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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가닿아 나를 알기
-전시+공연 ≪싱귤레리티≫(궁리소묻다 창작, 2024.08.29.~09.08. piknic)
김향(연극평론가, 호서대 교수)
전시 중심의 복합문화공간 ‘piknic’의 4층 공간을 모두 사용하는 거대한 퍼포먼스 ≪싱귤레리티≫가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궁리소묻다의 궁리원들이 지난 3년 간 수학과 양자역학 등을 공부하면서 그 과정을 관객과 공유했던 <수학하는 몸>과 <우주 양자 마음>에 이어 세 번째로
올리는 공연으로, 이번에는 12명의 창작자가 11개의 장소를 만들고 16개의 전시와 공연을 하는 관객 참여형 공연(immersive performance)으로 만들었다. 일곱 개의 공연에 대해 개별적으로 입장료를 내는 퍼포먼스이며 모든 공연을 관람하는 데 장장 7시간이 소요되기에 관객들이취사선택하여 관람하는 전시를 포함한 공연이었다.
궁리소묻다는 재현 중심의 잘 만들어진 공연을 넘어서 다채로운 매체로 표현을 확장하고자 하는 단체이며, 무엇보다 과정을 관객과 공유하고자 하는 연구 단체이다. 배요섭 연출은 즉흥수행법 워크숍을 통해 배우들과 신체로 작품을 창작하면서 표현의 도구를 확장하는 차원에서 미디어 퍼포먼스와 전시를 융합한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piknic’이라는 공연장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환경을 활용한 관객 참여형 공연이 구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미디어 퍼포먼스와 전시를 융합하면서 동시에 연출가, 배우 그리고 기획자가 자신의 역할을 확장하여 모두가 작가로 참여했다는 특징도 있다. 이들의 작업은 궁극적으로 인간과 사물을 관통하는 몸의 내적 의식으로 향하고 있었다.
1층 공연장으로 가는 복도에서부터 기획자 김예은과 영상작가 최용석이 구성한 전시가 시작되는데, 이는 지난 3년간 궁리원들이 수학과 양자역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만든 판서들로 작품화 되었다. 두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미디어 퍼포먼스 <여기 누가 있다>는 참여자들 인터
뷰 등을 자료로 작품화한 인터렉션 사진액자 전시이다. 3~4평 정도의공간에 열 명의 창작자들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데, 사진 밑에 걸린 헤드폰을 끼고 사진의 여기저기를 터치하면 준비되어 있는 인터뷰 내용들이 재생된다. 창작자별로 다섯 개씩의 에피소드가 준비되어 있지만, 산발적으로 위치되어 있기에 그 에피소드들을 다 들어도 좋고 일부만 들어도 상관이 없다. 관객들은 창작자 사진 액자와 상호작용하며 그 사물이 들려주는 창작자 이야기와 관계를 맺게 된다.
황혜란, 박선희, 이은지, 하지은, 이주야+배요섭, 최수진, 그리고 배소현 창작자들은 액자 속 이야기에서 튀어나온 듯 지난 3년간 수학과 양자역학을 공부하며 심화된 관심거리와 변화된 사유 그리고 사물에 대한 인식 등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구현한다. 이 창작자들의 일곱 개의 작품들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는 없지만 사물화 된 몸, 수학의 철학적 이해, 시청각적으로 가시화되는 우주의 시공간, 죽음과 기억 그리고 정서적 물리적 폭력에 대한 사유를 다채로운 방식의 퍼포먼스로 표현하고 있었다.
황혜란 배우의 <측정되는 몸: 추간판 탈출기>는 그녀가 개인적으로경험한 디스크 수술기를 무대화한 것으로, 그 과정에서 사물화되는 몸을 과학에 대입해 사유해 보는 작품이다. 고통에 대한 인식, 추간판 탈출 진단, 수술,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의 물질적이고 정서적인 면모를 엑스레이 사진, 부조한 몸 사진, 뜨개질, 그리고 퍼포머 김도완의 움직임 표현으로 전시한다. 그녀가 전시한 사물들은 그 순간에 경험한 사건들과 고통 등을 드러내는 듯하다. 그리고 황혜란 작가는 도슨트가 되어 각 사물들의 목소리를 말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공연 전개는 관객에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연약해지는 신체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하는 마력을 발휘한다. 신체에 대한 무관심이라기보다 강박을 비운 무념을 통해 내 몸을 다시 사유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하지은 작가의 <빈-공간>은 작가가 그간 수학과 양자물리학을 공부하며 허수(imaginary number)와 원자들 간의 빈 공간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을 이야기하고 그 허수와 빈 공간을 전시, 동영상 그리고 김도완과의 듀엣 움직임으로 형상화하는 것이었다. 하지은이 김도완의 몸을 딪고 허공으로 치솟다 내려오는 장면은 중력을 거스르는 상상력을 확장하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허수와 원자들 사이의 비어 있는 공간에 대한 이들의 신체적인 상상력은 무언가 명확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꽉 차 있어야 할 것 같은 수학과 과학이 실은 상상할 수 있는 빈 공간일 수 있다는 인식으로 인해 여유로운 사유의 틈을 주는 듯했다. 내적 성찰과 사물과의 교류를 통해 상상력으로 채워갈 수 있는 영역이기에 어찌 보면 인문학적 상상력의 세계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주야+배요섭 작가의 <알아차림의 알아차림>은 4층 옥상 무대에서 진행되었는데 야외와 실내의 중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독특한 공연이었다. 공연이 시작되면 배요섭 연출은 관객들 모두에게 눈을 감고 바람의 촉감을 느끼고 새소리를 듣는, 즉 온몸으로 감각하는 10분간의 명
상을 권한다. 어스름하게 노을 지는 저녁에 공연의 일환으로 명상을 하며 나의 호흡에 귀 기울이고 마음에 떠오르는 그 어떠한 상 그리고 흩어지는 생각들을 인식하며 내적 흐름에 집중하는 것은 무척이나 고즈넉한 분위기의 체험이었다.
마지막 공연이었던 배소현 작가의 <출현하는 텍스트>는 ‘양적으로 팽창하다 질적인 도약을 하는 특이점’이라는 뜻을 지닌 ‘싱귤레리티’가 폭발하는 이미지로 경험된다. 배소현 작가는 속이 훤히 내비치는 검은색 미니 원피스, 속옷을 무대 의상으로 착용하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공연을 시작한다. 자신의 여러 음성과 소리를 루프 스테이션에 녹음하여 반복되며 쌓이는 소리를 극적 리듬 삼아, 자신이 만들어낸 그 리듬에 맞추어 도나 헤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또 자신이 쓴 산문들을 선언하듯이 낭독한다.
“못된 글을 쓸 것: 그것이 진실에 가까우므로. 나쁜 말을 할 것: 그것이 덜 거짓되므로. 상처 받을 것: 그것이 회피하지 않는 일이므로. 대신 죽을 것: 그것만이 사랑하는 일이므로.”(「출현하는 텍스트」 대본 58쪽) 이러한 말들은 위선과 욕망에 가득 찬 주류들이 만들어내는 억압과 폭력에 맞서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기꺼이 희생적인 사랑을 해야 한다는 선언으로 들린다. 종교적인 해석도 가능하다. 1시간가량 진행된 배소현 작가의 폭발적인 선언으로 인해, 7시간의 긴 공연 관람에 지쳤던 몸에 정신이 들고 유쾌해졌다.
지면 관계상 모든 공연들을 언급하지 못했지만, 앞서 이야기한 공연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싱귤레리티≫는 각 창작자들의 즉흥적인 몸과 행동으로, 그들의 현존을 작품화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관객에게도 공연에 가닿기 위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느끼며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관객의 감각적 현존’*이 이루어진다. 이 작품의 관객들은 움직이며 사유한다. 그리고 관객의 사유는 결국 관객 자신에게로 향해 위태롭고 무감각한 몸의 감각을 일깨우게 된다.
*Josephine Machon, Immersive Theatres: Intimacy and Immediacy in Contemporary
Performance, Hampshire; New York: Palgrave Macmillan, 2013,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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