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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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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면/원우발언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여기에 남아 있는가?

Jen25 2024. 3. 9. 14:29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여기에 남아 있는가?

 

어느 대학원생

 

사람의 귀는 참 간사하다. 대학원을 진학을 고민하며 주변에 조언을 들으러 다녔을 때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을지 모른다. 나는 주변의 수많은 우려와 만류가 있었음에도 듣지 못했고 진학을 독려하는 응원만을 기억하며 결국 대학원에 들어왔다. 이미 공부의 어려움을 각오했음에도 그 이상으로 힘겨운 나날이 이어졌다. 수업은 소화는커녕 따라가기에도 벅찼고, 발제문을 작성할 때 글쓰기 능력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혀 내가 한국인이 맞는가를 의심하게 했다.

그래도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선택한 학업을 포기하기보다 버티는 것을 선택했다. 어느덧 공부하는 방법이 익숙해져 갔고,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도 미약하게나마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대학원 생활을 버티면서 성취감을 조금씩 충족시켜 갔다. 내가 대학원에 남겠다고 결심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어떠한 사명감과 거대한 문제의식이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는 공부를 할 수 있고, 부족하나마 그 결과를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곧바로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바로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이미 경제적 활동을 시작할 나이를 한참 지나 가정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등록금은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큰 액수였기에 장학금을 알아봐야 했다. 그러나 많은 수의 대학원생에 비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자리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어렵게 구한 조교 등의 자리는 매 학기 고용이 보장되지 않았기에, 나는 방학 때마다 다음 학기를 걱정하며 공고를 뒤져야 했다. 지도교수님이 대학원생의 경제적 어려움을 깊이 공감하고 있는 분이라 장학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소정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 등에 참여할 기회를 주셨으나 그것도 충분한 액수는 아니었다.

게다가 경제적 어려움은 등록금에 국한되지 않았다. 아무리 지출을 줄여도 생활비는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애초에 생산성 없는 인문계 대학원에 진학한 이상 경제적 풍족함은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지만,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이는 다시 부메랑처럼 돌아와 학업에 집중하는 절대적인 시간을 줄여야만 했으며 내가 대학원에 남기로 결심했던 근간을 뒤흔들었다.

더욱이 안타까웠던 점은 이렇게 어렵게 취득한 학위가 근본적으로 경제적 안정성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석사학위 취득 이후 취업 활동에 나서봤지만 정규직이 보장되는 일자리는 드물었고 그마저도 경쟁률이 극심했다. ‘계약직조차도 근무 기간이 매우 짧고 업무 강도에 비해 월급이 형편없는 곳도 상당히 많았으며 심한 경우에는 근로계약서조차 작성해주지 않아서 내가 먼저 뛰쳐나온 곳도 있었다. 그나마 있는 일자리들도 학위취득이 경력으로 인정되면 다행이었다. 석사학위가 있어도 급여는 학사졸업과 같은 수준인 곳이 더 많았다. 어디까지나 경험담이지만 학교 밖은 그래도 나의 경험 자체를 인정해주는 학교 안보다 훨씬 냉혹한 곳이었다.

많은 수의 대학원생들이 학업을 중간에 포기하는 데에는 다양한 요인이 존재하겠지만 이러한 현실적 문제가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석사학위논문을 쓰고 박사학위에 도전하지 않는 이유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구조에 기인하지 않을까? 박사학위를 끝까지 마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을 뿐만아니라 긴 시간을 들여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경제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실상이 이러한데 대학원을 떠나는 이들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현실적 어려움은 앞으로 더 열악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안으로는 등록금이 오르고, 밖으로는 R&D 예산이 삭감되어 대학원생들의 고충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인구가 점차 감소하는 관계로 대학의 교원 수도 전반적으로 축소되고 있고 그에 따라 우리의 미래 일자리도 이전보다 더 줄어들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우 여러분들과 나는 여기에 남아 있다. 아직도 문득문득 잡다한 일로 심신이 지칠 때면 대학원에 아직도 남아있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우리는 왜 여기에 남아있을까? 물론 각기 답은 다를 것이다. 내가 이곳에 남은 이유는 단순히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한 나의 우유부단함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 끝을 맺지 못한 학업에 대한 미련이 좀 더 큰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