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진리의 상대화’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 본문

7면/기자 칼럼

‘진리의 상대화’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0. 9. 21. 07:51

-윤정인 기자

 

 최근에 장혜영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개신교 측을 중심으로 거세게 이어지고 있다. 대형 교회 목사들의 설교나 유튜브를 통해 차별금지법과 동성애에 대한 잘못된 뉴스가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다. 목사의 설교 내용 자체를 처벌한다는 조항이 없음에도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리가 주를 이룬다. 유독 성적 지향 조항을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를 들여다보면 성경에서 동성애를 금지하고 있으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도 동성애 확산을 조장하는(?) 법안 통과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반복된다. 동성애와 동성성행위를 구별하지 않고, 개인의 성적 지향을 정체성이 아닌, 성적 일탈행위로만 여기는 무지함과 게으름은 논외로 하더라도 위 논리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이들이 사회의 법안을 통과시키는 문제에 자신들의 경전을 근거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나 근거가 될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는 믿음의 차원이고 절대적 진리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대화하려면 다른 근거가 필요하다. 두 번째로 성경이 동성애를 금지하고 있다라는 해석의 문제이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두 번째 부분이다.

 

 김근주 교수의 저서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는 이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어 참고할 만하다. 그에 따르면 사실 성경에서 동성애를 금한다고 직접적으로 규정한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2천년 전에 성경이 쓰일 당시에는 동성애에 대해 사람들이 정확히 인지하고 있지도 못했다. 이 용어는 19세기에야 고안되고 연구가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로 들고 있는 성경의 구절들-예를 들면 소돔과 고모라 부분-은 동성애가 아니라 동성성행위를 언급하고 있으며, 이 또한 문맥상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약자를 짓밟으려는 유린 행위였다. 당시 여성의 지위가 극도로 낮았음을 고려해볼 때, 힘이 약한 남성에게 성적 삽입 행위를 통해 힘의 우위를 과시하는 행위였다는 것이다.

 

 결국 성경의 구절 또한 고대 사람들이 지닌 사고와 가치관, 문화를 토대로 쓰였고 이를 현재에 그대로 적용하게 되면 억압과 폭력의 논리가 될 수 있다. 노예제도와 교회 내에서 남녀의 불평등한 지위를 인정했던 바울서신을 그대로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19세기에 미국 남부의 교회들은 노예제도 폐지를 반대했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석학 자체가 성경을 연구하는 가운데 발전해왔듯, 오늘날 현실에서도 성경 구절을 해석하는 문제가 간단한 문제가 아님은 명확하다. 그럼에도 많은 개신교인들은 일부 목사의 해석에 쉽게 권위를 넘겨주고 맹목적으로 따른다. 성경 역시 당대에 쓰인 문맥을 고려해보아야 하고, 현실에 적용할 경우에는 좀 더 세심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주장과 노력은 ‘(신앙을 망치는) 자유주의 신학’, ‘(신이 더 중시되지 않는) 인본주의적 믿음이라고 쉽게 배척된다. 굳게 믿고 있던 진리가 상대화되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상대화된다고 해도 성경이 담고 있는 보편적이고 의미 있는 규범의 가치가 퇴색되지는 않는다. 소수자와 이방인에 대한 사랑과 환대의 정신은 동성성행위를 배척하는 것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반복되어 강조되고 있는 성경의 중요한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