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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현재적 의미-얄타 구상의 붕괴와 동아시아 위험의 대두 본문

1면/기획 인터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현재적 의미-얄타 구상의 붕괴와 동아시아 위험의 대두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11. 5. 23:32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현재적 의미

-얄타 구상의 붕괴와 동아시아 위험의 대두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발한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양국의 인적·물적 피해가 속출함은 물론, 국제사회의 질서도 급변했다. 또한 국제무역·원자재·공급망 체계가 붕괴함에 따라 관련국에서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이은 경제 불황이 이어지고 있으며, 전쟁에 얽힌 국가들의 외교적인 피로감 역시도 계속해서 누적되고 있다. 서방 국가를 비롯한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 수위를 강화하며 종전의 압박을 가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역시 9월 총공세를 펴동부 전선에서의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수세에 몰렸음에도 여전히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황 속에서 앞으로의 국제질서가 어떻게 재편될지는 점점 더 미궁에 빠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전쟁을 동아시아의 오랜 패권다툼과 연관해 핵전쟁에 대한 우려까지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재편되는 국제질서의 흐름 속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현재적 의미를 톺아보기 위해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백승욱 교수를 만났다.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백승욱 교수

 

얄타 구상의 붕괴

러시아의 공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오는 11월로 9개월째를 맞는다. 국지전 양상을 보였던 전쟁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의 개입이 본격화되면서 지구전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개전 당시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른 현재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의미를 어떻게 다시 평가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갖는 의미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세계사의 거시적인 흐름 변화를 함께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 변화의 핵심은 현재 국제사회가 ‘얄타(Yalta) 구상’이 붕괴되는 과정에 놓여있다는 것인데요. 주지하다시피 얄타 구상은 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이 패배한 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세워진 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 중심의 체계를 말합니다. 이러한 얄타 구상의 전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 질서를 구축하면서도, 소련의 협조를 구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강대국 중심의 합의구조를 통해 전쟁을 억제하겠다는 것이죠.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일반적인 냉전에 대한 인식과는 다르게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은 계속해서 체제 유지를 위한 공조관계였다는 사실과, 그러한 유엔 체제 하에서는 선전포고와 UN의 협의 그리고 방어 전쟁을 골자로 삼는 ‘정의로운 전쟁’만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련이 해체된 이후, 2001년 ‘9‧11 테러’로 인해 이러한 얄타 구상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자국에 대한 위협이 가시화됐을 때 ‘예방적’ 차원이라면 ‘선제적’ 침략을 선전포고나 국제사회의 협의 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명분이 주어진 셈이니까요. 그런데 이런 논리라면 자국에 대한 위협이라는 것은 자의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고, 이에 대한 대응은 ‘내정(內政)’이라는 프레임으로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2014년에 유럽과 아시아에서 전혀 다른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완전히 똑같은 방식의 대응과 정당화가 일어납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유로마이단 혁명’과 홍콩에서 일어난 ‘우산 혁명’ 그리고 그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의 대응이 그렇습니다. 사실 이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2022년에 다시 시작되었을 뿐, 2014년의 유로마이단 시위와 돈바스 전쟁에서부터 이어진 것입니다. 이 전쟁에 있어 러시아의 도발이 먼저냐, 나토의 팽창이 먼저냐 하는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얄타 구상을 중심으로 한 ‘질서 잡힌 아나키(geordnete Anarchie)’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세계적인 ‘카오스(Chaos)’가 기다리고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동아시아의 정세와 전쟁과의 영향 관계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동아시아의 패권다툼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현재 중국-대만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정세는 이 전쟁으로 인해 어떻게 변화할지, 반대로 동아시아의 정세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는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물었다.

“동아시아의 정세, 정확히는 중국의 동향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은 중국이 개입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이 전쟁을 종식시키려는 의지가 전혀 없습니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중국은 러시아의 현대화된 기술을 통해 자국의 무장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거든요. 실제로 중국은 2050년이라는 먼 미래까지 내다보고 대대적인 군대 개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중국 비리의 온상이었던 군대를 실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방식으로 편제를 바꾸고 첨단화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이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시진핑의 ‘인민해방군 총사령관’의 겸임입니다. 원래는 국가주석이자 총서기로서 상징적인 통수권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실질적 지휘권을 가지게 된 셈이니까요. 이러한 중국의 ‘강군몽(强軍夢)’에 있어 러시아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고, 이러한 이해관계가 동아시아의 정세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반대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동아시아 정세에 미칠 수 있는 영역은 중국-대만 문제입니다. 이 전쟁이 만약 러시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종결된다면, 앞서 말씀드렸던 ‘내정’의 침략 논리를 정당화하는 꼴이 됩니다. 사실 국제질서가 러시아에게 치명적인 제재를 가하지 못 하고 전쟁이 길어지는 것 자체가 중국 입장에서는 나름대로의 명분에 더해 확신이 되어 줄 것입니다. 원래부터 중국은 대만 문제가 ‘내정’의 문제였음을 강조해왔는데, 이것이 묵인되면 결국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처럼 선제적 침략도 얼마든지 묵인될 수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또한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어느 정도 경제적인 자급자족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도, 이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있었던 경제 제재 정도는 돌파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한반도 핵전쟁의 가능성

동아시아의 정세가 일촉즉발의 상황이라면, 동아시아의 모든 국가와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에도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 냉전을 대리하는 중심지였던 한반도는 이제 국제사회적 질서에서 어떤 촉매제로 작용하게 될까. 그리고 이번 전쟁 이후 제기되고 있는 한반도에서의 핵전쟁 위협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중국이 대만에 무력 개입을 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북한도 한반도에서 핵 도발을 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동시 도발이 중국한테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대만과 남한에서 동시에 사건이 터졌을 때, 현재의 미국이 이를 한꺼번에 개입하여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있느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중동 문제와 우크라이나-러시아 문제도 걸려 있는 상황이니까요. 중국도 이런 상황을 읽고 기회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고, 현재는 사실상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철회했다고 봐야 맞습니다. 북한이 계속해서 전술핵 실험을 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흐름 속에 있죠.

따라서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열쇠는 중국이 대만 도발을 하지 않도록 막는 것에 있습니다. 대만에 대한 침략이 본격화되는 순간 한반도도 사실상 전쟁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2년 전만 해도 핵전쟁의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으로서도 확고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중국은 물론이거니와 미국 역시 한반도를 바라보는 관점이 1950년 당시와는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 자체를 재편하고 완전히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상상하려는 시도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민족주의 혹은 핵강국 이기주의

‘얄타 구상의 붕괴’라는 관점에서 이번 전쟁을 바라봤을 때, 더 이상 국제질서를 신(新)냉전으로 부르는 것은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앞으로는 국제사회가 어떻게 재편될지, 그러한 체제를 무엇이라 명명할 수 있을지, 마지막으로 백승욱 교수에게 물었다.

“당장은 더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만, 질문해주셨듯이 신냉전이라는 명명은 현재의 복잡한 국제질서를 설명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국과 미국이 냉전 때처럼 각각 편을 먹고 싸우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냉전 체제를 지탱했던 얄타 구상은 거의 붕괴했고 각국은 철저하게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고 있어요. 이러한 이해관계를 당장은 ‘새로운 민족주의’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러시아의 ‘키예프 루스’나 중국의 ‘중화 민족’은 침략 전쟁을 ‘내정’의 문제라고 정당화할 수 있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으니까요.

이것이 세계대전 당시의 파시즘과 다른 점은 ‘팽창’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명분은 ‘내정’이니까요. 그렇기에 오히려 핵전쟁의 위협은 증가합니다. 영토를 팽창시키지 않음으로써 허울뿐인 명분을 지키면서도, 실질적으로 세계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 수단은 핵밖에 없으니까요. 실제로 푸틴이 공식적으로 핵을 언급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핵보유국만이 개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질서를 ‘핵강국 이기주의’라고도 부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세계대전 당시의 팽창 형태의 전쟁이 아닐지언정 핵으로 인해 훨씬 더 끔찍한 참사가 벌어질 것은 자명합니다.”

 

 

이영서 기자  youngseo516@naver.com

조수아 기자  sushua@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