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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로봇에 새긴, 천 개의 파랑 본문

8면/연극비평

로봇에 새긴, 천 개의 파랑

Jen25 2024. 5. 7. 16:34

로봇에 새긴, 천 개의 파랑

연극 <천 개의 파랑>

 

김나볏 연극평론가

 

 

연극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은 작품이 우여곡절 끝에 베일을 벗었다. 국립극단 74년 역사상 최초로 로봇 배우가 등장한 연극 <천 개의 파랑> 이야기다.

로봇을 소재로 삼는 연극은 요즘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지만, 로봇이 실제로 작동하고 기능하는 연극, 로봇이 엄연한 캐릭터로서 연기하는 연극은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천 개의 파랑> 속 로봇 배우의 출연은 AI와 로봇이 우리 일상 속에 한층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연극 <천 개의 파랑>은 천선란 작가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SF. 그리 멀지 않은 미래, 경마장에서 경주마를 타는 기수가 사람 아닌 로봇이 된 세상이 배경이다. 안락사를 앞둔 경주마 투데이를 타다 하반신이 산산조각 나 폐기될 위기에 처한 기수 로봇 콜리가 극중 주요 캐릭터로 등장한다.

소설이야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연극으로 만든다고 하면 첫 대목부터 당장 고민이 시작된다. 로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보통의 경우 연극은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대상을 다룰 때 여기에 그 존재가 있는 것으로 친다는 식의 모종의 약속을 만들어내곤 한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서빙 로봇 정도는 이제 가까운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인지 연극 <천 개의 파랑>의 장한새 연출가는 야심차게도 로봇이라는 캐릭터를 무대에 실제로 구현해내는 방식을 택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공연을 보기 전 로봇의 무대 등장에 대해 큰 기대를 품지 않았다. 작가의 인도에 따라 나만의 상상을 더해 창조해냈던 소설 속 캐릭터는 내 머릿속에서와 달리 실제 이미지로 눈앞에 구현될 때 실망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콜리는 말을 타는 로봇’, ‘말하는 로봇이다. 과연 로봇이 배우로서 제대로 연기할 수 있을까? 게다가 연극판은 자본력 부족에 늘상 시달리는 동네다. 로봇의 수준에 대해 조금은 미심쩍은 마음을 품고 서울 종로구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을 찾았다.

결과는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정확하게는 내심 놀랐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 듯싶다. 마음을 움직인 포인트는 로봇의 정교함이 아니었다. 서두에 살짝 언급했듯 사실 이번 공연은 가까스로 진행됐다. 이번 공연을 위해 로봇개발업체에 의뢰해 특별히 개발한 콜리가 개막 예정일 하루 전날 기계적 결함을 일으켰고, 이 때문에 개막일이 12일 후로 연기되는 소동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실제로 마주한 콜리는 키 145에 얼굴은 LED를 장착하고 있으며 가슴께에 스피커를 단 모습이었다. 다른 배우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목과 팔 등의 관절 정도를 움직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엄청날 정도로 대단한 기술력을 장착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 콜리는 무대 위 배우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것은 물론, 극의 내러티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배우 한 몫의 역할을 당당하게 해냈다. 비결은 다름아닌 선택과 집중이다. 어차피 극중 콜리는 하반신이 부서진 로봇으로 설정돼 있다. 공연제작팀은 로봇의 하반신 자동 운영은 포기하는 대신(콜리를 걷게 하려면 배우가 인형처럼 조종해야 한다) 상반신에 몇 가지 핵심 기능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깜박이는 눈, 고갯짓을 하는 목 등이 대표적인데, 특히 콜리가 이 같은 간단한 동작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배우와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추는 데 중점을 둔 것이 효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로봇 배우와 사람 배우가 주고받는 대화와 상호작용이 마치 실제처럼 느껴졌다는 얘기다.

모든 출연 배우들이 집중력을 발휘한 결과이지만, 로봇 콜리의 커버 배우로 활약한 김예은의 공이 특히 크다. 김예은 배우는 콜리에게 그림자처럼 붙어, 로봇임에도 어딘가 인간적인 콜리의 내면을 풍성하게 표현해낸다. 로봇 콜리가 타는 경주마 투데이는 무대에 직접 등장하지 않고 조명 표현으로 대체되는데, 이 대목에서도 이 커버 배우의 역할이 크다. 허리를 뒤로 꺾은 채 말에서 떨어지는 기수 콜리의 표정과 동작이 무대 천장에 달린 라이브캠으로 촬영돼 무대 뒤편 스크린에 투사되는데, 이 때 무표정과 놀람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듯한 김예은의 얼굴은 관객에게 깊은 잔상을 남긴다.

이처럼 로봇의 직접적 등장이 공연적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고 극의 이야기와 조화를 이뤘다는 게 이 공연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싶다. 휠체어에 앉아 경마장의 말을 구경하는 낙으로 사는 소녀 은혜’, 집안의 우울한 분위기에 영향 받은 듯 공부는 뒷전이나 로봇 수리에 재능을 보이는 연재’, 남편을 잃고 슬픔에 살아가는 엄마 보경등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말 못하는 동물 투데이’, 기계인 로봇 콜리와 소통하며 서로를 치유한다는 이야기의 핵심이 오롯이 전해졌다. 만약 콜리 같은 로봇이 있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다가올 로봇과 함께하는 세상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기술의 빠른 발전 속 사람들이 미처 돌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것들을 천 개의 단어가 아닌, 천 개의 파도 이랑으로써 가슴에 새기는 로봇 말이다.

또 이 연극은 국립극단 창작공감: 연출프로그램 중 하나로 선보여졌는데, 이 프로그램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면서도 여러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작품이 모처럼 만들어졌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반가운 작품인 만큼 아쉬웠던 점도 몇 가지 적어놓는다. 무대 뒤 스크린으로 사용된 벽체에 의미가 다소 불분명한 영상들이 투사됐는데, 이 부분이 어딘가 공연을 정돈되지 않은 듯 보이게 한 측면이 있다. 앞서 언급했던, 시일이 촉박한 채 진행된 로봇 제작 과정이 결과적으로 공연의 성사 여부까지 영향을 미친 점 역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