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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극장종말론자가 지은 그 대극장에서 본문
극장종말론자가 지은 그 대극장에서: 이혜령, <대극장 짓기>
드라마투르그_하은빈
공연이 끝나고 혜령은 내게 다가와 물었다. “왜 이렇게 많이 울어요. 보통 애기엄마들이 우는데.” 그리고는 혜령도 울었다. <대극장 짓기>의 마지막 회차가 막 끝난 참이었다. 신촌극장의 작은 창문으로 평일 한낮의 볕이 들었다. 공연을 마치기에도 ‘이렇게나 많이’ 울기에도 퍽 이른 시간이었다. 그날의 유일한 어린이 관객 봄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한바탕 운 얼굴로 멋쩍게 사진을 찍었다.
극장이 반기지 않는 관객으로서 겪었던 경험들이 먼지처럼 피어올랐다. 우와 나는 늦는 관객, 까다로운 관객, 여러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관객이었다. 아무리 서둘러 출발해도 늘 아슬아슬한 시간에 도착하는 관객. 난처한 기색의 스태프들이 하우스와 연락을 주고받느라 분주한 동안 우는 모르는 사람의 등에 업혀 객석에 진입하고 나는 우의 전동휠체어를 주차할 외진 구석을 찾아 헤맸다. 노골적으로 짜증을 내는 어셔를 만난 어떤 날에는 제대로 업히지 못해 몸이 줄줄 흘러내리다시피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앉은 객석에서 중간에 나가지도 못하고 배앓이를 했다. 그러나 공연을 보았다면 일단 운이 좋은 경우였다. 아예 극장 근처에도 못간 적도 허다했다.
혜령은 그런 기억들, 극장에서 환영받지 못하거나 내쫓긴 이들의 이야기를 새로운 극장의 재료로 삼는다. 그의 앞선 작업 <극장종말론>이 ‘이런 극장이라면 망해야만 한다’고 종언을 고하는 결연한 선언문이었다면(“극장은 망할 것이다,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시끄럽고 약한 자들을 금지하기 때문에.”), 이 작품 <대극장 짓기>는 내쫓긴 이들에 대한/의한 이야기로, 담(談)으로 공연의 축을 세운다. 극장의 종말에 대한 목격담, 대극장을 짓겠다는 기획의 실패담, 그 누구보다 극장을 사랑했으나 극장에서 내쫓긴 이의 회고담, 소외와 배제를 정당화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뒷담(“극장은 끝내 망해버릴 거야,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쫓아내잖아.”).
<대극장 짓기>는 평일 한 시에 시작됐다. 보통은 공연이 열리지도 종말에 골몰하지도 않는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아니면 극장에 출입할 수 없는 관객들이 있었을 터였다. 반대로 말하면 대개의 공연은 누군가는 결코 극장에 올 수 없는 시간대에만 올라간다는 뜻이었다. 극장 공간 전체는 소풍을 연상시키는 색색의 천과 돗자리로 채워져 있었다. 공연 전 안내가 이어진다. 대화를 하거나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이, 자유로이 앉거나 눕거나 이동하는 것이, 사전에 허가되지 않은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는 것이 모두 허용된다는 내용이다. 관객들의 몸이 조금 풀어진다. 나는 벽에 기대 앉아 입장할 때 받은 초대장의 문구를 읽는다. “이 세계에 초대받았다면, 극장에도 초대받은 것입니다.”
이윽고 스스로를 관객 1로 부르는 혜령이 누군가의 목격담을 읽어내려가며 공연을 연다. 극장에서 일하기를 그만둔 어느 하우스 어셔가 함께 일했던 매니저에게 부친 편지다. 어셔는 한 관객이 다른 관객을 두고 이렇게 말하는 것을 목격한다. “저런 사람한테 표를 팔면 어쩌냐, 이렇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한테.” 그 말을 들은 이들은 조용히 객석을 떠난다. 이어 혜령은 대극장 설립 실패담을 들려준다. 그는 국립극장 대극장 객석 교체를 위한 업체 입찰에 지원하지만 가장 낮은 점수를 받으며 탈락한다. 그가 발표 자리에서 제안한 종류의 객석은 “얇고 가볍고 연약한” 객석이다. 어떤 관객들이 환영받지 못하듯, 그의 발표도 환영받지 못한다. 어떤 이는 “왜 굳이 대극장을 만들기로 한 것이냐” 묻고 어떤 이는 “무슨 시위 나온 것도 아니고 바닥에 늘어 앉아서 뭐하자는 거냐”며 노골적인 비아냥을 감추지 않는다.
하여 <대극장 짓기>는 바로 그런 극장을, 소풍을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시위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색색의 천과 돗자리, 매트 등의 평평하고 연약한 직물들로 이루어진 객석이 있는 극장을 신촌의 어느 높고 가파른 소극장에 구현한다. 그곳에서 관객들은 누군가의 회고를 듣는다. 한때 열렬한 관객이었던, 그러나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이어 장애를 가진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극장에서 추방당한 이의 회고를. 나는 추방당한 이의 역사를 들으며 ‘살아진 경험’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생각한다. 본래부터 그런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서 태어났을 리 없는 기억들을 생각한다. 대극장에 어린이 매트와 푹신하고 약한 담요를 깔자고 국립극장에서 발표하는 사람의 두려움과 꿋꿋함을 생각한다. 아무도 그에게 그런 용기를 가르쳐주지 않았을 것을 생각한다.
혜령의 안내에 따라, 관객들은 한 명씩 일어나 다른 관객에게 다가가서 자신에게 주어진 초대의 말을 되돌려준다. 앉아있던 자리가 뒤바뀌고 관객들이 서로 뒤섞이기 시작한다. 극장에 오지 못한 아기와 엄마를 위해 원격으로 연결해둔 태블릿PC에, 한 관객이 다가가 몸을 바짝 엎드리고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대극장-짓기>는 물리적인 객석을 만드는 대신 관객에게 서로를 환대할 기회를 만들어낸다. 머뭇거리는 관객들에게 용기의 튜토리얼이 주어진다. “이 세계에 초대받았다면 극장에도 초대받은 것입니다.” “당신의 도착이 극장의 증거입니다.” “저의 꿈은 관객이 되는 것입니다. 같은 꿈을 꾸었나요?”
이것이 말하자면 혜령이 짓는 대극장의 생김새다. 관객에게 낯선 용기를 심어주는 극장. 함께 객석을 찾은 이에게 말을 건네고, 자신과 같은 자리에 초청하고, 몸을 움직여 타인이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는 극장. 퍼포머도 무대도 희미한 이 극장에서, 관객들은 극장을 극장으로 만드는 것은 오롯이 관객의 존재뿐임을 감각한다. 이곳에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극장을 세우고 있다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 우리 자신이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상기한다. 그런 식으로 이 공연 <대극장 짓기>는 우리에게 몸이 있음을, 극장 밖에는 세계가 있음을, “우리의 도착이 극장의 증거”임을 각인한다. 여전히 누군가는 올 수 없는 높고 작은 소극장에서, 우리는 아직 우리가 되어보지 못한 관객이 되는 일을, 아직 도래하지 않은 대극장을 짓는 일을 연습한다.
극장종말론자가 지을 그 미완의 대극장에서는 누구도 그저 자기 자신인 것에 대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기여서, 어린이여서, 엄마여서, 몸이 커서, 몸이 작아서, 휠체어에 타고 있어서, 개여서, 개를 데리고 있어서, 기침이 멎지 않아서 사라지고 싶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누군가 듣지 못하는 노래도, 누군가 보지 못하는 춤도 없을 것이다. 모두가 “아름다운 것을 함께 볼” 뿐일 테다. 거기서 누군가 ‘이렇게나 많이’ 운다면, 그것은 분명 누구도 거절하지 않는 그 극장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것을 보았기 때문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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