자격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약 천 가지인데, 그러한 권리가 모두 부정된다고 할 수 있겠네요.

 

‘평등’하지만 ‘부부’는 될 수 없는 동성커플

 이번 소송에서 재판부는 사회보장 차원에서 성소수자 가족 구성원의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했지만, 동성 부부의 ‘사실혼’ 관계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사회보장 제도에서 피부양자는 법적으로 어떻게 규정되어 있으며, 이러한 판결이 성소수자 부부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과 법률적인 차원에서 어떠한 차이를 지닐까.

 “국민건강보험법 제 5조 2항을 보면, 피부양자는 직장가입자에게 생계를 의존하는 사람으로서 직장 가입자의 배우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엄격하게 해석하면 이 배우자는 혼인신고를 한 ‘법률혼’ 배우자를 의미하는데, 그동안 국민건강보험법에서는 내부 준칙에 따라 ‘사실혼’ 배우자까지도 포함해 왔습니다. 사실상 아무런 제한 없이 ‘사실혼’ 배우자가 피부양자로 인정되어 온 것이죠. 더 많은 이들에게 건강보험 혜택을 주기 위해 이 피부양자 제도가 만들어진 것임을 고려하면, 거의 ‘사실혼’에 준하는 동성 커플을 다르게 취급할 이유는 없습니다. ‘사실혼’ 배우자 관계에 있는 집단과 ‘동성(同性)’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사실혼과 같은 생활 공동체 관계에 있는 집단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기에 둘을 차등하게 대우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이제 판결에서도 평등원칙을 위반했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법원에서 동성 부부의 ‘사실혼’은 인정하지 않았기에 법률상의 제약이 큽니다. 이는 법적인 효력을 발생시키는 ‘배우자’로서 인정한 것이라기보다 경제적·정서적 공동체라는 점에서만 이들을 인정한 것입니다. 건강보험법을 제외한 국민연금법, 공무원연금법 등 대부분의 사회보장 관련 법령에서는 배우자에 ‘사실혼 배우자’도 포함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동성 커플을 ‘사실혼’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회보장 법령에 영향을 미치기가 어렵습니다. 이 점이 이 판결의 가장 큰 한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양한 가족을 끌어안는 ‘법’적인 방법

 성적 지향성, 인종, 나이 등 변화하는 사회적 가치를 포괄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 한편, 이번 사건이 보여준 것처럼 현행법을 유연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노력도 중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법제도 안에서 국가가 규정하는 가족의 범위를 확대하고,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지 물었다.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에는 우선 세 가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로는 혼인을 개방하는 것이죠. 이성뿐만 아니라 동성 간에도 혼인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면, 이성 간의 혼인에서 부부로서 또는 배우자로서 누릴 수 있던 권리들을 동성 커플도 누릴 수 있게 되니까요. 두 번째는 관계의 다양성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혼인 외의 대안적인 관계가 많아지고 있는데, 이러한 경우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에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생활동반자법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을 것 같네요. 혈연과 혼인 관계를 뛰어 넘는 동반자적 관계가 보편화된다면 자연스레 가족의 범위도 확대될 듯합니다. 세 번째로는 사회 보장 제도를 가족이나 가구 단위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단위로 하는 것, 즉 가족 외의 존재들도 보호받을 수 있는 체계를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난임 부부의 경우 국가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이러한 혜택을 비혼자까지 확장하는 식이죠. 이러한 세 가지 방안들은 이미 꽤 논의되어 사람들은 발의가 된 줄 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법안 발의를 위해 노력하는 중인만큼, 앞으로도 새로운 입법과 법의 유연하고 폭넓은 해석이 필요합니다.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차별을 타파하기 위해

 법원의 결정에 대해 일부 보수단체들에서는 반대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지만, 일각에서는 성소수자들의 권리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건이 하나의 판례로서 향후 어떠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을지, 그리고 앞으로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없애기 위해 우리 사회와 법 제도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번 판결은 동성 커플의 법적 지위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동성 커플들이 ‘피부양자’의 지위를 인정받았다는 것은, 남녀 간의 결합, 즉 혼인으로 인한 권리 의무를 동성 간의 결합의 경우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같은 두 집단을 다르게 취급하는 것은 평등 원칙 위반이 되기에, 이제 동성 간에도 혼인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방안으로는 앞서 말씀드렸듯 입법으로 법안 발의를 하거나 사법부를 통해서, 즉 동성 커플이 혼인 신고를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 제한의 근거가 된 민법 조항에 대한 위헌제청을 하는 방법이 있겠네요. 헌법재판소에서 동성 간 혼인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하면, 동성혼이 제도화될 가능성이 생길 겁니다. 

 사실 이와 관련해서 생각나는 판례가 하나 있습니다. 성전환자의 법적 성별 정정에 관한 것인데, 이 사안의 신청인은 생물학적 성은 남성인데 젠더 정체성은 여성인 분이었어요. 미성년자 자녀도 있었죠. 그동안 법원에서는 미성년자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은 허가를 하지 않았습니다. 미성년자 자녀 입장에서는 갑자기 아버지가 어머니가 되면 혼란도 겪을 것이고 그에 따른 사회적 차별도 있을 것이니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았으면 감수하고 그냥 그렇게 살라는 것이 2011년 대법원의 결정이었는데, 작년 말에 대법원 결정이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형성되는 부모자녀 관계와 가족질서 또한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문제는 제도에 앞서는 인간 ‘실존’의 문제이며, 그러한 성 정체성이 결코 사회적인 찬반양론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여성이 되고 어머니가 남성이 되는 것을 법체계상 허용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다수자가 자신의 언어체계를 절대화하여 그에 포섭되지 않는 소수자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죠. 보통 판결문에서 이러한 논조가 나오기가 정말 힘든데, 저는 오히려 이 판결이야말로 성소수자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소수자들의 혐오와 차별을 없애기 위해 법 제도가 나아갈 방향이 있다면, 바로 이와 같은 방향이 아닐까요. 판결문에 쓰인 것처럼, ‘인간의 존재는 이를 가리키는 언어에 앞서며 언어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조수아 기자 lovelove9928@naver.com

최서윤 기자 jensy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