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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정치인’ 권인숙에게 『대한민국은 군대다』는 무엇일까 본문
‘정치인’ 권인숙에게 『대한민국은 군대다』는 무엇일까
권인숙, 『대한민국은 군대다』, 청년사, 2005.
백승덕 징병문제연구소 ‘더 나은 헌신’ 연구활동가
평화운동은 양당체제 앞에 곤란하다. 1968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사건처럼 평화운동 때문에 우파가 집권하게 됐다고 손가락질당하곤 한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에 저항하는 시위대는 미국 대선에서 또다시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가 해리스 부통령 유세 중에 “우리는 집단학살에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는 구호를 외치자 해리스는 “트럼프가 당선되길 원한다면 그렇게 말하라”라고 쏘아붙였다. 트럼프에 밀리던 바이든 대통령 대신에 대선후보가 된 부통령 해리스가 전 세계 진보주의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와중이었다. 트럼프는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하며 노골적으로 분쟁을 조장하는 등 광기에 가까운 행보를 보여준 바 있다. 트럼프냐 해리스냐 양자택일 앞에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 ‘나중에’를 요구받고 있다.
한국에서 ‘정치인’ 권인숙의 행보는 또 다른 면에서 고민을 던진다. 지난 총선에서 권인숙 의원은 민주당이 만든 비례위성정당을 위해 헌신했다. 심지어 민주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지만 ‘백의종군’하겠다고 당적까지 비례위성정당으로 옮겨가며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열심히 유세를 했다. 윤석열 정부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 압도적인 의석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그 비례위성정당은 ‘시민사회’ 몫도 마련했다 하곤 막상 ‘시민사회’ 추천 후보에 대해 도덕적 부적격자라고 컷오프 시켰다. 군 인권 활동을 해온 후보가 과거 병역을 거부하고 수감생활을 했던 이력이 있으니 ‘병역기피자’라는 이유였다. ‘시민사회’ 후보를 선출한 후보 선정위원들이 항의했지만 부적격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물론 정당이 정치적 결사체로서 나름의 정략적 판단에 따라 공천을 할 수 있다. 게다가 그 정당이 거대 양당의 특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급조한 비례위성정당이니 내부 소란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권인숙 의원의 선택은 다르다. 그의 ‘백의종군’은 모든 문제를 알면서 택한 길이었다.
권인숙은 과거 『대한민국은 군대다』를 통해 86세대 학생운동의 가부장적이고 군사화된 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책이 출판된 2005년 당시 86세대는 노무현 정권의 핵심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권인숙은 86세대의 1980년대 학생운동이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군사정권의 데칼코마니 같았다고 비판했다. 학생운동은 군사정권에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전투적 저항운동 속에서 개인은 여전히 국가에 절대적으로 복속된 존재여야 했고 성별 분업과 군사화된 위계질서가 오히려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책은 군사주의를 떠받치는 징병제에 대해서 86세대가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던 이유도 1980년대 학생운동의 그러한 한계라고 지적한다.
『대한민국은 군대다』는 1990년대 중반부터 여성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의 남성중심주의와 군사주의에 대해 비판해왔던 목소리들이 집약된 책이었다. 군사정권, 학생운동, 징병제 등 그전까지 서로 다른 주제라고 여겨왔던 사안들이 ‘힘에 의한 평화’라는 군사주의 위에서 연결되어 있으며 성별 분업의 위계 속에서 유지되어왔다는 지적은 현실을 새롭게 돌아볼 수 있게 만들었다. 저자의 지도교수인 정치학자 신시아 인로(Cynthia Enloe)가 말했던 ‘페미니스트 개입’, 그러니까 여성의 시각에서 학생운동과 징병제 등의 현실을 분석하고자 처음으로 시도한 책이다.
『대한민국은 군대다』는 안보와 평화 담론을 분석하면서 1980년대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고 있다. 이 책이 시도한 ‘페미니스트 개입’은 거대구조와 일상을 넘나들면서 국가주의와 군사주의가 성별 분업에 의해 굴러가는 구조를 규명해냈기에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1980년대 학생운동이 남성성과 결부된 군사주의에 기댔다던 비판은 이후 평화운동과 연구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병역거부 운동처럼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에서조차 유지되던 성별 분업을 성찰하며 ‘평화운동 속 군사주의’를 지양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병역거부자들이 ‘병역기피’가 아니라고 강조할수록 영웅 같은 남성성이 강화되는 딜레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자각도 커졌다. 유약함과 두려움이라는 현실을 환기하며 징병제가 남성성과 군사주의를 통해 작동해온 방식에 저항하려는 움직임 덕분이었다. 또한 징병제가 요구했던 이데올로기 속에서 탈영까지 감수하며 군대의 민주화를 요구했던 ‘양심선언’ 운동을 재조명하는 한편 ‘탈영’이나 ‘부적응’ 같은 현상들의 정치성을 새롭게 분석하여 군사주의의 속성에 다가가려는 연구들도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정치인’ 권인숙의 행보는 『대한민국은 군대다』가 일으킨 파장과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 1980년대 학생운동이 군사독재에는 격렬하게 저항했는데 어째서 병역을 거부한 사람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냐던 반문은 병역거부를 도덕적 부적격 사유라며 공천에서 배제했던 정당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1980년대 학생운동이 병역에 정면으로 대항하지는 못했다고 비판했던 목소리가 생생하게 남았는데, 병역을 거부한 자는 후보가 될 수 없다며 자격을 박탈한 정당의 승리를 위해 헌신했던 저자의 고민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페미니스트 개입’이라도 연구와 정치에서 전략은 다를 수밖에 없다. 공개적인 연구와 달리 정치는 더욱 전략적일 수밖에 없으니 지지자들이 무턱대고 신뢰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전략이라는 속성 때문에 1980년대 학생운동에서 언더서클을 만들고 군사주의적인 비민주성을 키웠던 것이 아닌가. 『대한민국은 군대다』가 설득력있게 비판했던 바가 바로 그 점이었다. ‘정치인’ 권인숙의 경험과 판단이 더욱 궁금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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