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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 폭력에 ‘봉기’와 ‘저항’이라 명명한 까닭 본문
하마스 폭력에 ‘봉기’와 ‘저항’이라 명명한 까닭
주디스 버틀러, 김정아 역, 『비폭력의 힘』, 문학동네, 2021.
백승덕 징병문제연구소 ‘더 나은 헌신’ 연구활동가
지난해 하마스가 벌인 행위는 무엇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하마스 전투원들은 이스라엘 마을을 급습하여 1,000여 명을 살해하고 200명 넘는 사람들을 인질로 끌고 갔다. 정치철학자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최근 열린 프랑스 진보단체의 토론회에서 하마스의 급습을 두고 “10월 7일의 봉기는 무력 저항이라고 말하는 게 솔직하고 역사적으로도 맞다”고 평했다.
버틀러의 평가에 대해 비판이 쏟아졌다. 성폭력과 인질극을 동반한 기습을 두고 ‘봉기’나 ‘무력 저항’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냐는 비난이었다. 한국 언론들도 버틀러를 두고 ‘대표적인 여성주의 철학자’라고 소개하며 그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버틀러는 앞서 다른 인터뷰와 칼럼을 통해 하마스가 가한 폭력이 “끔찍하고 역겨운 학살”이라고 규탄한 바 있다. 자신은 비폭력의 정치를 옹호한다고 반복해서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하마스의 폭력은 ‘봉기’이며 ‘무력 저항’이라고 봐야 한다고 제안한다. 정당하지 않다고, 끔찍하고 역겹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학살을 굳이 봉기와 저항이라고 부르며 논란을 감수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버틀러는 하마스의 기습이 있기 몇 해 전 출간한 『비폭력의 힘』에 마치 예언하듯 이렇게 적었다. “그냥 폭력에 반대한다고 발언한 뒤 그 발언을 본인의 입장으로 삼는다면 문제가 간단할 것 같다. 하지만 공론장에서 우리는 ‘폭력’이 불안정한 단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공론장의 여러 입장이 이 단어의 의미론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버틀러가 하마스의 행위가 폭력이며 모든 폭력에 반대해야 한다고만 말했다면 논란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폭력에 반대한다면 이스라엘 정부가 가해온 구조적인 폭력도 반대해야 한다. 버틀러는 그래서 ‘봉기’와 ‘저항’이라 이름 붙이며 “지배 상태와 폭력적인 국가 기구”의 폭력도 비판하려 했다. 하마스의 폭력을 간단히 규탄하는 것으로 끝내버리는 발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토지를 빼앗기고 매일 같이 폭격을 당하며 무차별적으로 검문당하고 구금되거나 심지어 살해당한 역사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비폭력의 힘』은 폭력에 맞서 비폭력의 정치를 일관되게 요구하는 버틀러의 입장을 보다 깊게 이해하게 해준다. 비폭력의 정치는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로 쉽게 치부되곤 한다. 역설적이게도 요즘 시위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구호가 ‘비폭력’일 만큼 폭력은 나쁘다고들 입 모아 말한다. 그러나 ‘폭도’로 지목된 이들에 대해선 국가가 나서 통행을 막고 감금하고 심지어 살상을 해도 된다는 여론 또한 다수를 차지한다.
버틀러는 폭력에 대한 인식이 이처럼 모순적인 건 국가가 폭력을 정의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계몽주의 이래로 자유주의 국가론은 국가가 자연상태로부터 법을 세워서 살해를 금하도록 만든 유일한 주체라고 묘사해왔다. 자연상태는 마치 창조주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본성에 심어놓은 개인들로 이루어진 태초의 공간처럼 그려졌다. 개인들이 서로 살해하고자 하는 본성을 억누르기 위해서 국가에 주권을 넘겼다는 국가론은 순전히 허구라는 점에서 신화다. 그럼에도 개인들의 살해 본성을 억누르기 위해 국가권력과 그 폭력기구들을 강화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폭력은 자기방어를 위한 정당한 폭력이기에 폭력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비폭력의 힘』에서 버틀러는 이러한 신화와 정반대인 현실에 주목하기 위해 자기(self)가 누구인가 묻는다. 자유주의 국가론에서 자기는 주로 생물학적 친척들이나 혼인으로 연결된 개인들이며 그 결과 민족국가로 귀결된다. 버틀러는 이처럼 한정된 자기에 대한 정의가 인종주의에 빠지기 십상이라고 비판한다. 자기방어의 논리는 지켜야 할 사람들, 즉 자신의 민족국가에 속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살려주거나 지켜줄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들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버틀러가 보는 현실은 다르다. 마치 유아가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며 성장하듯 개인은 자족적이기는커녕 사회적 유대관계로부터 분리되어선 살 수 없을 만큼 취약한 존재다.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이 말하듯 인간의 공격성은 유아로 하여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의존하는 대상을 파괴할 수 있다는 염려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인간의 공격성은 본성일지라도 타인을 지키고 보호하려는 윤리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서로 의존해야 하는 취약성을 지녔다면 자기의 범위 역시 한정하기 어렵다. 서로가 연루되어 있기에 개인이나 민족국가와 같은 주체(self)가 자족한다는 환상도 깨진다. 버틀러가 제안하는 비폭력의 정치는 이 같은 취약성 위에서 서로의 삶을 돌보는 일을 제1의 책무로 자각하도록 요구한다.
오늘날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함께 기억하며 세계인권선언을 만들었고 식민주의와 인종차별을 규탄하는 윤리 규범 속에서 안정된 삶을 그나마 영위할 수 있었다. 서로가 살육하고 파괴했던 역사를 함께 기억하고 희생된 이들을 차별 없이 애도하는 일은 그래서 사회적 유대관계를 가능케 했다. 버틀러가 하마스의 폭력에 ‘봉기’와 ‘저항’이라는 이름을 애써 붙이면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가해진 폭력을 환기하려던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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