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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우리의 공동체가 더듬어 나가야 할 ‘좁은 문’의 안팎 본문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윤희상
2020년 5월호 대학원신문을 보노라면 지금의 우리가 맞서야 할 두 가지 주요하고도 특수한 장벽을 만날 수 있다. 하나는 1면의 시론 인터뷰에서 다뤄진 ‘n번방 사태’와 이를 둘러싼 성범죄 및 ‘강간 문화’의 재생산이며, 다른 하나는 코로나19와 그 이후 모습을 달리한 일상의 이면이다. 1면에서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 감이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n번방 방지법’의 한계를 짚고, 매체의 진화에 따라 더욱 정교해지는 성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법적 인식을 논하며, 나아가 근본적으로 ‘강간 문화’를 철폐하기 위한 총체적인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한편으로 3면의 기획기사에서는 코로나19를 통해 드러난 한국 공공보건의료의 실태를 파악하고 세계 각국의 대응 방침을 비교대조하며 장차 마련되어야 할 보건의료의 환경과 체계를 논하고 있는데, 기실 2면의 원우발언대와 강사칼럼으로부터 7면의 사설까지 저마다의 프리즘을 통해 논의를 끌어내고는 있으나 모두 코로나19 이후 변모한 일상 속에서 감각하게 된 긴장과 불안을 엿보게끔 한다.
이번호 대학원신문을 읽으며 우리의 현실 공동체가 수행해야 하는 작업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보다 투명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작업이란 범박하게 말하자면 보편과 특수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건강할 수 없었던 소수자들의 연대를 통해 공공(公共)의 체계를 바로 세우는 일일 것이다. 5면의 저자와의 대화에서 진태원이 말하듯, 보편이 ‘복수’로 존재할 수 있음을 알 때, 우리는 억압과 피억압의 이분 구도에서 벗어나 실제로 배제되고 있는 영역으로 진입할 수 있고, 또한 국가와 민족을 넘어선 전지구적 연대를 향한 청사진을 그릴 수 있다. 일차적으로 코로나19 사태는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와 관계가 있는 보건의료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고 당장 한국에서 마련되어야 할 공공의료체계의 세목을 따져 묻게끔 했지만, 보다 심층적으로 구상되어야 할 것은 사회역학자인 김승섭이 힘주어 말하듯 방역이라는 ‘절대선’ 이면의 약한 고리들이다(“방역 성공 이면의 그늘, 국가의 ‘감시 권력’을 따져 물어야”, 《한국일보》, 2020.05.25.).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일상적 주체들은 새삼 ‘국가’의 울타리를 실감하게 되었다. 원우 발언대나 강사 칼럼에서 드러나듯 당장 수업을 듣거나 강의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 당장 일어나는 국가의 방역을 좇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국가 내부에 있지만 한편 국가를 넘어서는 집합적 주체-시민사회라고 해도 될까-의 새로운 기율과 그로부터의 새로운 질문이다. 『문화/과학 101호-커먼즈(The Commons)』를 다룬 6면의 학술동향 기사는 커먼즈 개념의 계보를 톺아보며 ‘공공’에서 ‘공유’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꾀하는 근래의 커먼즈를 다루고 있는데, 어찌 보면 이는 국가와 민족을 넘어선 공동체가 지녀야 할 새로운 질문에 대한 이론적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시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형성된 예술 커먼즈의 프로젝트와 제도적 권위에 의해 변질되고 차단된 지식장을 개방하고자 하는 지식공유연대의 사례는 쇄신된 공통의 목표를 향한 주체들의 움직임이 지닌 잠재적 가능성을 지시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우리는 그러한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드러나지 않은 약자들의 현실, 그 한 중앙으로 진입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개탄하고 비통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김승섭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제의 이면을 들춰내며 “예민하고 절박한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히며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뜻이다. 비단 코로나19를 둘러싼 문제만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전술한 바와 같은 첨예한 노력 없이는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감각도, 그러한 감각을 통한 모종의 ‘구원’도 기대할 수 없다. ‘우리’, ‘함께’라는 말이 가진 기묘한 복잡성을 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5면에 실린 한상원의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에 대한 염동규의 서평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한층 강화한다. 마지막 대목에서 그가 강조하는 건 막연한 관념의 대질심문이 아닌, 현실의 난장(亂場)에의 직시이며 그것으로부터 다수의 주체들이 발견하고 또 추진할 미래에의 도약이다. 염동규의 글은 우리의 현실에 육박한 질문들에 맞서지 못한다면, 메시아가 들어오는 ‘좁은 문’은 “남의 세상 이미지”에 불과함을 지적하고 있다. 메시아적 계기는 소리소문없이 ‘이곳’에 오지 않을 터이다. 우리의 공동체가 지금껏 들려 있던 ‘진보의 환등상’이 배제했던 주체들을 소환할 때, 그럼으로써 역사적으로 재생산된 폭력의 고리에 매달리고 또 매달려진 다수의 ‘보편’의 좌표를 확인할 때, ‘좁은 문’은 우리 세상의 이미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코로나19의 시대, 다시금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구절의 아이러니를 곱씹게 된다. 각자의 변모한 일상이 우리를 어디로 또 어떻게 이끌어 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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