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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Love is illusion of abandonment 본문
7면 대학원신문을 읽고
Love is illusion of abandonment
김홍민,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석사과정
11월호가 나에게는 폐허처럼 느껴졌다. 여덟 면의 지면을 꿰뚫으며 연신 습격해오는 ‘평화’라는 말은 그만큼 평화란 시대착오적인 것이며, 정말 헛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총체적 난국과 폐허 위에서 무엇을 하란 말인가?’ 애석게도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아니 피하고 싶었던 물음을 마주한 인간에게는 물음으로 되갚는 일밖에는 할 수 없다.
1면의 「현행 국군의 날의 냉전적 기원과 전쟁 ‘기념’ 문제」, 2면의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학생사회, 전쟁의 정치적 소비 우려돼」와 7면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는 전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어느 한 편의 국가/민족의 승리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만들어 낸 참상과 휘말린 이들을 기억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었다. BBC에서 진행한 한 인터뷰가 떠올랐다. 화면에 비친 이스라엘 대위는 선별적인 정밀타격을 통해 적군만을 섬멸하는 무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시멘트 가루로 뒤덮인 아이의 방에서. 이분법은 우리가 딛고 있는 경계를 망각하게 만든다. 2면의 「오래 보고 싶습니다」와 「“줄까말까식 연구·강의 환경 뿌리채 뒤엎자!!”」는 학계 및 대학의 기울어진 지형 위에서 재현되는 남성 연구자와 사라지는 여성 연구자들, 강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고, 3면의 「한국형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이름짓기의 필요성과 현주소」,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아!」에서는 고립과 외로움에서 비롯한 고통을 병리학적으로 낙인찍는 사회를 지적한다. 맥락은 조금씩 달라도 배제된 이들을 구성하는 사회·문화적 결정요인들에 주목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4면의 「한국 청년 ‘아픔’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에서 이러한 질문에 ‘아픔’이라는 감정적이고 추상적인 감각을 토대로 삼아 청년들을 좇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6면의 「김윤식 교수 5주기 … 그의 연구와 비평을 재조명하다」는 한편으로는 김윤식 교수과 일본 현대지성들의 만남과 그로 인해 촉발된 내면의 욕망을 다루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시대의 욕망으로서 문학사가의 정체화와 그 예정된 실패를 모순된 욕망의 충돌로 읽어내고 있었다. ‘패배의 흔적이나마 [...] 남기고자’ 했다는 그에 대한 평가는 「이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있다」에서도 이어지는 듯했다. 제국의 눈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미세한 떨림은 설명이 실패하는 지점에서 ‘미해결’된 채로 남아 있지만, 그 사실을 인지할 때마다 그와 ‘연결’됨을 느낀다는 점은 내게 깊은 통찰을 주었다.
5면의 「민주주의의 사각지대에서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질 것인가?」와 7면의 「성마르지 않은 호흡으로」에서 이 연결과 만남의 가능성을 모색을 상상할 수 있었다. 5면의 변재원은 불평등한 담론과 정치 속에서 장애인들은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개인’으로서 포섭되지만, 감염의 논리에 의해 ‘나머지 국민’으로 방치되고 차별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7면의 윤희상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리멸렬한 삶’으로 대변되는 ‘갈기갈기 찢긴 삶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이 물음을 매개로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두 글이 돌아간다. 하나의 극에서는 개인의 장애를 사회의 장애로 전환하는 ‘나타나기(demonstration)’의 전술을 통해, 사회와 운영 메커니즘의 잘못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공론장에 등장하여 정치적 목소리를 유도한다. 다른 극에서는 그들이 일으키는 소란(騷亂)을 다변(多辯)이라는 형태로 흩어 쫓아낼 것이 아니라, 나타난 것을 제대로 〈보기〉를, 공론장의 공(公)이 되어 그들이 무대 올라온 신체와 목소리를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묶어내고 응축하고 있었다. ‘나타나기-보기’의 이중체의 입은 말하는 입이 아닌 호흡하는 입이며, 서로 호흡을 맞추고 또 맞물리는 입이다. 이런 조건에서 목소리는 억압하고 판단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무대 위의 신체와 목소리가 될 수 있는 걸까? 그 가능성을 같이 희망하는 8면의 하은빈의 연극비평 「무대 위 장애의 몸과 이어지는 질문들」에서 텍스트의 프레젠테이션이 선행되고 배우들의 신체와 그 발화가 부차적인 위치에 있는 상태에 대한 비판적인 질문들과 포개어 볼 수 있었다.
지난 대학원 신문을 관통하는 가장 큰 물음은 이분법적인 재현에 연루되지 않는 연대 가능성이었다고 생각한다. 사회 속으로 용해되어 투명해진, 그러나 항상 우리의 주변에 파편화된 채로 존재하는 목소리들을 어떻게 결정화할 것인가? 결국, 우리는 어떠한 자극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닳고 닳은 말이지만, 그것을 사랑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 빠진 눈은 사라진 이들의 손짓을 ‘환영’이라는 형태로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제 오히려 나는 감히 ‘사랑’할 것을, 감히 ‘평화’란 신기루를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헛것이 보인다면 그곳은 손짓과 목소리가 아우성치는 곳이니 그곳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충격과 두려움의 맛은 “비전형적 전형성”(5면, 「할머니와 손녀」)이란 말처럼 뻔한 맛일지 모른다. 그러니 나는 차라니 구깃거리는 사랑을 하련다, 그렇게 나는 생각하며 충격과 두려움이 가득한 2023년을 버텨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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