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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대패(大敗)는 막아야 한다 본문
대패(大敗)는 막아야 한다
끔찍한 여름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위기를 절감케 한 여름이라는 점에서 그러했다. 비단 기후위기가 빚어낸 기록적인 폭염과 폭우 때문만은 아니다. 3일 간격으로 지하철역에서는 백주대낮에 칼부림이 있었고, 초등학교에서는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혀 관계없는 두 사건을 두고, 신기하게도 어느 한 쪽에 유독 화가 치밀거나 어느 한 쪽이 특히 안타깝지 않았다. 두 사건은 평등하게 폭염보다 더 식히기 어려운 분노와 폭우보다 더 지긋지긋한 우울을 가져다주었다. 이미 부당하게 익숙해져버린 기후위기보다, 이쪽이 내게는 더 ‘현대’의 위기에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는 ‘근대’의 패배였다. 이상적인 공동체를 소망했던 인간의 오만하고도 어리석은 기획은 제국주의와 전체주의로 수렴했고, 결국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남기며 처참하게 패배했다. 이후 아무도 쉽사리 모두가 하나 된 ‘전체’를 외치지 못 했고, 외치는 일부 사람들도 속으로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다. 그렇게 공동체의 환상이 파괴되고, 집단이 조각조각 나면서 현대는 시작됐다. 현대를 ‘위험사회’로 정의한 울리히 벡(Ulrich Beck)과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그 위험에 대한 진단과 해결방법에서는 입장을 달리하면서도, 위험사회의 가장 큰 특징으로 ‘개인의 파편화’를 지적했다. 근대의 패배를 겪었던 인간은, 반성의 능력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공동체나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에게 간섭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고, 그 결과 개인은 자기만의 ‘밀실’ 속으로 더 깊이 빠져 들어갔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현대의 표어는 “그냥 내버려 둬”가 돼 버린 듯했다. ‘쇼미더머니’에서 나오는 ‘SWAG’ 힙합의 노랫말이건, ‘SNL’에서 기획한 ‘MZ’ 세대의 풍자 개그이건 간에 요는 “내 갈 길은 내가 알아서 갈 테니 그냥 날 좀 내버려 둬”에 대한 표출 혹은 반향이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나 역시 세상을 그냥 내버려두게 되었다. 그렇게 현대는 누군가가 죽도록 내버려뒀고, 누군가를 죽이도록 내버려뒀다. 역설적이게도 죽은 누군가의 사인(死因)은 ‘학생들을 차마 내버려둘 수 없었던 것’이었고, 죽인 누군가의 살인(殺因)은 ‘내버려두어진 것을 넘어 내버려진 것’이었다. 누군가가 죽은 뒤 교육계에는 ‘왕의 DNA’를 포함하여 믿을 수 없는 신고들이 줄을 이었고, 누군가를 죽인 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살인 예고’가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우발적인 하나의 사건일 뿐이라면 위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위기 정도가 아니라 참패였다. 전혀 다른 두 사건의 여파에서, 이미 패잔병이 된 현대의 모습이 비쳤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시대적 구조 탓으로 돌려 살인의 이유를 합리화하려는 것이 결코 아님을 미리 밝힌다. 겨우 탈출해낸 근대적 간섭으로 회귀해야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 우리는 ‘내버려두지 않는 법’을 궁리해야 할 때다. 근대의 패배가 보여주는 유일한 미덕은, 너무나 처참한 대패였기 때문에 스스로의 수명을 끝내버렸다는 것에 있다. 그러나 교훈을 위해 그런 식의 대가를 두 번 다시 치를 수는 없다. 대패만큼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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