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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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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Jen25 2024. 6. 13. 13:04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루퍼트 스미스 저, 황보영조 역, 전쟁의 패러다임, 까치, 2008.

 

백승덕 징병문제연구소 더 나은 헌신 연구활동가

 

 

병무청 대체역심사위원회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촌극을 자주 겪었다. 병역거부자의 신념이 진짜인지심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기관이니, 양심과 사상을 검열할 위험이 다분했다. 하지만 유치함은 예상치 못했다.

폭력에 반대하기에 군인이 아니라 대체역으로 복무하겠다고 신청한 이들이 있었다. 군대가 살인을 비롯해서 폭력을 행하게 만드는 조직이기 때문이었다. 폭력이 대체 무엇이냐는 골치 아픈 논쟁도 이어질 수 있지만, 국가기관에겐 사상 검열을 할 권한은 없다. 그런데 논쟁은 엉뚱한 데서 불거졌다. 군대가 폭력기관이라는 말에 군 장성 출신 심사위원들이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군대가 어떻게 폭력기관이냐, 폄하하지 말라는 호통이 이어졌다.

군대가 폭력기관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막스 베버도 국가란 폭력을 독점하는 정치 결사체라고 말했다. 국가가 군대 말고 어떻게 폭력을 독점하고 행할 수 있을까. 군 장성 출신 심사위원들은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에 국군의 사명이 국제평화의 유지에 이바지라고 적혀 있기 때문에 군대는 폭력기관이 아니라고 목소리 높였다.

군대가 폭력기관이 아니라는 훈계는 원론적이고 막연할 따름이다. 군대의 고유한 속성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나토 유럽연합군 사령관을 지냈던 루퍼트 스미스는 40여 년간 일선에서 군을 지휘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과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린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군대는 없다.’ 그가 쓴 전쟁의 패러다임은 군 지휘관들에게 군대 폭력의 속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 책은 스미스가 유엔 평화유지군 사령관으로서 사라예보에 주둔했을 때 겪었던 경험에 기초하여 쓰였다. 평화유지군은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되는 가운데 자행된 종족 간 학살을 막기 위해 파견되었다. 당시 인종 청소라는 말이 나올 만큼 사태가 심각했지만, 결국 평화유지군은 대량 학살을 막지 못했다.

유엔은 평화유지군에 인도주의’, ‘평화유지’, ‘안정화 작전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선에서 군사 활동을 전개했던 지휘관들에게 이러한 개념들은 실질적인 목적이 될 수 없었다. 이들은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의 패러다임은 무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전쟁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군사 활동의 목적이 정치적인 성과라고 말한다. 분명한 정치적 목적이 없다면 군사적인 전략 목표도 수립할 수 없다. 이 점에서 스미스는 클라우제비츠의 충실한 제자다. 클라우제비츠는 정치적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적의 굴복을 강요하는 폭력행위가 바로 전쟁이라고 말했다.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라는 유명한 경구가 의미하는 바가 그것이다.

스미스에 따르면 프랑스혁명 이후 등장한 민족국가 간 전쟁은 주권국가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전개되었다. 반면 핵무기의 등장과 탈식민 게릴라전 그리고 높은 군사비에 의해서 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특히 탈냉전 이후 전쟁은 정규군 간에 벌어지지 않는다. 그 대신 게릴라와 테러처럼 민간인들 사이에 뿌리내린 비정규군이 전쟁을 주도한다. 이 책은 새로운 전쟁의 양상 속에서 인민들 사이에 마치 뿌리줄기처럼 얽힌 무장조직들을 상대로 무력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전쟁의 양상이 변화했다는 건 이 책만의 독창적인 주장은 아니다. ‘새로운 전쟁이라는 개념은 90년대 말에 메리 칼도어가 제안하여 헤어프리트 뮌클러와 같은 정치학자에게도 받아들여졌다. 군사학자들이 내놓은 제4세대 전쟁이나 하이브리드전과 같은 개념도 새로운 전쟁론의 연장선에 있다.

새로운 전쟁론은 전장의 현실을 잘 모르는 침소봉대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재래식 전투와 전면전이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패러다임에 대해선 오랜 전장 경험을 지닌 저자의 이력과 풍부한 사례 때문에 탁상공론이라고 비난하기 어려웠다.

2022년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스미스의 분석이 현실성을 잃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침공이 전개된 양상은 오히려 전쟁이 과거로 단순히 회귀할 수 없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푸틴의 요리사였던 자의 민간군사기업이 침공을 이끌었던 사실이나 지리멸렬한 전장의 현실이 그렇다.

전쟁의 패러다임은 오늘날 전쟁에서 무력은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낼 때에만 유용하다고 말한다. 군사활동이 전개되는 지역민뿐만 아니라 군대의 자국민을 포함하여 세계 여론으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래서 법과 규범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군사활동이 국제법을 준수하면서 전장에서 무너진 법도 바로 세우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결론에선 영국 엘리트의 자유주의가 엿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기결정권과 주권과 같은 자유주의 규범이 돈바스나 팔레스타인 같은 전장에서 해결책보단 갈등요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전쟁만큼이나 새로운 법이 필요한 시점이라 다소 낡은 해법이란 느낌이다.

그럼에도 전장의 경험을 통해 제시하는 전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은 설득력이 크다. 전쟁의 속성은 평화를 추구하더라도 섬세하게 파악해야 할 현실이다. 전쟁에 대해 원론적이고 막연한 태도로 일관한다면 효과적인 무력 사용이든 평화든 모두 놓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