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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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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면/연극비평

돌봄 노동자들의 노래, 우리는 퀸

Jen25 2024. 9. 11. 15:48

 

돌봄 노동자들의 노래, 우리는 퀸

 

연극 <은의 혀>

 

김향 연극평론가, 호서대 교수

 

<은의 혀>(박지선 작, 윤혜숙 연출,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 장, 2024.08.15.~09.08.)는 홀몸으로 살아가는 외로운 두 여자의 만남과 이별을 그리는 작품이다. 무대는 마치 ‘보이는 라디오 스튜디오’ 풍경으로 여섯 개의 탁자가 놓여 있으며 무대 뒤편 오른쪽 탁자는 키보드와 기타를 치는 악사석이다. 어린 아들을 사고로 잃은 은수와 산재로 폐암 걸려 죽어가는 정은의 이야기는 그리 가벼운 정서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무대 위 이야기는 다채로운 시공간의 변화와 극적 정서를 표현하는 라이브 음악 속에서, 출연진들이 부르는 올드팝, 가요 그리고 새롭게 창작한 랩과 키치적인 뮤직비디오로 인해 소소한 웃음 속 창의적인 흥겨움으로 경험된다. 탁자 앞 의자에 앉아 나레이션을 하던 배우들이 극 중 진행되는 이야기를 탁자 위와 아래에서 극중 극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중앙 탁자는 장례식장 또는 급식실로, 무대 앞 왼쪽 탁자는 정은의 방, 중간은 은수의 방, 오른쪽 탁자는 정은의 병실이지만 대체로 배우들이 올라서서 노래하고 춤추는 가운데 다채로운 공간으로 활용된다. 무대 정면 T자의 공간은 사고가 난 수영장이자 은수의 어두운 꿈 속 공간으로, 깊고 어둡고 슬픈 공간으로 형상화된다.

두 여자의 만남은 장례식장에서 반복됐다. 은수(강혜련 분)는 어린 아들의 빈소를 차렸었던 장례식장 303호에 계절에 한번씩 나타나 소주만 마시고 간다. 정은(이지현 분)은 은수 아들 장례식의 상조도우미였고 또 은수가 계절에 한 번 올 때마다 마주치는 상조도우미였다. 정은은 은수의 어린 아들 장례식 때는, ‘자기 혀는 은(銀)으로 만들어 졌다’며 너스레를 떨더니, 이후 은수가 올 때마다 술 대신 밥을 차려 주고 우산을 가져다주거나 커피를 주거나 하며 조금씩 밥을 먹이기 시작한다. 은수에게 다가가는 정은은 실은 죽음을 앞둔 폐암말기 환자였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초등학교 급식 노동자로 일하는 중 열악한 식당 환경으로 인해 폐암이라는 산재를 당한 노동자였다. 정은은 암투병 중에 상조도우미라는 또 다른 노동을 하고 있었고 은수의 빈 눈, 외로운 술잔을 보며 밥을 먹이기 위한 오지랖을 부리 게 된다.

‘자신의 혀는 은으로 만들어졌다’는 정은의 구라는 허무맹랑한 듯 하면서도 기미상궁 증조 할머니, 할머니 그리고 엄마의 ‘독을 감지하는 은빛 혀’ 이야기로 이어지니 제법 미시서사로 인식된다. 남성 중심적인 역사서에서는 언급되지 않을 법한, 또 언급되더라도 단 한 줄로 처리될 법한 ‘기미상궁의 은빛 혀’ 이야기는 세 명의 코러스들(이경민, 이후징, 정다연 분)에 의해 상상력 가득한 재미있는 장면으로 구현된다. ‘혀’들로 지칭되는 세 명의 코러스들은 장례식장에 온 방문객이 되기도 하고 할머니들과 엄마가 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커피 자판기가 되기도 한다. 다채로운 배역과 사물을 오가던 이들의 연기 는 젠더를 알 수 없는 걸크러시 급식 노동자들이 되어 열악한 급식 노동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퐈이팅!’하는 랩과 춤을 보여주며 절정에 달한다.

그러나 이 ‘혀’들의 가장 중심된 역할은 마치 소설을 읽어주는 듯한 나레이션이다. 탁자마다 놓여 있는 마이크를 통해 이 ‘혀’들은 각 인물들의 내면과 시간의 흐름 속 사건을 설명한다. 역동적인 움직임과 감각적인 청각적 장치들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내밀한 속내를 차분하게 낭독하는 소리로 인해 관객들은 <은의 혀> 저변에 흐르고 있는 깊은 슬픔을 감각할 수 있다.

<은의 혀>에서 볼 수 있는 나레이션 중심의 방식은 인물들 간의 대화로 이루어지는 희곡의 장르적 특성을 해체하며 마치 소설처럼 대사보다 지문의 비중이 더 커진 형상화였다. 그리고 이러한 희곡 형식으로 인해 관객들은 극도로 비극적인 이야기에 감정이입하기보다 각자의 방식으로 장면들을 즐기며 이야기를 구성하고 사유할 수 있다. 관객들은 나레이션으로 이야기 속에 빠져들다가도 무대 위 역동적이고 감각적인 행위로 인해 ‘이 작품은 연극이다’라는 연극놀이적 유희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은의 혀>에서 경험되는 희곡 글쓰기는 지문 확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은의 혀>는 (재)국립극단의 [창작공감: 작가]로 개발된 작품으로, 작가 박지선은 희곡의 지문을 소설처럼 처리하는 방식을 구사하면서 동시에 희곡의 활자를 통해 극적 정서를 전달하고자 했다. 어린 아들의 사고로 인한 은수의 깊은 슬픔, 원망 그리고 죄의식의 정서를 타이포그래픽 이미지 글자로 표현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희곡 <은의 혀>에서 볼 수 있는, 소설적이면서도 글자를 시각적으로 디자인하여 배치하고 또 각주를 통해 노래를 지시하기도 하는 글쓰기는 시청각적인 이미지들이 융합하는 글쓰기 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은의 혀> 속 비극적인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각자 자기 식의 상상력으로 책장을 넘길 수 있는, 만화 장르에서 얼핏 경험할 수 있는 상상력을 경험하게 된다. 윤혜숙 연출가는 이러한 융합적인 희곡을 보면서, 대화도 하고 노래도 할 수 있는 유희 공간인 ‘보이는 라디오 스튜디오’를 상상하고 또 배우들에게 고정된 역할과 젠더를 넘어 인간과 사물을 표현하는 즉 ‘모든 것’을 연기하도록 연출한 듯하다.

 

“나 불쌍한 환자이기 싫어./나를 돌보는 사람이고 싶어. 이 지경이 돼서 내가 못 할 게 뭐 있겠어./살아야지. 들이박을 거야./아등바등 고래고래 소리칠 거다./그래, 이번에는 언니들이랑 다들 모여서 우리도 말 좀 해 보자.”

 

급식노동자로 어린이들을 먹이며 돌보고 절망에 빠져 죽어가는 여자를 돌보던 정은은 돌봄노동자로서 진정으로 자신들을 돌보는 ‘정동적 노동자’로 거듭난다. 정동적 노동은 물질 노동뿐만 아니라 정서라는 비물질까지 서비스해야 하는 노동으로, 급식노동자로서 정은은 자신의 노동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고 ‘살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삶정치’(네그리·하트, 조정한 외 역, 『다중』, 세종서적, 2008, 158-159쪽.) 를 시작한다. 정은은 곧 유명을 달리하지만 동료들이 정은의 유지를 받들어 각기 다른 삶을 영위한다. 정은은 제도적으로는 가족이 없었지만, 이름없는 다수의 보호자들, 즉 정동적 노동자들이 가족이 되 었다. 월선은 정은의 유지를 받들어 매운 국을 끓이고 은수는 열심히 밥을 먹는다. 누군가를 돌보기만 하던 정은은 월선과 은수의 보살핌을 받으며 생의 마지막 순간을 자기 집에서 맞이했고 죽어가던 은수는 ‘살기 위해’ 자격증 준비를 하고 밥을 열심히 먹으며 힘을 낸다. <은의 혀>는 이들 돌봄 노동자들이 ‘삶의 퀸’이 되는 연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