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작은 ‘신념’이 바꾸어 갈 많은 것의 모습들 본문

7면/대학원신문 후기

작은 ‘신념’이 바꾸어 갈 많은 것의 모습들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4. 15. 13:24

작은 ‘신념’이 바꾸어 갈 많은 것의 모습들

 

이승연(고려대학교 역사학과 석사과정)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의 나를 정의할 수 있는 단어는 ‘예민함’이었다. 성정 자체도 예민했지만, 주변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해 그로 인해 힘들었던 순간도 꽤 많이 있었다. 지금은 그 시절에 비해 주변에 많이 무뎌졌다고 생각하지만, 나라는 사람을 두고 떠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잃어버렸다고 느꼈던 경험은 지금까지도 다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그렇기에 나는 언젠가부터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나무줄기’, 아무리 먼 길을 돌아도 마침내 따라갈 수 있는 나만의 이정표가 갖고 싶었고, 그것을 좀 더 개념화된 단어로 번역하자면 ‘신념’이라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를, ‘나의 신념’을 찾고 싶었던 거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 했던가. 나만의 신념을 찾고자 노력하는 나의 입장에서 세상의 변화가 개인의 신념에서부터 시작되는 모습을 목도하는 것은 언제 봐도 참 멋있고 위대하다는 생각을 한다. 일명 ‘중꺾마’를 외치며 16강 기적을 이룬 지난 월드컵의 한국 국가대표팀이 그랬고, 소수자들의 인권 신장에 목소리를 내며 마침내 관련법 개정에 기여한 여러 운동가들이 그랬다. 이 넓은 사회 속에서 개인은 그저 하나의 존재, 어찌 보면 먼지 같은 존재에 불과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작지만 큰 신념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변화가 의미 있고 위대할 것이다. 이번 고대신문 또한 개인의 신념과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그 신념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면에서는 코로나 엔데믹 시대의 큰 문제인 마스크 문제에 대해 업사이클링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김하늘 작가와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업사이클링 자체는 이전부터 유럽 등에서 꽤나 주목받던 소재였고, 폐천막을 업사이클링한 가방과 지갑 등을 파는 브랜드들은 한국에서도 꽤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더 나아가 팬데믹의 흔적과 업사이클링을 결합하여 팬데믹이 남긴 우리 사회의 문제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연구와 기업 협업을 통해 업사이클링의 메시지를 사회에 전하고자 하는 작가의 행보에서 그의 ‘신념’을 보았다. 비록 그는 자신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러한 신념들이 모여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3면에서는 최근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하나의 소비 트렌드, 혹은 마케팅 포인트가 된 비거니즘에 대한 비건생활연구소 활동가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이전까지의 비거니즘은 사실 개인의 신념에 가까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비거니즘은 단순히 개인의 지향점이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 하나의 마케팅 요소가 되었다. 물론 비거니즘 그 자체의 장점을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릴 수 있는 계기는 되었지만, 단순히 마케팅을 위한 소재로만 활용되는 과정에서 현재 비거니즘과 관련된 국내 제도들의 미흡이 드러나고 있다. 비거니즘의 원래 취지를 퇴색시킨다는 윤리적 측면에서의 비판도 받고 있다. 같은 면 하단의 기고문에서는 이미 비거니즘이 사회에서 하나의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은 스웨덴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무엇이든 향유층이 늘어나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고, 한국 비거니즘의 현 상황이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비거니즘이 ‘갈림길에 놓인’ 현 상황에서 더 나은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7면 기자칼럼에서는 3면의 비거니즘과 이어진 대체육을 소재로 칼럼을 전개하고 있다. 칼럼의 요지는 대체육에 대한 회의와 채소를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었다. 앞선 3면의 인터뷰가 이야기하던 ‘한국의 비거니즘이 가야 할 길’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고유의 길을 찾아 나서는 건 어느 경우에나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칼럼의 필자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 고유의 채식 문화–이를테면 나물 문화나 사찰 음식 같은–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 또한 한국의 비거니즘, 한국의 채식 문화가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5면 문학의 향기에서는 주체로 변환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6면 학술 동향에서는 아시아 태평양 전쟁과 한국 전쟁에서의 민간의 기억과 그 이후를 소개하고 있다. 전쟁이나 사회 분위기 같은 거시적인 흐름에서 민간이나 여성 등 미시적인 흐름이나 목소리는 쉽게 묻히고는 한다. 두 코너 모두 특정 상황이나 분위기 속에 놓여 잊히는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며, 우리에게도 그에 함께하자는 어떠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 같다. 

글을 마무리하며, 5면 인터뷰의 제목을 곱씹어본다. ‘항상 조금 추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항상 마음처럼만 되지 않는 곳이 사회이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마음속 깊은 곳에 각자의 사정과 상처를 묻어둔 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한때는 상처받는 것 자체가 두려웠고, 우리는 대체 살아가면서 왜 아파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느낀 것은, 좋든 나쁘든 우리가 겪는 모든 경험이 결국 ‘나’를 이루는 양분이 된다는 것이었다. 또 그 양분들이 우리 개개인을, 나아가서는 더 넓은 범위를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아픔을 강요하는 것처럼 들리는 상투적인 말에는 여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픔 또한 살아가는 데에 있어 어느 정도는 좋은 의미로 필요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7면 > 대학원신문 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심하기, 신뢰하기  (0) 2023.09.11
이해를 위한 대화의 필요성  (0) 2023.06.27
연대의 바람  (1) 2023.03.15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1) 2022.12.12
우리는 천천히 나아간다.  (0) 2022.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