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쿰벵 #총선
- 고려대학교대학원신문사
- 보건의료
- 쿰벵
- 김민조 #기록의 기술 #세월호 #0set Project
- 임계장 #노동법 #갑질
- 코로나19 #
- 국가란 무엇인가 #광주518 #세월호 #코로나19
- 공공보건의료 #코로나19
- 미니픽션 #한 사람 #심아진 #유지안
-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 권여선 #선우은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김승옥문학상수상작품집
- 518광주민주화운동 #임을위한행진곡
- BK21 #4차BK21
- 5.18 #광주항쟁 #기억 #역사연구
- 애도의애도를위하여 #진태원
- 항구의사랑
- 선우은실
- 수료연구생제도 #고려대학교대학원신문사 #n번방 #코로나19
- 한상원
- 죽음을넘어
-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로나 콜른타이 #위대한 사랑 #콜른타이의 위대한 사랑
- 고려대학교언론학과 #언론학박사논문 #언론인의정체성변화
- 심아진 #도깨비 #미니픽션 #유지안
- 산업재해 #코로나시국
- 마크 피셔 #자본주의 리얼리즘 #염동규 #자본주의
- n번방
- 시대의어둠을넘어
- Today
- Total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피해자의 기억이라는 물신(物神) 본문
이은솔 기자
5월 7일 이용수 씨가 2015년 12월 28일 진행된 한일합의와 박근혜 정부가 받은 100억엔 문제 등에 대하여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윤미향 前 이사장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한 후 연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정의연은 논란 중에도 꾸준히 수요집회를 열고, 많은 이들이 정의연 후원을 통해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회계와 비리 이슈로 문제가 초점화되고 검찰 압수수색까지 진행되면서 사태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와중이다. “해방 후 ‘위안부’ 피해 최초 증언까지 걸린 시간 46년, 수요집회를 이어온 시간 28년, 정의연 논란이 불거진 시간 2주”라는 《한겨레》의 만평(5월 22일)이 지적하듯, ‘위안부’ 운동이 이어져 온 역사를 생각하면 참 허망할 만큼 빠르게 많은 것이 무너지고 있다.
윤미향 전 이사장이 민주당 비례대표로 당선되었을 때는 기쁜 마음과 함께 정의연도 보수 정치의 타겟이 되리라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신속하고 노골적으로 진행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회계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니 섣불리 말하기 어렵지만,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지점은 위안부 운동의 그루터기였던 ‘피해자 중심주의’, ‘피해자의 기억’이라는 용어가 보수 언론에게 전유되고 있다는 사실일 테다. 이용수 씨의 기자회견 다음 날 윤미향 씨는 개인 SNS 페이지에 “이용수 할머니와 통화를 하는 중에 할머니의 기억이 달라져 있음을 알았습니다.”라며 글을 올렸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합의 발표 직후 할머니와 함께 기자회견도 진행했기 때문에 할머니의 말씀이 전부 뉴스에 나갔다고 전했으나 할머니가 아니라고 하셔서 대화를 더 이어가지 못했다고 밝혔다. 진위를 가리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피해자의 기억에 의존한 부정확한 증언은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논리에 싸워온 ‘위안부’ 운동의 맥락에서 보자면 복잡한 문제를 내포한 발언이다. 아니나 다를까 윤미향 씨가 글을 올리자 《중앙일보》는 ‘피해자 중심주의라더니, 피해자 뜻 존중 안 한 윤미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고(5월 12일), 《조선일보》는 “위안부 피해자 인권운동의 뿌리인 할머니들의 기억마저 부정했다”며 공격에 가세했다(5월 13일).
‘위안부’ 운동에 숟가락 하나 얹은 적 없는 이들의 뻔뻔하기 그지없는 비판은 고려할 가치가 없겠지만 이번 논란은 피해자의 기억과 증언의 물신화 문제를 선명하게 보이고 있다. 누구 할 것 없이 사람의 기억은 바뀌기도 하고 지워지기도 하며 의도적으로 왜곡될 수도 있다. (사료나 통계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피해자의 기억이 중요한 이유는 그 기억과 말이 무조건 맞기 때문이 아니라 거대 서사에 통합될 수 없는 개개인의 관점과 입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는 더 이상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에 의해 소거되었던 목소리를 듣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해진다.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용어 대신 ‘피해자 관점주의’라는 용어를 쓰자는 제안도 비슷한 연유로 제기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어떻게 피해자 말만 듣고 맞다고 하겠느냐’며 증언을 거부하는 태도와 ‘피해자의 말을 왜 부정하느냐’며 증언을 무기로 삼는 태도 모두 동일한 논리의 양면일 뿐이다.
故 김복동 씨는 생전 “테레비고 신문이고 입이 아프도록 죽도록 말해 놓으면 그 말은 다 어디 가삐고 한두 마디 나오고 그저 ‘김복동 위안부’, ‘위안부 김복동 할매’…”(《한겨레》, 2014년 2월 22일)라고 말씀하셨다. 보수 언론과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 ‘위안부’가 때로는 민족이라는 대의를 위해 때로는 여성이라는 대의를 위해, 피해자라는 표상과 진실 공방을 위한 증인으로만 생각되지 않도록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7면 > 기자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로움의 강렬함과 묵묵한 되풀이 사이에서 (0) | 2020.12.10 |
---|---|
표현의 자유, 소통의 책임 (0) | 2020.11.06 |
코로나 시대의 희망 (0) | 2020.10.22 |
‘진리의 상대화’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 (0) | 2020.09.21 |
‘광주항쟁’이라는 기억 (0) | 2020.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