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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어느 인문계 대학원생의 회고 본문

2면/원우발언대

어느 인문계 대학원생의 회고

Jen25 2024. 4. 4. 13:08

 

어느 인문계 대학원생의 회고

어느 대학원생

 

처음 대학에 진학할 때 역사에 대해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안고 학부 전공을 역사로 선택했다. 그러나 학부 전공 수업도 이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이에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려면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군대에서 전역을 앞두고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러나 대학원 생활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못하지는 않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첫 학기부터 산산이 부서졌다. 생각보다 내 글쓰기 능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고, 수업 및 과제 부여에 담긴 교수님의 의도 등을 잘 알아채지 못했다. 또한,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도 몰라 당연히 알아야 하는 전공 관련 지식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였다. 그렇지만 때가 되면 졸업해야지라는 생각은 늘 했었다. 그렇게 목표했던 학기가 다가왔지만, 전혀 준비되지 않았기에 조급해졌다. 다행히도 지도교수님이 주신 연구 주제로 논문 심사에 들어갔고, 모든 것이 예상대로 흘러갔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착각은 심사 과정에서 크게 박살이 났다. 내 글에 대한 교수님들의 평가는 그동안 내가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는 것을 충분히 깨닫게 해주었다. 창피함과 무력감, 후회뿐만 아니라, 그동안 지도해 주신 교수님에 대한 죄송스러움 등 여러 감정이 나를 괴롭혔다. 다행히도 논문은 통과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쨌든 졸업은 결정되었다. 기쁜 마음은 잠시였고, 다시는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나는 공부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짐은 나 스스로에 의해 깨졌다.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보던 중, 우연히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책 마지막 부분을 통해 이 책이 박사학위 논문을 수정해 출판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문득 나도 이런 결과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 명의 연구자로서 뚜렷한 성과물을 내고 싶다는 어쩌면 치기 어리고, 한편으로는 대책 없이 생겨난 이 욕심이 나를 잠식하였다.

다행히 목표했던 대학원 박사과정에 합격하게 되어, 이전과는 다른 학교에서의 대학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학기 초부터 열심히 해야지라는 혼자만의 다짐은 나의 이러한 부족한 면을 볼 때마다 더 열심히 해야지라는 지극히 당연한 방향으로 흘러가야 했으나, 스스로를 자책하는 방향으로만 갔다. 그리고 곧 공부를 계속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고향 집에 돌아가 이에 관해 부모님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고, 결론은 힘들더라도 일단 학기는 마쳐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씀에 순응했고, 어찌어찌 정규 과정을 마치고 현재까지도 이 대학원에서 계속 공부를 하고 있다.

대학원, 그중에서도 인문계 대학원에 입학한다는 것은 집이 부자가 아닌 이상 여러 고민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고민의 깊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깊은 고민을 거친 뒤, 철저히 준비함으로써 원활한 대학원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고, 고민은 많이 했지만 원활하지 못한 대학원 생활 중이거나 혹은 그만둔 분들도 있을 수 있다. 대학원생을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학교의 시선, 등록금은 늘어나지만 나아지지 않는 연구 환경, 학생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냉난방 환경은 전기 절약이라는 학교 측의 가스라이팅으로 침해받는 게 당연해졌다. 심지어 대통령이 인문학 등의 학문을 천시하는 상황이다. 이러니 돈도 안되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은 본인을 어떻게 여길 것인가?

내가 현재까지 이곳 대학원에 남아 있는 건 실력이 향상되는 등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이를 다잡고 버텨서 도달한 것일 뿐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미약하나마 나의 연구가 학술지에 게재되는 등의 소소한 성과도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공부를 그만두기로 생각한 나의 결심을 스스로 깨게 된 계기였다.

앞서 부끄러운 필자의 대학원 생활을 난잡하게라도 적은 것은, 다른 대학원생분들이 이런 사람도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일종의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무책임한 말일 수 있지만, 공부하는 데에는 거창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저 가끔씩 찾아오는 연구의 즐거움과 나의 연구가 미약하나마 학계에 보탬이 된다는 느낌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박사를 졸업해도 미래를 알 수 없는 현실이기에, 이런 말을 하기에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앞서 말한 즐거움과 성취감을 기대하며 공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나는 오늘도 펜을 잡는다. 여러 대학원생 선생님들이 각자에게 놓인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고 본인이 대학원에 입학한 계기를 생각하며 본인들 각자의 연구에 매진해 모두 원하는 성취를 이루셨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