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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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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대학원신문 후기

비록, 낱낱의 삶일지라도

Jen25 2024. 6. 13. 13:06

비록, 낱낱의 삶일지라도

 

황윤주 고려대 국문과 석사과정

 

사람은 한 명 한 명 제각각 다른 존재라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느끼는 공통의 마음이 있다면 한때의 지나간 것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아닐까. 가령 지금은 부재하는 대상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간다든지,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사물을 곁에 둔다든지. 이렇듯 타자의 존재를 그리워하는 것만으로 나와 타자의 관계를 인정하고, 근본적으로 과거와 조우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물론 개별적인 기억들을 일련의 기록으로 늘어놓는 것이 곧바로 역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기억이 집단 공통의 경험일 경우 어떤 보편성을 파악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지도 않은가. 6월호에서는 지난 호의 전면을 아우르고 있는 키워드, ‘기억기록관계 맺음의 방식을 통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일찍이 벤야민은 주체의 기억은 사건이 완료될지라도 영원히 망각되거나 소멸되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재생성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시간은 불연속적으로 만나며, 과거를 부유하던 몸짓이 현재에 와닿는 순간 이전에는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목소리를 잃은 자들의 이야기도 예외가 아니다. 2014, 팽목항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는 전 국민을 강렬한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었다. 4.16기억 교실, 4.16전시관, 건립 예정인 4.16생명안전공원까지도참사의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애도하기 위한 몸부림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역사문제연구소는 우리 모두 하나의 기억 주체로서 기억해야 할 윤리적 당위성을 강조한다.

같은 맥락에서 6면의 아카이빙은 기억하는 행위와 연결된다. 대표적인 예로 구술 작업이 있는데, 이는 체험자들의 내러티브를 지금, 여기의 순간에 소환하는 것이다. 주체가 갖는 과거의 기억은 계속해서 현재와 교호하며 의미를 확장하고 있다. 만약 기억의 조각들을 지층 속 그대로 묻어두기만 했다면 그저 망각될 기억에 불과했겠으나 그것들을 처음부터 끌어올린다는 것은 우리의 손으로 다시 역사를 재구성한다는 시사점이 크다. 이때 만들어진 역사는 하나의 분명한 의미가 고정된 대문자의 역사가 아닌, 늘 새롭게 조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소문자의 역사다.

역사의 이면을 살피려는 시도는 현재를 대면하는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다. 4면에서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혁명이라 불렸던 4.19가 대문자로 기록되기까지 정치적 포섭 양상을 다루고 있다. 기억이 역사화되기 위해서는 호명하는 주체의 성격도 중요한데, 4.19의 경우 시작부터 다소 복잡한 함의가 있어 그 가치를 숙고하는 데 긴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주어진 역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공란이 될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의도를 먼저 간파해야 함을 보여준다.

5면에서는 지워지거나 주변화된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것을 경계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극단적인 조명은 피로감을 주고 대중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그럴수록 필요한 것은 너무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게 비추는 태도, 즉 중용이 아닐까. 같은 면의 마지막 단락을 장식하고 있는 도롱이적 존재는 우리의 시선을 다시 개인적 차원으로 돌리지만, 개별의 삶도 결국 사회적 구조와 동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살아내기 원하는 욕망을 긍정하되 사회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방법도 같이 모색하는 것이 앞으로 당면한 과제로 보인다.

8면에서는 우리들 마음 속에 지지 않는 꽃들로 4개의 비극적 참사를 환기한다. 혹자는 오늘날의 사회를 파편화된 개인들의 집합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비록 낱낱의 삶일지라도, 우리가 연대되리라 기대할 수 있는 매개는 바로 타자의 고통을 기록화하는 행위가 아닐까. 개인의 서술, 혹은 증언이 어떻게 실천적이고 사회적인 행위가 될 수 있는지 고민을 던지고 있으니 말이다.

억압되어왔던, 그래서 소실되었다고 여겨졌던 목소리들이 많다. 너무나도 많다. 우리의 일생을 스치고 지나갔을 그것들은 막연히 흘러가지 않고 번뜩이는 파열을 남겼던 것들이었을 테다. 그 너머에 잇자국을 남기는 말소리들을 포착하여 현실에 잘 내보이는 것이 남겨진 자들의 의무일 것이다. 잊지 않겠다는 외침은 결국,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다짐이다. 언젠가 이름도 모를 희망들이 무수히 짓밟혀 스러질 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멍울을 지며.

 

비록, 낱낱의 삶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