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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시대에 인권의 의미를 반추하기 본문
혐오의 시대에 인권의 의미를 반추하기
장효민 고려대학교 역사학과 석사과정
혐오가 만연한 시대다.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뜻의 혐오(嫌惡)는 분명 극단성을 가지고, 때문에 쉬이 쓰일 표현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혐오’라는 표현이 가지는 의미와 위력에 대해 이렇다 할만한 인식 없이 너도 나도 일상에서 이를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는 커다란 시사점을 남겨주며, 특히 혐오의 대상과 결부될 때 두드러진다. 좁게는 ‘나’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타자부터 넓게는 그 카테고리 내에 자리함에도 자의적인 특정 기준에 대한 충족 여부로 ‘타자’로 호명되는 경우까지, 혐오의 대상은 다양하다. 혐오의 대상이 다양하며, 여러 대상에 혐오라는 표현이 거리낌없이 사용된다는 것은 결국 혐오 표현이 보편화되었음을 방증한다. 그리고 이러한 혐오 표현의 보편화는 세밀한 분류를 통해 혐오할 수 있는 객체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사회가 펼쳐졌고, 우리는 이에 동조하거나 혹은 순응하는 태도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때문에 ‘혐오’라는 표현이 일상에서 대중적으로 쓰이게 된 현재, 그 궤적을 되돌아보는 작업은 분명 유의미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혐오의 보편화라는 사회현상이 현재진행형인 만큼 단순히 원인을 조망하는 일-왜 ‘혐오’하는 행위가 당연하게 되었는가?-을 넘어서서 현실에서, 즉 현재라는 단위에서 그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볼 필요도 있다. 그리고 이때 인권의 의미를 반추하는 것은 하나의 방법이 된다.
흔히 사회적 약자로 명명되는 집단만큼 혐오 대상으로 분류되기 쉬운 이들도 없다. 사회적 약자는 사회 전반의 배려를 필요조건으로 하는 표현인데, 배려는 자발성을 요구한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는 배려 행위로부터 일탈한 특정 집단이 일종의 ‘공격’을 가하기에 용이한 대상이 될 여지가 농후하다. 1면과 3면에서 각각 다룬 무슬림 여성과 성소수자들이 그 대표적인 예시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혐오 행위에 대해 자성하고자 할 때 접근 방법이 중요하며, 인권의 관점을 취할 것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인권에 대한 접근은 혐오라는 이름으로 가해진 ‘공격’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그치는 행위가 아니라, 사회라는 공간 내에서 ‘공격’을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특히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이 가지는 상징성을 인권의 차원에서 조망할 때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던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의 이미지에 도전하는 것, 그리고 그 이미지를 앞세워 비가시화하고자 했던 근원적인 부분을 고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는 곧 혐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그 책임소재를 누구에게서 찾을지 묻는 데에서 탈피함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그간 객체로 간주되었던 이들을 중심에 두고, 그들의 시각에서 그들의 문제를 살펴볼 여지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단순히 종교 문제로 정리될 수준이 아니라 무슬림 여성의 주체성 탈각이라는 차원에서 사고하게 되는 것, 그리고 그 기저에는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반(反)문명’, ‘미개’라는 시선을 관철하고자 했던 제국주의의 의도가 존재했다는 것으로 시야가 확장되는 것이다. 인권이라는 관점은 특정 문제에 대한 겉핥기식 접근을 지양하고 당사자를 호명함으로써 침묵을 요구받았던 내용들을 상기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3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정상 가족’ 틀 내에서 저출생 문제에 접근해 온 그간의 시도는 이를 인구문제, 즉 사회구조적 차원으로 이해한다는 의미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과 대안들이 실시되었음에도 문제 해결은 요원한 상황에 있다. 국가 차원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은 결국 해당 문제의 당사자를 주변화하고, 그리하여 ‘인권’의 관점을 간과했다는 데에 있다. 즉, 당사자를 주변화한 채 이루어지는 문제 제기, 해결 방안 강구는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다는 자각이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생활동반자법 등 가족구성원 3법이 발의되고 법안 제정이 요구되는 양상이 이를 방증한다.
한편 2면에서는 학내 비정규직 구성원과 그들의 (쟁의)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명시적으로 인권의 관점을 택하지는 않았으나, ‘인권’이라는 커다란 카테고리로 6월호(277호)가 구성된 만큼 이들을 소개함으로써 시사하고자 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학내 비정규직 구성원들은 대학이라는 공동체 내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그들과 대학이라는 공간을 공유하는 입장에서 그들을 주변에서 목격했을 때, 그리고 그들이 관심을 (혹은 연대까지도) 필요로 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해야만 하는가를 고민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 답은 어쩌면 간명할지도 모른다. 이 어려운 시대에 인권의 의미를 반추함으로써 방향을 찾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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