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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140416 본문
20140416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이하여 안산에 다녀왔다. 여느 때와 같이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켜본 교실 TV로 세월호 소식을 처음 접했던 게 얼마 전 같은데, 벌써 10년이 지났다니. 먼저 떠나보낸 자식의 명찰을 달고 단원고 4.16기억교실에서 담담하게 방문객들을 안내하는 유가족 앞에서, 그리고 그들을 위해 남겨진 수많은 “보고 싶어, 사랑해”라는 편지 앞에서 꾹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났던 그들을, 내가 20대 후반이 될 동안 영원히 어린 학생으로 남아야만 하는 그들을 나도 조금씩 잊어왔던 것은 아닐까. 부끄러움이 밀려와 방명록에 차마 이름 석 자도 쓰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6·25 전쟁 때 죽은 수많은 학도병은 기억하지 않으면서 죽은 자식들을 팔아 세금 낭비하는 빨갱이들”이라며 유가족들을 비난하며 돌아다니는 밴을 보자니 부끄러움이 곧 분노로 바뀌었다. 밴과 추모객들 사이에 있던 횡단보도가 마치 인간과 인간답지도 못한 이들을 구분하는 경계선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단순히 몇몇 극단적인 이들의 생각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일에 꼬리표처럼 천안함 피격사건이 거론되지 않았던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은 외면하면서 세월호 참사만 기억해달라고 떼를 쓴다는 논리 같지도 않은 논리로 말이다. ‘자유 정의 진리’를 외치는 이 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몇 년 전, 다시 돌아온 4월을 맞이하여 세월호 추모 행사 준비에 한창이던 때에 학교 정문에는 “천안함 피격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합니다”라는 종이가 걸린 팻말이 세워졌다. ‘이제는 그만 기억해도 되는’ 피해자들을 지우기 위해 ‘기억해 마땅한’ 피해자들을 명분처럼 내세우는 것을 어찌 위로와 애도라고 부를 수 있을까. 누가 세웠는지 모를 그 팻말에 걸린 종이 한 장은, 추모를 방해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끌어들이는 비겁하고 악랄한 양심의 무게였을 것이다(그들의 논리대로라면 3월 말도 아니고 때 지난 4월에 추모하는 것은 그 의미를 퇴색시키는 게 아닌지? 그렇다면 연평해전은? 연평도 포격사건은?).
10년. 그동안 누군가는 오랜 정치 공방에 지쳐 돌아서기도 했고, 슬픔과 분노를 상징했던 노란 리본을 마치 극단적인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표식인 마냥 조롱하기도 했다. 그런데 또 누군가는 억울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치열한 싸움을 이어갔고, 가까스로 구출되었던 누군가는 응급구조사가 되어 자신이 겪었던 기적을 다른 이들에게 돌려주고 있기도 하다. 저마다의 경험과 판단 속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쯤 했으면 그만 기억해도 되는’ 피해자란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2014년 4월 16일은 미흡한 체계와 대응, 보여주기식 행정과 기만적인 수습이 만들어낸 소용돌이에서 침몰하던 배를 지켜봐야만 했던 우리 모두가 잊지 않고 가져가야 할 기억이다. 차디찬 바다에서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어야 했던 이들, 그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던 이들, 그리고 남겨진 이들 모두가 마음의 평화를 얻고 치유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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