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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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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사설

상식의 항상성을 위해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10. 5. 00:24

상식의 항상성을 위해

 

상식이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낡는 세상이다. 문화현상에서 첨단기술에 이르기까지, 자고 일어나면 많은 것이 바뀌어 있는 세상에서 내일까지 자리를 보전하고 있을 상식을 확신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세상에서 유통기한이 긴 상식들은 오히려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것들이다. 특히 정통성이나 정체성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은 그 속성상 대다수에 의해 오래도록 보전돼야 하는 상식이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철거가 오랜만에 진영을 가리지 않고 공분을 산 것 또한 이 때문일 것이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아이돌마저 한동안 자취를 감춰야 할 정도로, ‘독립운동은 한국에서 상식이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 사안의 역사적·정치적 문제들은 잠시 제쳐놓고(이에 대해서는 본지 본호의 1면 기사에 충실히 정리돼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처음에는 이 사태가 일으킨 논란의 규모에 솔직한 아니꼬움이 있었다. 그래봤자 동상아니던가? 그토록 여러 번 읽었던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1975), 가장 처음에 내게 가르쳐준 것은 누구의 동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홍범도라는 사람이 지니는 역사적 가치와 권위는 홍범도 본인에게서 나오는 것이지 동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동상을 이전하거나 철거한다고 희석되는 가치와 권위라면 처음부터 별 볼 일 없었던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영면에 드신 홍범도 장군님께서 당신의 흉상을 치운다는 후손들의 작태에 눈이나 한 번 깜짝할까 싶다. 오히려 내가 사료와 매체를 접하면서 멋대로 상상한 홍범도 장군은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애초에 누가 만들어 달랬나?” 그러나 사람들은 엄청난 규모로 분노했다. 근래에 있었던 어지간한 끔찍한 일들보다도 더 말이다. 상식이어야만 하는 것이 침범 당했기 때문에.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이 진행되는 상황을 보고 있자니 침범 당한 것은,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을 분노케 한 것은 상식이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상식이었다. 상식(常識)은 문자적 의미상 항상성(恒常性)’을 내포한다. 따라서 진짜 상식은 변하지 않고 기준이 된다. ‘독립운동의 정당성이나 국군의 정통성보다 더 먼저 세워야 할 기준, 침범 당하지 말았어야 할 상식은 공권력이라는 것이 가져야 할 국민에 대한 마땅한 소통의 태도였다.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는 국민에게 어떠한 설명이나 해명은커녕 변명조차도 시도하지 않았다. 이는 과거의 적당히 둘러대다 보면 금세 잊어버리겠지식의 우민(愚民)’을 조롱하는 태도조차 아니다. 자신들이 옳다는 믿음에 대한 의심이 하나도 없는 자들의 태도다. 정말로 할 말이 없기 때문에 하지 않는 자들의 태도다. 어떠한 말도 없이 모든 일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고작 동상 하나를 치우기 위해, 전에 없던 아우성을 견뎌내면서.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 역시 분노를 조절할 수 없게 되었다.

완벽한 검증에 의해 집필이 완료된 과거를 훼손하고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역사의 철칙보다도, 반공주의라는 것이 현재 쥐뿔만큼이라도 유효한 명분이냐 하는 정치적 판단보다도 더 상식적인 것이 있다. 국민다수가 반대하는 일을 공권력이 해야만 할 때, 먼저 설명하고 설득하는 절차를 밟아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진짜 상식이므로, 그 정의에 따라 모든 사람이 항상/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제발 이제는 소통하기 바란다. 너무도 맹목적이어서 잘 안 보이겠지만, 눈앞에 국민이라는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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