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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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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사설

‘단순함’에 현혹되지 않기

Jen25 2024. 4. 4. 16:48

단순함에 현혹되지 않기

 

아프면 병원에 간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이것이 당연하지 못한 일이 되어버린 현실이다. ,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다는 이유로 의사들이 모든 욕심을 버린 채 오로지 인류애만을 발휘하리라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장 주변에만 해도 예정된 수술일 단 며칠 전에 수술을 진행할 수 없으며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고 통보받은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의료계가 개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그 어느 직군보다도 막대하다는 것이 실감 나는 요즘이다.

그런데 현 사태를 보다 보면 기본적으로 파업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 이를테면 정작 중요한 배경과 이유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그저 파업의 주체를 악마화하며 근본적인 해결책은 고민하지 않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는 인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번 파업을 지지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간 엘리트주의를 대놓고 표방하며 오히려 몰상식함과 오만함을 드러내 온 대한의사협회의 인식과 태도, 그리고 개개인의 의지와 자율성이 아닌 권위주의적이고 강압적인 의사 집단 내의 분위기에 따라 사실상 강제로 진행되고 있는 휴학과 사직이 과연 얼마나 진정성 있는 행위인지 의문만 남는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무언가는 바뀌어야 하지 않겠는가. 전공의와 대학병원 교수들이 줄줄이 사직하여 병원은 아수라장이 되고 환자들은 죽어가지만, 의대 정원을 마침내 확대했으니 윤 정부의 승리로 끝났다는 억지스러운 스토리를 구상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사건의 본질을 의도적으로 무마하고자 하는 이들, 혹은 아는 척은 하고 싶어도 정작 알기는 싫은 이들이 주로 택하는 방법은 가장 단순한 프레임을 찾아서 씌우는 것이다. ‘이기적인 의사 악마들 대 피해 보는 국민들은 너무나도 명쾌하게 적과 책임소재를 지정하는 예쁜구도가 아닌가. 그런데 이번 일은 그렇게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인 해결책 역시 혹자가 원하는 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소수이기는 하나, 휴학이나 휴직과는 별개로 전반적으로 한국의 의료체계를 개혁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의료계 내부의 목소리가 실명 또는 익명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든 의료계든 여전히 의대 정원 문제를 제일 큰 쟁점인 것처럼 제시하면서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패키지의 내용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아는 이들, 아니, 알고자 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저 악마 같은 의사들과 그에 대항해 의대 정원 확대로 대응하는 강력한 정부라는 그림이 소화하기 쉬울 테니까. 진정 주목받아야 할 것은 이번 파업을 주동하는 의협의 목소리와 행동, 또는 단순히 강경 대응으로만 일관하려는 정부가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과 개혁 방향을 제시하는 이들의 크고 작은 목소리일 것이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귀결될지 단언하기 힘들지만, 향후 중요한 선례로 남을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러니 단순한 이분법적인 프레임에 현혹되기보다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또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앞으로 의료개혁 얘기가 나올 때마다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몇 달을 마냥 기다려야 하는 사태가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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