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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아카이브와 기억의 정치 : 민주주의를 향한 기록의 재구성 본문
아카이브와 기억의 정치 : 민주주의를 향한 기록의 재구성
프란츠 카프카가 ‘쓰지 않으면 미칠 것 같기 때문에 글을 쓴다’고 토로했듯, 무언가를 쓰거나 기록한다는 것은 고통의 한 가운데에서 자신의 한계나 취약성을 받아들이는 작업이다. 그 카오스(재난)적 상황을 뚫고 탄생한 아카이브는 그 자체로서 새로운 서사와 담론을 생성하여, 사회·문화적 ‘기억’을 만들어낸다. 4·16 세월호 참사 이후 4·16을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애도하려는 수많은 움직임들―유가족과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담는 구술작업, 희생자들의 유품이나 사진·영상, 추모객들이 남긴 비망록 등 참사가 남긴 모든 흔적들을 수집하고 기록하고 증언하고 보존하는 작업―은 그 예가 될 수 있다. 참사를 겪은 이들의 경험을 내밀하게 기록한 이러한 아카이브는, 비극은 개인적 차원에서 형상화하는 것을 넘어 민주적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지금-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까지도 제시해 준다. 일찍이 지난 2월, 상허학회에서는 이와 같은 아카이빙을 둘러싼 다양한 정치성의 문제를 논하는 학술적인 장(場)을 마련하여, 기억/기록의 문제와 의의를 논한 바 있다. 기억/기록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수많은 이들과 연결될 때 어떤 정치사회적 변화를 야기할 수 있을까? 혹은 한국문학·문화 연구의 범주를 확장하여 이러한 기억/기록의 서사까지도 포괄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나름의 답을 모색하기 위해, 또한 지난 16일의 세월호 10주기를 오래 기억하며, 본지에서는 기억/기록과 관련한 최근 연구 두 편을 뽑아 소개하고자 한다.
사건, 네트워크, 유령 : 일본군 ‘위안부’의 아카이브 가능성을 중심으로
발표자 장수희는 국가기록원이 복원한 손기정 선수 영상을 통해 누가, 어떤 맥락으로 자료를 보존하고 재구성하는지 보여주며 논의를 시작한다. 손기정 선수가 월계관을 쓴 영상이 우리에게 전해지게 된 과정에는 기록과 선별, 보존, 국가와 국민, 민족과 아름다운 육체라는 권력관계가 교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자료를 옮기는 과정(데이터베이스화한 과정)에 참여한 것은 개개인이며, 그것이 귀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때에 그것이 언젠가 반드시 쓰이리라 믿고 차곡차곡 모았던 그러한 사람들의 ‘손길’이다. 자료를 남기고 복원하는 국가와 자료를 모으고 이어가는 손길의 배치는 서로 다른 듯 하면서 서로의 위계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발표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자료들 역시 수집·해석·배치에서 이러한 고민들을 피해갈 수 없겠으나, 그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자료를 모으고 연결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자료들은 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이하 부산 정대협)가 마련한 <민족과 여성 역사관>에 보관·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7년 동안의 재판 투쟁을 했던 사진·문서·영상자료와 일본의 식민지배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국제연대협의회 한국위원회의 활동상황도 함께 볼 수 있다. 그러나 부산 정대협 김문숙 이사장의 작고 이후 <민족과 여성 역사관>은 문을 닫게 되었으며(2021), 자료들은 이듬해 국립창원대학교로 이전되었다. 창원대의 연구팀은 <관부재판과 끝나지 않는 히스토리>를 제목으로 한 전시를 열었으며, 가능한 한 모든 자료를 가져와 전시하고자 했다. 발표자는 창원대 연구팀의 ‘손길’을 의미화하며, 개별 자료들을 잇는 일이 얼마나 힘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 전망한다.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의 첫 공개 증언으로부터 30여년이 지났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매듭을 풀지 못한 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국가 차원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않고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전부터 부산 정대협은 고(故)김문숙 이사장을 중심으로 일본군 ‘위안부’ 위령비를 세우기 위해 1991년부터 부산시와 교섭했으나 부산시나 각종 보훈단체에서는 그 목소리를 전혀 들어주지 않았다. 전몰 미망인회, 광복회 등의 보훈단체들은 “호국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경건하고도 엄숙한 성역에 왜정에 의해 단순히 희생된 종군위안부를 추모하는 것은 모욕이며 대청공원 조성 취지에도 맞지 않다”며 위령비 건립을 반대했던 것이다. 그렇게 위령비 건립은 상당한 시일을 두고 검토해야 할 일로 여겨지며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이 한 사건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얽힌 국내외적 문제들을 확인할 수 있다. 부산 정대협은 “정신대 위령비 건립을 모욕으로 생각하는 보훈단체의 그릇된 시각도 문제지만 부산시가 위령비건립신청서를 반려하려는 것은 진정으로 정신대 문제의 아픔에 동참하지 않고 이 문제를 겉으로만 이용하려는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렇듯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기억과 증언은 공적 기억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하나의 맥락을 이루지 못한 채 미끄러지고만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가라앉아 있던 일본군 ‘위안부’의 서사를 수면 위로 아카이빙하는 일이 요구된다.
물론 일본군 ‘위안부’ 서사를 조명하는 작업은 1960~1970년대부터 행해져 왔다. 이 시기의 연구는 대개 포스트 제국의 전쟁 체험담과 포스트 식민지의 민족수난사를 다루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1980~1990년대가 되어서야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증언과 삶을 기억/기록하는 다큐멘터리가 생산되면서 ‘위안부’ 서사가 운동성을 갖게 되었으며 대중서사의 특징을 보이게 되었다. 특히 1991년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증언한 김학순의 등장은 1980년대 한국의 여성운동의 성장과 민주화 운동의 영향이라고도 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초국적 연대와 증언 기반 서사자료의 재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다른 중심 서사 속에 삽입되거나 주변화되어 있기 십상이었던 ‘위안부’의 서사와 그들의 삶 자체를 복원하고 재조명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행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음은 분명하다. 많은 연구자들은 삭제된 ‘위안부’ 서사들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증언의 녹취 속에서 시간의 공백을 만들어내고 끊임없는 말줄임표와 더듬거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답을 찾기가 어려웠을 뿐 아니라 무거운 마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 연구들은 이러한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증언 속 공백과 침묵, 더듬거림을 증언(불)가능성, 재현(불)가능성이라는 말로 정의한 바 있다. 일본군 ‘위안부’의 서사는 형상화할 수 없는 유령처럼 존재하지만 언어화되지 않고, 그 언어화되지 않음을 통해 우리에게 피해의 흔적과 존재의 흔적을 드러낸다.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물화된 증언의 아카이브, 전혀 다른 언어의 기억/기록을 해석하는 일일 것이다. 이는 지금-여기-우리의 일상을 구성하고 있는 언어들을 다시 소화하고, 다시 되짚는 일이기도 하다.
대항기억의 아카이빙 : 4·19문학과 집합적 주체의 복원
발표자 고지혜는 그동안 한국문학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능했던 4·19와 그것의 재현(불)가능성에 대해 논하고, 당대 문단에서 4·19를 어떻게 기억/기록하고 있는지 문학의 범주를 확장하여 4·19의 서사를 살핀다. 4·19와 한국문학, 혹은 4·19문학에 대해 논의할 때, 늘 언급되었던 것은 4·19를 제대로 형상화한 ‘작품’이 없다는 것, 즉 “4월혁명의 거대한 의미 부여와 문학적 형상 사이의 괴리, 그리고 그 속에서 시와 소설의 불균등한 성취 문제”였다. 4·19세대 작가가 4·19의 경험을 직접적 주제로 다룬 소설이 놀랄 만큼 적다는 것이 4·19문학의 공공연한 약점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4·19문학의 불모성’에 관해서는 다양한 방식의 의견들이 개진되고 있는 한편, 4·19문학에서 ‘문학’에 대한 관념이 매우 좁게 설정되어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아직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실정이다. 예컨대 ‘1980년대 문학 연구’에서 통용되는 연구범위로서의 ‘문학’이나 2000년대 문화연구로의 전회 이후 한국 현대문학 연구에서 거듭 확장되어 온 문학의 개념 및 연구 영역으로서의 한국문학·문화의 범위를 떠올릴 때, 유독 ‘4·19문학’에 관해서만은 제도권 내의 작가가 생산한, 기존의 문학 관념에 충실한 ‘작품’만을 상정했던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4월혁명 직후에는 항쟁에 참여했던 학생들과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들이 여러 수기와 서사기를 편찬했고, 1960년 5월 19일 ‘순국학생위령제의날’을 기점으로 1960년 5월부터 7월 말까지의 두 달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서울에서만 4·19 관련 시선집이 5권, 수기가 3권, 화보집이 4권 출간되었다. 이와 동시에 『사상계』는 1960년 6월 전체를 “민중의 승리 기념호”로 꾸렸고, 『새벽』은 “4·19민권혁명” 특집을, 『새교육』은 “4·19혁명과 민주 교육” 특집을, 『여원』은 “슬픔의 4·19 기쁨의 4·26”을 특별 편성하면서 일차 경험 집단이 전달하는 생생한 ‘체험자의 기억’을 부지런히 아카이빙했다. 이러한 사실을 기반으로, ‘4·19문학’의 개념과 범위를 당대 기억/기록을 포함한 방식으로 새롭게 상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발표자는 1960년 6~7월 유수한 잡지들이 꾸렸던 특집과 동시기에 쏟아져 나왔던 시선집과 수기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4·19를 기록하고 서사화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시간을 통과한 후에 다다르게 된 성찰이 부재하다는 이유로 폄하되기도 했던, 직접적이고 즉각적이었던 이 기록들을 4·19에 관한 ‘최초의 아카이빙’이라는 점에서 다시 주목해보아야 할 것이다.
1960년 당시 『사상계』, 『여원』, 『새벽』, 『세계』 등의 잡지들은 6~7월호에 ‘4·19 특집’을 꾸리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역사적 사건을 정리하고 기록했다. 1960년 『사상계』 6월호는 한 호 전체를 ‘민중의 승리 기념호’로 구성하여 혁명의 현장을 16면에 걸친 32컷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기록한 화보 「피의 화요일 : 자유의 여신은 이렇게 부활하였다」를 배치했고 한 눈에 독자가 혁명의 경험을 현시하고 추체험할 수 있게 했다. 당시 『사상계』보다 더 많은 판매 부수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던 『여원』 또한 1960년 6~7월호에 사진 이미지를 활용하여 혁명의 순간들을 아카이빙했다. 『여원』의 특집 구성에서 흥미로운 점은 바로 화보 다음 면에 시를 배치하여 사진과 시가 하나의 정동을 형성할 수 있도록 편집했다는 것이다. 『여원』 1960년 6월호는 “슬픔의 4·19, 기쁨의 4·26”이라는 큰 제목 아래 4·19 관련 특별 화보와 권두언 「꽃잎처럼 떨어져 간 어린 목숨들이여」를 먼저 배치하고 이어서 조지훈, 김남조, 백철, 전숙희, 박목월, 박두진의 글을 싣고 있다. 사진-권두언-시와 수필은 모두 슬픔과 비탄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여원』 1960년 7월호에서는 4·19 현장에 있었던 여성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죽어서 영원히 사는 소녀상”이라는 제목으로 “여기 4·26 민주승리를 뜨거운 피로서 조각한 넋 중에서 여자분만을 모셨습니다. 목 놓아 울어도 못다풀린 이 슬픔―그러나 죽어서 영원히 사는 위대한 소녀상은 제2공화국의 모든 여성들 가슴 속에 안치되었습니다”라는 설명과 함께 여성 희생자의 사진을 싣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린다”는 유서를 쓰고 민족의 해방을 위해 앞장서겠다는 열다섯 살 소녀 진영숙의 유서도 더불어 실린다. 생명을 바쳐 국가와 싸우겠다는 한 소녀의 열망은 당대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며, 4·19의 집단기억을 사회적으로 구성해 나간다. 진영숙의 유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듯, ‘피’가 환기하는 붉은색의 이미지는 시위대의 플랜카드에 가장 많이 적혀 있던 ‘민주주의’와 연결되면서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토마스 제퍼슨의 말을 전유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다분히 3·1운동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며, 4·19를 3·1운동과 같은 민족적 저항의 기억이 자리한 계보 속에 위치시킨다. 1960년대 당대를 살아갔고, 4·19를 관통해 왔던 이들은 즉각적으로 자신들의 경험과 3·1운동의 전투성 및 혁명성을 포개어 두고, 죽은 자들은 말이 없기에(말할 수 없기에) 그들을 대신하여 증언한다는 강력한 연대의식을 표출했다. 『사상계』나 『여원』이 꾸렸던 4·19혁명 특집이나, 당대 민중들이 직접 기억/기록했던 수기와 시선집은 모두 국가적 논리에 의해 조직·가공되는 것을 피해 분화되지 않은 상태의 ‘날 것 그대로의 아카이브’를 남겨두고자 했던 욕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아카이빙을 추동하는 욕망, 담론화되지 않았던 민중들의 폭발적인 에너지야말로 4·19혁명의 기억이 대항적으로 주조되는 방식이자, 새로운 공동체 기억을 구축하는 새로운 가능성이다.
■ 정리 : 조수아 기자 lovelove99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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