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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군사화라는 풀리지 않은 문제의식 본문
군사화라는 풀리지 않은 문제의식
-문승숙,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 또하나의문화, 2007
백승덕(징병문제연구소 ‘더 나은 헌신’ 연구활동가)
“식민지 지배의 부당성은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 국민의 의사에 반하여 주권을 침탈한 데 있는 것이며, 그것은 그 시기 경제적 성과의 좋고 나쁨과 같은 평가에 좌우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다.”
뉴라이트 기관장으로 비판받는 한국학중앙연구원 김낙년 원장의 말이다. 그가 『한국의 경제성장: 1910-1945』을 펴내며 식민지배의 부당성을 말하던 당시는 근대성 논의가 꽃을 피우던 시기였다. 한국사회의 근대화와 식민지배의 관계를 두고 오간 논쟁은 역사학계에 국한되지 않았다. 경제성장에 대한 실증으로 경제사 방법론을 벼리는 한편, 근대성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는 노력이 인문사회과학 전반을 넘나들었다.
‘착취냐 발전이냐’란 양자택일이 역사를 단순화하고 경제에 매몰시킨다는 비판도 있었다. ‘식민지 규율권력’에 주목한 연구자들은 권력이 자발적인 동원을 이끌어내는 메커니즘에 주목했다. 식민권력이 학교, 병원, 공장 등에서 계몽과 감시를 통해 근대적 주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규율권력에 대한 관심은 박정희 정권에서 징병제가 국민을 만들어낸 과정을 다룬 연구로 이어졌다.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는 ‘군사화’라는 개념으로 근대성 논의에 개입했다. 한국의 근대성은 부국강병 담론이 지배하는 가운데 반공 국가의 국민을 생산해냈는데, 이 과정에서 경제개발과 병역을 결합시켰다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기 ‘자주국방’이라는 군사 목적이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경제개발 정책을 이끌었고, 여기에 병역을 통해 숙련된 ‘산업역군’을 공급했다는 말이다.
이 책은 군사화된 근대성을 구성하는 핵심 기제로 성별화에 주목한다. 군사정부는 성별을 나누어 국민을 동원하는 가운데 남녀 간 차등을 두었다. 남성은 병역을 통해 군사화된 규율을 내면화하고 직업훈련, 일자리를 제공 받는 가장으로 만들어졌다. 반면 여성은 남성을 보조하며 경공업 미숙련 노동자로 일하거나 가족계획 같은 재생산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도록 했다.
병역특례제도는 병역을 산업에 결합시켰다.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하면 병역을 대체했다고 인정하여 중화학공업의 남성화를 이끌었다. 병역의무가 있는 남성들만을 대상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체계적인 직업훈련이 제공되었기 때문에 남성들은 숙련노동자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여성들은 성별로 분리된 노동시장에서 직업훈련 단계에서부터 애당초 주변화되었다.
국가는 여성들에게 병역 대신 피임을 요구했다. 박정희 정권은 무분별한 인구 증가가 저개발국에서 경제 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보았다. 가진 자원이 적으니 인구도 그에 맞게 조절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여성이 가족계획을 맡길 바랐다. 아이를 적절히 낳기 위해서 여성은 남성을 보조하는 위치에 머물러야 했던 것이다.
이 책은 군사화된 근대성이 틀 지운 궤도가 민주화 이후 시민성도 성별에 따라 나뉘게 했다고 말한다. 광주 학살로 인해 미국이 ‘북괴’로부터 남한의 민주주의를 지켜 준다는 믿음이 깨지면서 서구적 시민성이 발현하게 되었는데, 이 또한 성별화된 것이다. 남성은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라는 계급분화를 보였지만 여성은 계급분화 대신 고용평등이나 군가산점제 폐지 등 여성을 주변화하는 제도를 상대로 싸우게 된 구도다.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는 그간 도전받지 않았던 군사화를 비판한 연구로 언급된다. 하지만 그처럼 강고했던 ‘군사화’란 대체 무엇일까. 저자는 군사화가 한국의 예외적 특성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반공주의에 의해 군사·안보적 문제가 사회를 압도한 점이 다른 민족국가들과 구별되는 점이다. 여기서 질문이 남는다. 이 책이 분석하는 한국의 군사화된 근대성은 다른 군사화와 양태만 다를 뿐인가. 아니면 군사화에도 정도 차이가 있는 것일까. 예컨대 군사화를 두고 군사적 목적이 사회에서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군사화되지 않은 국가를 찾기가 어렵다. 군사화가 이처럼 전 세계에 만연한 것이라면 한국의 군사화는 어째서 문제일까.
군사화의 정의와 범위가 모호하다 보니 군사화를 요구하는 주체 역시 분명치 않다. 이 책은 국가가 군사화된 근대성을 위해 병역과 피임 같은 성별 역할을 요구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피임은 주한 케아(C.A.R.E.)와 같은 미국 민간단체가 국제협력활동의 일환으로 요구한 것이기도 했다. 역사학자 한봉석은 이를 두고 “저개발국 국민의 ‘지능’, ‘건강’의 책임을 오롯이 여성에게 전가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한다. 군사화된 근대성이 국가를 넘나들며 연동한다면 분석은 한국사회 바깥으로 넓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군사정권의 일방성만 강조한다.
민주화 이후 군사화가 약화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소위 ‘민주 정부’에서 자주국방을 내세워 군사비 지출을 더욱 늘리거나 대선후보의 군 복무를 적극 홍보한다. 오히려 이명박이나 윤석열 같은 이들이 병역면제자로서 어려움 없이 보수정당 경선을 통과하여 집권까지 하기에 병역이 기능하는 방식은 통념과 어긋난다. 병역의무가 중단된 미국이나 독일에서 군대가 참전과 파병을 두고 반대 여론을 염려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도 고려한다면 군사화와 병역의 관계에 대해 더 많은 분석을 요구한다.
군사화와 근대성 그리고 성별화라는 키워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책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를 던지는 선행연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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