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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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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대학원신문 후기

우리가 무의미한 동작을 취할 수 없다면

Jen25 2024. 5. 3. 16:01

우리가 무의미한 동작을 취할 수 없다면

 

김희령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우리의 언어와 움직임은 의미의 포화상태에 있고,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서로가 부딪히며 살아간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이라는 것이다. 모든 행동에는 의미가 담긴다. 그것이 의도한 바이든, 의도하지 않은 바이든 그 의도를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정치일까? 현재 우리 사회는 형형색색의 바둑돌이 서로의 집을 겨냥하고 있는 커다란 바둑판이다. 상대의 집을 부수기 위해서는 상대의 수를 읽어내야만 한다. 혹은 상대의 수를 읽었다고 주장하여야 한다. 돌들의 전쟁을 직관하는 입장에서, 이는 정치가 아닌 전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대학원신문 4월호는 그러한 집단사회적 갈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내가 살아가고 있고, 또한 살아내야만 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

1면에는 영화 <건국전쟁><파묘>, 두 영화를 두고 불거진 정치적 논쟁에 대해서 다루었다. 김덕영 감독이 <파묘>를 이른바 좌파영화로 규정함으로써 <파묘>는 실제 의도와는 달리 정치 무대 위로 소환되었다. 한 편의 상업영화가 제작되고 상영되는 것을 고도의 정치적 맥락으로 해석하였다는 것인데, 이는 총선 결과를 염두에 둔 행동이다. 해당 기사에서는 영화가 이데올로기가 아닌 영화 그 자체로 평가되어야 하며, 관객이 스스로 엄격한 가치판단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영화의 본질에 정치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해도, 의도되지 않은 것마저 의도한 것으로 주장하는 수읽기는 결국 과도한 갈등을 부추길 뿐이다.

의료 개혁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이다. 3면에서는 의료계와 정부 사이의 상처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해당 면에서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것은 한 의대생 전공의의 기고문이었다. 양 진영에서 한치의 양보도 없는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 건강한 정치가 실종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이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미 없는 수싸움과 공격이 아닌 소통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요원해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5면에서는 미셸 푸코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를 소개하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팔레스타인이 겪고 있는 보이지 않는 폭력 및 차별에 대해서 다룬다. “자신과 더 쉽게 동일시할 수 있는 사람들, 자신과 비슷하다고 이해하는 사람들의 고통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은 사회에 존재하는 또 다른 폭력과 차별을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갈등은 국내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국제적인 갈등과 마주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그리고 북한과의 갈등 등등.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전쟁은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인식 범위 바깥에 위치하는 세계에 대해서 공감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저변을 넓혀가기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8면에는 인터넷과 젠더 편향사이의 관계를 연구한 흥미로운 칼럼이 실렸다. 우리가 매일같이 마주하는 무의식적 편견이 검색 알고리즘에도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 갈등의 원인은 무의식적으로 학습되는 것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각과 인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김연수의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은 생각한다. ‘들리는 대로 듣고 보이는 대로 볼 뿐 거기에 뭔가를 더 덧붙이지 않을 수 있을 때, 인간은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우리는 의미로 가득한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모든 정치적 함의들이 부딪히고, 소음을 일으킨다. 조용한 충돌과 물리적인 충돌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난다. 앞으로도 우리의 행동이 완전한 무의미를 지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본래 인간이 정치적 존재이기 때문이며, 우리는 사회와 더불어 관계맺음을 통해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러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싸워 이겨야 하는 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너무나도 간단한 윤리적 명제이지만, 우리는 이를 잊어버렸다. 그리고 앞으로도 기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매번 선거철이 돌아올 때마다, 출산율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현대사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난민 문제가 뉴스에 나올 때마다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정치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 가끔씩 다들 피곤하게들 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정치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정치의 본질이 전쟁이 아닌 협력이라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희망 없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걸어보는 것. 움직임을 위한 행동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경험해왔고 앞으로 경험하게 될 인간의 가장 강력한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