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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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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물쩍 넘어버린 선, 여전히 모호한 선

Jen25 2025. 3. 5. 00:09

어물쩍 넘어버린 선, 여전히 모호한 선

-Samuel P. Huntington, 정한범⋅이수미 역, 『군인과 국가』, 박영사, 2023.

 

백승덕 징병문제연구소 ‘더 나은 헌신’ 연구활동가

 

 

  “한국 민주주의는 최근의 탄핵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한국 육군은 지극히 모범적으로 행동했으며, 단 하나의 오점도 남기지 않았다…일부에서는 ‘군의 행동’이 우려된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이러한 주장 자체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사실상 묵살되었다…한국 사회는 육군을 포함한 대한민국 군의 정치적인 행동을 더 이상 우려하지 않는다.”

  2017년 육군본부가 주최한 포럼에 참가했던 정치학자는 한국의 민군관계를 이렇게 평가했다. ‘계엄령은 어불성설’이라는 단언이었다. 

  2024년 12월 3일, 계엄사태가 터졌다. 특전사 군인들이 국회에 난입해서 유리창을 깼다. 다행히 계엄은 새벽을 넘기지 못했다. 군인들은 총을 들고 들이닥쳤지만 소극적으로 시위를 했다. 국회에서 계엄해제 결의를 하니 그제서야 물러갔다. 군인들은 내란 행위에 가담했지만 마치 사보타주가 지침인 것처럼 어떤 ‘선’은 넘지 않고자 했다. 어물쩍 넘어가버린 계엄사태란 대체 무엇이었던 걸까. 의문투성이 사건이었다.

  ‘어불성설’이라던 말이 채 10년도 안 돼 계엄령은 현실이 됐다. 단 하나의 오점도 남기지 않았다던 군은 이제 내란에 가담한 조직이 돼버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일까. 군이 ‘선’을 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그런데 그 ‘선’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국회에 무장해서 난입하고 유리창을 깬 것을 놓고 ‘선’을 넘지 않았다고 말해도 될까. 7년 전 오점 하나 없었다던 군이 국회에 난입했는데, 더 나아간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계엄사태가 남긴 질문들 앞에 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 쓴 『군인과 국가』를 언급하는 글들도 보인다. 민군관계론을 다룬 대표적인 고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 같이 군대를 사회로부터 보호해야 할 대상처럼 묘사한다. 문민 ‘독재’로부터 군의 전문성을 지켜야 한다는 결론이다. 민간의 독재에 쿠데타뿐만 아니라 군축을 약속한 ‘9.19 남북 군사합의’도 포함시킨다.

  헌팅턴의 민군관계론만 놓고 본다면 절반은 맞은 주장이다. 헌팅턴은 군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객관적 문민통제과 주관적 문민통제를 구분한다. 객관적 문민통제는 정치적 개입을 최소화하여 군이 외부의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여 오직 국가 안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반면 주관적 문민통제는 정치가 군을 직접 통제하는 방식이다. 그는 객관적 문민통제가 이루어질 때 군이 전문성을 극대화하여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정치가 군을 오염시키면 안 된다는 말이다. 군은 폭력에 관한 고도의 전문지식을 다룬다. 헌팅턴은 전쟁을 수행하는 전략과 전술이 다른 지식과 구별되는 고유한 과학이라고 본다. 군사에 관한 훈련을 오랫동안 받은 장교들만이 이러한 전문적 역량을 다룰 수 있다. 여기서 군사적 전문지식은 마치 수학자들이 수를 가지고 서로 소통하듯 어느 나라 장교에게든 통하는 보편적인 과학인 셈이다.

  그런데 『군인과 국가』를 펼쳐보면 헌팅턴의 주장은 정치 팜플렛처럼 단순하지 않다. 이 책에서 민군관계 이론을 다루는 건 극히 일부다. 책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직업군인들이 나타나게 된 과정과 그들이 정치지도자들과 맺은 관계에 대해 역사적으로 분석한다. 그에겐 객관적 문민통제가 이상향이었지만 미국 역사에서 300년 가까이 구현되지 않은 꿈이었다.

  객관적 문민통제는 어째서 그리 어려운 것이었을까. 『군인과 국가』는 헌법과 자유주의처럼 의심받지 않던 전제들을 집요하게 비판한다. ‘군인은 헌법 질서에 복종해야 한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듣는다면 당혹스러워할 만한 우상파괴가 이어진다. 

  헌팅턴에게 헌법은 답이 아니라 오히려 객관적 문민통제를 위기에 처하게 만든 원흉이다. 그가 보기에 미국에서 헌법을 제정했던 ‘건국의 아버지’들은 자유주의에 심취한 나머지 정치와 군대의 관계를 고려하기보다는 입법부를 행정부로부터 나눠서 권력을 분립하는 데 치중했다. 정부가 가진 군대 지휘권을 견제하기 위해서 의회는 군대 예산을 결정할 권한을 가졌다. 헌법에 명시한 삼권분립 원칙은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들의 정치가 군대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치에 대한 경계심은 자유주의로까지 이어진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권리와 이익을 강조하기에 분열을 조장한다. 헌팅턴이 보기에 국가 안보라는 현실엔 자유주의 대신 냉정한 보수주의가 필요하다. 인간은 비합리적이고 취약하며 사악하기 때문이다. 다양성 대신 단결, 토론 대신 복종을 강조하는 보수주의야말로 군대가 가져야 할 현실감각이다.

  헌팅턴에게 헌법과 자유주의는 군대가 지켜야 할 ‘선’이 될 수 없다. 『군인과 국가』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미국의 군사 안보를 위한 필수 조건은 미국의 기본적인 가치를 자유주의에서 보수주의로 전환하는 것이다.” 군대는 군사적 목적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헌법과 자유주의마저 바꿔야 하는 조직인 것이다.

  헌팅턴의 결론이 계엄사태의 답이 될 수 있을까. 군대가 지켜야 하는 ‘선’은 여전히 질문거리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