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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이미지를 읽고, 이미지를 쓰다 본문
이미지를 읽고, 이미지를 쓰다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김하린
대학원신문 12월호 1면 기사의 첫머리를 당당히 차지한 ‘이미지’라는 단어는 이제 내게는 곧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는 한다. 눈을 속이는 기하학적 착시부터 조명이나 각도 등의 문제로 실물과 전혀 다른 모습을 담게 된 사진. 의도적으로 가까이 배치된 것과 멀게 배치된 것, 혹은 자세히 서술된 것과 축소되어 서술된 것. 최근 급속도로 발달한 미디어 매체와 AI는 내가 접근할 수 있는 정보 자체를 선별하여 ‘나의 취향’에 ‘맞추어진’ ‘현실’을 내 눈앞에 가져다 놓는다. 이 만들어진 현실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할까. 12월호를 읽어 나가는 과정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1면의 기획 인터뷰 “이미지, 전쟁을 삼키다”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이미지를 활용한 여론전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살피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 모두 가해자-피해자의 이분법적 프레임 속에서 자신을 피해자의 위치에 놓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중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나, 급격히 형성된 관심이 편향되거나 거짓된 이미지들에 휘둘리는 것에는 주의가 필요하다는 경고가 날카롭게 와닿았다.
5면의 “자유주의의 모순이 응집된 곳, 알시파 병원”에서는 탈랄 아시드의 『자살 폭탄 테러』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의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병원 폭격과 연결하여 읽고 있다. 자살테러에 씌워진 ‘생명을 경시하는 야만’이라는 이미지는 테러에 못지않은 살상력을 가진 ‘문명국’의 반격 행위를 정당화한다. 민간인 보호 원칙을 악용해 민간시설에 몸을 숨기는 하마스의 ‘비열한’ 행위는 민간인과 환자가 모인 병원에 쏟아진 폭격의 책임을 하마스에게 돌린다. 다시금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역 점거가 하마스의 민간 지역 테러를 정당화했다는 1면 인터뷰의 지적으로 돌아가 보지 않을 수 없다. 모순과 모순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환하는 상황에서 한 면의 입장만을 바라보는 것에 과연 의미가 있을까.
3면에서는 헌법재판소의 군형법 동성애 처벌 조항 합헌 결정에 대한 두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인터뷰 “헌법재판소의 군형법 92조 6의 합헌 결정을 통해 살펴본 군대 내 동성애 인식”에서는 문제가 되는 조항에서 드러나는 차별적 인식과 함께 헌재가 중요시하는 ‘군기’, ‘군의 특수성’이라는 개념의 모호함을 지적하며, 동성애 혐오적 인식을 법의 입법 목적과 법의 내용 사이의 괴리가 커진 이유로 파악하고 있다. 기고문 “군형법 추행죄가 상상하는 동성애는 없다”에서는 동성애자 본인의 시각에서, 해당 법조항에 내포된 동성애자 모두를 성욕에만 이끌려 정상적인 임무 수행이 불가능한 인물로 바라보는 폭력적이고 혐오적인 시선을 지적한다.
6면에서 소개된 발표 중에는 일반대중이 어떤 서사와 이미지에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소비하는지를 고찰하는“‘악녀’의 윤리와 그 초과”가 인상깊었다. 페미니즘적으로 소비되는 작품에서 창작자에게 기대되는 높은 윤리적 기준, 독자의 욕망을 대신 충족하는 ‘악녀’ 캐릭터의 매력도가 캐릭터의 도덕성과 상호 교환되는 지점, ‘악녀’ 캐릭터들의 행위를 제한하는 뚜렷한 윤리적 한계선 등이 주요 논점으로 다루어졌는데, 이는 자연히 현실의 뉴스를 가해자-피해자 이분법적 구도로 따져 ‘보다 도덕적인 쪽’의 편을 들거나 ‘보다 부도덕한 쪽’을 비난하려 하는 태도와 연결되어 읽혔다.
“아이러니스트의 자기-서사 쓰기와 애도”, “목소리와 리듬의 미래”에서는 각각 작가 임솔아와 배수아의 작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임솔아의 소설들에서는 인물들이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공감하며 연대를 형성한다. 배수아는 ‘나’와 타자 사이 말걸기가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한 단면의 이미지로만 서술하기를 거부한다. ‘나’와 타자를 서로 완전히 단절시키거나, ‘나’를 중심으로 타자의 맥락을 축소시키는 것이 보편화된 한국 사회 속에서 두 작가가 취하는 전술을 보여주는데, 이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느껴졌다.
각 면에 실린 다양한 시각을 녹여낸 기사들이 한 호의 신문을 입체적으로 구성해내는 모습 자체가 내게 가장 실천 가능한 해답을 주지 않았나 한다. 완벽히 통일되고 일관적인 현실이라는 것은 이제 와서 기대할 수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되는 일이 되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각 단면을 최대한 깊이 들여다보는 것뿐일 테다. 앉은 자리에서 손을 뻗기만 해도 짓눌릴 듯한 양의 정보가 쏟아지는 지금, 묵묵히 고전적이고도 정갈한 형식을 고수하는 이 매체의 존재에 대한 새삼스러운 고마움과 반가움을 담아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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