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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종말의 불안을 공유하며 본문
“아기는 신이 아직 인간에게 절망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가지고 이 세상에 온다.” 김철곤 작가의 판타지소설 『SKT-Swallow Knights Tales』(북박스, 2003)에 나오는 말이다. 공치사로도 명작이라 하긴 어렵고, 읽은 지 워낙 오래된 작품이라 내용조차 잘 기억나지 않지만 위 구절만은 또렷하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를 절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어쨌든 ‘이런 걸’ 이 세상에 보내준 존재라면.
그래서인지, 부끄럽게도 낙태죄 폐지를 마음속으로는 꽤나 오래 반대했었다. 여성의 신체적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을 같은 저울에 올려놔서는 안 된다는 친구들의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온갖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낙태죄가 태아의 생명을 지키는 기능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다면? 혹은 현재로서 작동할 수 있는 방어책이 낙태죄밖에 없다면? 어쨌든 이미 다 자란 성인들의 생각으로 그것을 없애버려도 될까? 따위의 불안이었다. 시간이 흘러 낙태죄 폐지에 대한 불안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뭔지 모를 이 ‘불안’이 아이들을 지키는 힘이라고 믿는다.
자본주의의 계산기는 위험까지도 척척 계산해낸다. 위험이 현실화될 확률과 현실화됐을 때의 손해를 곱한 기댓값이 비용보다 작다면, 자본주의는 과감하게 그 위험에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의 위험은 계산기에 달아 볼 필요조차 없다. 위험에 처할 모집단의 절대적인 숫자가 적으며, 심지어 점점 더 적어지고 있으니까. 지방 소도시나 시골에 얼마 있지도 않은 아이가 갑자기 희귀 질환에 걸려 명재경각의 상황에서 새벽에 소아청소년과 응급실을 찾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자본주의는 이 확률이 거의 0에 수렴하니, 기댓값도 0에 수렴한다고 응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불안은? 불안은 확률을 계산하지 않는다. 불안은 실낱같은 가능성도 무한으로 증폭시킨다. 만에 하나 그런 아이가 있으면 어떡하지? 살아서 병원에 갔는데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없어 아이가 죽으면 얼마나 억울할까? 그렇게 되면 그 부모가 평생 지고 살아갈 슬픔은 또 어떻게 감당하지? 그리고 예비 부모들이 이런 상황을 걱정하면서 출산 자체를 포기하면 미래는 어떻게 되지? 설마, 이 모든 꼬라지를 다 지켜보던 신이, 자신의 메시지를 가지고 태어난 전령에 대한 대우를 견디지 못해서 결국 인간에게 절망하면 어떡하지? 아아, 세상은 멸망하겠구나.
나도 자본주의의 혜택을 듬뿍 받으며 산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언제든 갈 수 있는 병원이 종류별로 널려 있는 것도 다 자본주의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아이들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합리적인 자본주의보다 지극히 비합리적인 불안이 더 필요하다고 믿는다.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를 선언한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의 결정 역시 그러한 불안에서 말미암은 것이라고 믿는다. 단순히 먹고 살 길에 대한 자본주의적 계산이 아닌, 아이들의 건강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자본주의 최상위 계층에 있는 의사들로 하여금 그런 단호한 결정을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이 작별인사에 불안을 느끼자. 턱없이 허황된 불안이라도 좋다. 어쩌면 세상은 곧 멸망할지도 모르니까.
세상읽기
가끔은 원뿔형의 인디언 천막에 들어가 종알종알 싱그러운 헛소리를 하다 잠이 들었다.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얼굴로.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슴이 저릴 정도로 무고한 얼굴로 잤다. 신기한 건 그렇게 짧은 잠을 청하고도 눈뜨면 그사이 살이 오르고 인상이 변해 있다는 거였다. 아이들은 정말 크는 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그리고 그런 걸 마주한 때라야 비로소 나는 계절이 하는 일과 시간이 맡은 몫을 알 수 있었다. 3월이 하는 일과 7월이 해낸 일을 알 수 있었다. 5월 또는 9월이라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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