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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끝없는 항해의 방향키를 잡는 것 본문
끝없는 항해의 방향키를 잡는 것
박소연 고려대학교 역사학과 석사과정
올해도 벌써 두 자릿수로 접어들었다. 9월까지도 지독했던 더위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취를 감추고 차가운 기운이 도는 아침에 이불 밖을 벗어나기 힘들어진다. 학교에도 각자의 하루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오고 간다. 이 하루들이 모여 또 한 해가 지나가듯이, 우리의 하루들이 모여 무엇을 해내고 있으며, 또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각자가 찾아 나서는 도착점에는 어떤 낙원(樂園)이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다시 새로운 곳을 향해 멈추지 않고 떠나왔지만, 망망대해 속에서 공부하는 목적과 도착점이 흐릿해 보일 때가 많다. 원하는 분야를 선택해서 왔음에도, 차마 말하지 못할 여러 파도와 부닥치다 보면, 어느 순간 지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항해의 끝이 있다는 것을, 각자의 낙원을 마주한 선례들을 보고 들으며 방향키를 다잡고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개강과 함께 돌아온 대학원 신문의 9월호에서는 유익하고 공감도 되는 기사들을 볼 수 있었다.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글로 접할 수 있다는 매개체로서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된다. 그중 필자의 학문적 낙원인 선례 두 가지도 마주할 수 있었다. 4면 고대 아카데미아에 소개된 강필구 선생님의 박사 논문이 바로 그것이다. 「전시체제기 일본 내 조선인 탄광 노동자의 노동 통제 실태와 임금 수탈」은 조선인 노동력에 대한 일제의 조사부터 동원, 통제, 그리고 임금 수탈까지 논하고 있다. 이는 “일제의 침략전쟁 수행을 위한 적극적이며 강제적 노동력 수탈”로서 “식민지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운영과 전쟁 수행에 필요한 기본적인 노동력을 저임금 체계와 동원 행정을 통해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의 본질”에 이른다. 또, “조선의 산업과 사회구성 근간이 되는 인적자원의 말살과 수탈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어 해방 이후의 한국 사회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저자의 요약처럼 오늘날의 한국사 인식에 빠지지 않는 뜨거운 감자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사료의 발굴 문제부터 연구 윤리, 그 외 여러 많은 문제를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고 보면서도 꾸준한 연구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건강을 가장 우선으로 하는 조언도 남겼다. 선후배를 떠나 이미 그 길을 지나온 연구자로서, 파도에 부서지지 않고 그 흐름을 타고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6면에서는 지난 6월 21일 진행된 강만길 선생 1주기 추모 학술회의를 다루고 있다. 중세사에서 근현대사로 이르는 방대한 연구 범위에 각 세부 시기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논의가 이루어진 자리였다. 이는 역사학계에 남긴 강만길의 족적이 학술적 의미 그 이상으로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그의 역사학에서 나온 여러 주제와 제시된 후속 과제들은 이후 연구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연구에 있어 자신의 주제를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의 역사학은 오늘날 길을 헤매고 있는 동학(同學)의 신생 연구자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이자 길잡이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현실을 돌아보지 않을 수는 없게 된다. 5면에서는『수용, 격리, 박탈: 세계의 내부로 추방당한 존재들, 동아시아의 수용소와 난민 이야기』의 저자 신지영과의 인터뷰를 볼 수 있다. “피해자의 위치에만 놓여 있었던 한국의 위치가 달라졌다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앞선 일제하 식민지로서 다방면의 강제 동원과 수탈의 피해자던 한국이 2018년 예멘 난민에 대한 국민적 반대를 드러내는 가해자성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중잣대를 들이미는 인식들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7면 사설에는 「변하지 않은 것들, 변해야만 하는 것들」을 주제로 오늘날 사회 문제들이 일상으로 굳어지고 무뎌지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N번방 사태’는 기술의 발전을 악용한 딥페이크(Deep fake) 문제로까지 확산했고,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문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 왜곡은 2024년에도 지속되고 있다. 2025년 최저임금이 170원(1.7%) 인상되는 반면 청탁금지법의 한도는 5만 원으로 인상됐다. 이는 교내에서 2023년의 임금 협상이 결렬된 문제와도 대비된다. 당연하지 않은 문제가 원래 그랬듯이 일상에 ‘수용’되고 ‘묵인’되며, 정확히는 포기를 요구하게 한다. 이는 다시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돌아가게 한다.
“한계란 끝이 아니라 도움닫기다.”라는 필자의 오래된 좌우명을 꺼내본다. 망망대해 속 방향키를 잡고 파도를 이겨내고 올라타다가도, 또 다른 파도에 삼켜져 휩쓸려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파도가 학업에서 기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좌우할 수 없는 외부의 요소들도 있다면, 이를 ‘이겨내고 올라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항해를 멈추지 못하는 것에는 여전히 낙원이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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