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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더 나은 질문 그리고 연결고리 본문
더 나은 질문 그리고 연결고리
(신시아 인로 저, 김엘리·오미영 역,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 바다출판사, 2015.)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군복으로 작은 논란이 일었다. 부모들이 모인 단체 카톡방에 어느 아빠가 올린 메시지가 발단이었다. 아이가 군복을 너무나 좋아해서 핼러윈 때 군복을 입혀서 등원시킬 예정이라며 헬멧까지 갖춰 입힌 사진도 함께 올린 것이다. 혹시 불편한 분이 있다면 미리 말씀을 해달라는 말도 덧붙었다. 누가 불편해하겠냐, 괜찮다는 답들이 이어졌다.
다음날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부모들과 잠시 수다를 떠는 중에 군복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아이들이 군복 입는 걸 불편해할 부모가 있을까 염려된다는 말에 몇몇 부모들이 나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내가 병역을 거부하고 수감생활을 했다는 걸 어린이집 부모들도 알고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단체 카톡방에 군복 사진이 올라왔을 때 반응하기가 어렵긴 했다. 총이나 칼처럼 상대를 해치는 무기는 장난감이라도 아이에게 익숙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그래서 군복을 입힐 생각도 없다. 하지만 다른 아이가 좋아서 입겠다는데 그것도 못 하게 할 정도로 우려하는 것도 아니다. 환영하기도 우려하기도 어렵다보니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는데, 무반응이 되려 불편한 기색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에 공감하는 부모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어린이집이다 보니 오해는 될 수 있으면 줄이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서 단체 카톡방에 글을 썼다. 군복이 좋아서 아이가 입는 걸 특별히 불편하게 느끼진 않지만 고민이 남긴 한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들이 탱크나 총에 관심을 보이면 그것이 사람들을 해치는 데 쓰이는 물건이라고도 설명을 해주는 편이 좋을지 아닐지 아직 판단을 내리지 못하겠단 말도 덧붙였다.
따로 반응하기 어려웠던 건 고민 때문만은 아니었다. 쓸데없이 예민하기만 한 사람으로 치부되는 건 피하고 싶었다. 실제로 내 아이가 친구들에게 한참 총 쏘는 시늉을 하던 때 훈육을 하려니 사소한 걸 가지고 예민하다며 타박하는 부모들도 있었다. 남자아이가 총칼에 관심을 가지고 싸우는 걸 좋아하는 건 자연스러운 본능이라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와 뇌 구조가 다르기에 그렇다는 조언도 흔히 들을 수 있었다.
군복이 발단이 되었지만 문제는 패션에 머물지 않았다.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여성이나 남성에 관한 잘못된 전제가 현상 유지를 위한 도구가 되지 않도록 ‘페미니스트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모든 이슈는 일부 사람이 그 이슈에 대해 당연하다는 생각을 멈추고 그것에 관해 새로운 호기심을 가지도록, 그리고 그들이 발견했던 역학관계에 대한 시민의 책임과 정부의 책임에 관해 새로이 생각할 답을 찾도록 어떻게든 설득했기 때문에 이슈가 되었다.”
이 책은 페미니스트 호기심이 ‘자연스러운’이나 ‘사소한’ 같은 수식어가 가로막은 문을 열어젖히고 세계를 다시금 조망하게 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국제정치학자이기도 한 신시아 인로(Cynthia Enloe)가 운동화나 밀리터리룩처럼 ‘사소한’ 패션 소품들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1970년대 대학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운동화 안감을 꺼내보라고 했던 일화를 소개한다. 학생들은 나이키와 아디다스처럼 다양한 브랜드에서 만든 운동화를 신었지만 그 안감에는 십중팔구 ‘made in Korea’가 적혀있었다.
저자는 그리 많은 운동화가 어쩌다 한국에서 생산되었는지 질문한다. 그는 오늘날 세계가 군사화를 매개로 전 지구적으로 젠더화를 밀어붙이는 현실에 주목해야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1960~70년대 한국 군부독재는 다국적 신발회사들의 입맛에 맞았다. 가격경쟁력을 위해 저임금노동을 찾아다닐 때 노동운동을 가혹하게 탄압하는 국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성 가장 중심인 가부장주의는 여성노동을 보조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했다. 한국은 냉전의 최전선이며 동시에 여성 노동을 값싸게 제공할 수 있는 하청공장이 된 것이다. 이후 한국에서 민주화하자 신발공장은 군부독재가 여전했던 인도네시아로 이전했다.
저자는 ‘값싼 노동’이라는 말을 무심하게 쓸 때면 권력의 저 거대한 움직임을 전혀 살펴볼 수가 없다고 말한다. 페미니스트 호기심으로 운동화 안감을 들여다봐야만 여성들을 공장으로 끌어들이고 저임금을 감내하도록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결정과 계산, 전략의 변화가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다면 여성들이 운동화를 꿰매거나 반도체 부품을 조립하는 일을 ‘자연스러운’ 일로 여기도록 하기 위해 기업과 정부가 매우 애를 썼다는 사실은 베일에 가려진다.
저임금노동뿐만 아니라 여성의 군 복무와 아부 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 여성에 의한 포로 고문 등 이 책이 다루는 전 지구적인 사안들을 따라가다가 다시금 어린이집 군복 논란으로 돌아와서 질문을 던져본다. 남자아이에게 총칼은 과연 자연스러운 것일까. 왜 하필 군복일까. 이런 질문들은 저자의 말처럼 분명 사소하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이 더 남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잘못된 전제를 비판하다 보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마을이 와해될지도 모른다. 비판하되 반목하지 않고 더 나은 관계를 어떻게 조직해나갈 수 있을까. 이 책의 원제도 ‘페미니스트들이 연결고리를 만든다(Globalization and Militarism: Feminists make the link)’고 말한다. 내가 선 자리에서 지구화와 군사화 너머 더 나은 연결고리는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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