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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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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면/쟁점기획

정상가족을 넘어, 또 다른 가족 구성원을 상상하다

Jen25 2024. 6. 13. 12:57

기획의 변 : 현재 한국은 극도의 저출생을 겪고 있는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지 않은 채 이성애를 기반으로 한 정상가족만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한 상황을 타파하고자 가족구성원 3법이 논의되고 있으나 아직 이렇다 할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성소수자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관계를 포괄할 수 있는 방식을 살펴보기 위해 가족구성권 연구소 나영정 정책팀장을 만나는 한편, ‘젠더적이고 평등한 미래를 상상해보고자 퀴어이론을 공부하는 여성문학 연구자의 목소리도 함께 들어보았다.

 

정상가족을 넘어, 또 다른 가족 구성원을 상상하다

 

서울시는 ‘2024 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이하 퀴어축제)’의 서울광장 사용을 허락하지 않는 등 성소수자 인권 관련 행사와 관련한 공공시설 대관을 연이어 불허·취소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행정은 이번 퀴어축제에 대한 문제에서뿐만 아니라, 저출생, 돌봄 등의 가족문제에서도 나타난다. 대부분의 법과 제도가 성소수자를 제외한 정상 가족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생활동반자법, 혼인평등법 등 가족구성원 3법이 발의되기는 했으나, 아직까지 성소수자의 평등과 자유를 온전히 보장할 수 있는 환경은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극도로 낮은 한국의 출산율이 이러한 전통적 가족 규범, 불평등한 법제도, 소수자에 대한 차별·배제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본지에서는 저출생 문제를 비롯하여 성소수자의 법·제도적 차별에 대해 짚어보고, 그 해결책으로서 동성 가족 등 대안적 커뮤니티를 꾸려나가는 것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가족구성권연구소 나영정 정책팀장을 만났다.

 

ⓒ 인터뷰이 제공

 

저출생, ‘인구문제가 아닌 인권문제

OECD 국가 중 합계 출산율이 ‘1’ 이하인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러나 국가는 저출생 문제를 인구 정책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로만 접근하고 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따르고 있는 저출생 정책에 대한 의견과 성소수자까지도 온전히 포괄하는 저출생 문제에 대한 접근법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지 물었다.

말씀해 주신대로 한국의 출산율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이미 언론에서는 국가소멸위기와 함께 저출생 문제를 보도하고 있고, 세계적인 석학들도 한국의 인구 감소에 대한 심각성을 언급하고 있죠. 그런데 저는 이 출산율 통계만 놓고 저출생 문제의 심각성을 논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통계 조사 자체에 동성 커플 등 성소수자들의 파트너십(partnership)’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법적으로 모든 아동의 출생을 신고해야 하는 출생통보제가 실행되고 있기에, 동거 커플이나 동성 커플 사이에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는 출산율 통계에 잡히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출산이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그들의 가정 또한 법·제도적으로 보장받고 보호받는지는 알 수 없죠. 이는 비단 출산율뿐만 아니라, 여성가족부의 가족실태조사에서 발표했던 1인 가구 조사 통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제입니다.

현재 1인 가구 비율이 전체 세대 중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비율의 구성을 살펴보면 실제 혼자 사는 사람만이 아닌 다양한 관계들까지도 뭉뚱그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성 간 동거 커플, 동성 커플도 있고 친구들끼리 사는 사람도 있고 정말 혼자 사는 사람도 있는 등 법의 제약으로 인해 가족의 범위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사람들이 1인 가구라는 이름 아래 한데 묶여 있는 것입니다. 동성 간의 혼인신고 및 성소수자의 성별정체성이 국가통계에 반영되지 않은 것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테고요. 이러한 점에서 저는 통계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수치화·계량화시킨 출산율 통계를 가지고 저출생 문제를 이야기하는 대신, 실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의 관계성을 고려하여 저출생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국가는 저출생 문제를 인구 문제로 보고, 줄어가는 인구를 늘리기 위해 임신·출산과 관련한 정책만을 펼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예컨대 정부가 저출생 계획으로 내세운 보호출산제는 임산부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아도 출산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입니다. 이는 미등록 아동 발생 위험을 줄이고자 하는 목적 아래 추진되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출산율 자체를 올리기 위한 측면이 더 강합니다. 출산 자체가 수치이거나, 출산을 숨겨야만 자신이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있다면 그러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일 텐데, 정부는 그러한 방식으로 저출생 문제에 접근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단 낳고, 낳은 아이는 국가가 데려갈 테니 임산부는 그 뒤로 알아서 대처하라는 식으로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이런 식의 대처는 여성의 권리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아동의 권리까지 침해할 위험이 큽니다. 이처럼 국가가 주도해서 아이 낳는 것을 결정한다면 그 과정에서 또 고려되지 못하는 부분들은 분명 존재할 것이고, 누락되고 배제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임신과 출산이 이전만큼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지, 그 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현재 살아가는 이들의 삶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특히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게 가해지는 차별적인 시선이 먼저 해결되어야 평등한 사회 아래에서 이들이 적극적으로 가족 구성을 할 수 있고 양육자로서의 미래도 그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현재 여기서 살고 있는 이들의 권리 보장이 선행되어야 인구적인 효과도 일어나는 것이지, 그 반대로 접근하면 갈 길은 더 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상의 테두리 바깥에서의 어려움

현행법상 가족은 혼인·혈연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 단위라고 정의된다. 이러한 법률에서부터 비혼 동거 커플 등 혼인이나 혈연관계로 묶이지 않은 관계들을 배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가 규정한 정상의 테두리 바깥에서 성소수자들이 출생, 육아, 돌봄 등에 있어 겪는 사회적·제도적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을지 물었다.

가족에 대한 정의 규정은 민법 제779조와 건강가정기본법에 나와 있습니다. 이를 살펴보면 크게 혼인, 혈연, 입양으로 맺어진 관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이 외의 관계들, 즉 동거 커플이나 동성 커플 등 법이 규정한 가족의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 관계들은 사회적 권리에 기반한 사회복지 서비스에 접근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한국 사회의 사회적 권리라고 알려져 있는 주거권, 노동, 복지, 교육, 돌봄 제도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법적인 가족이 아닌 사람들은 모두 ‘1인 가구로 여겨집니다. 동성 커플이든 공동체이든 모두 법적으로는 1인 가구로 설정되어, 실질적인 생활에 걸맞은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이를테면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갈 때도 1인 가구에 허용된 면적의 주택에만 신청이 가능합니다. 두 명 이상의 사람이 1인 전용 주택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죠. 임대 주택이 아닌 민간 주택을 얻고자 대출을 받아야 할 때도 부부로서의 우대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미세한 부분들이 이성애를 기반으로 한 정상 가족중심으로 짜여 있어서, 그에 해당되지 않은 이들의 배제와 차별을 낳는 것입니다.

이전에 저희 가족구성권연구소에서 성소수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차별이 무엇인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배우자가 아팠을 때죽었을 때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습니다. 배우자가 아팠을 때 내가 이 사람을 간병할 수 없고, 내가 보호자로서 의사에게 이 사람의 상황을 들을 수 없고, 나와 배우자의 관계를 적대시하는 혈연 가족이 왔을 때 나의 권리가 부정당하는 일은 동성 커플 사이에서 으레 나타나는 것입니다. 모든 시간과 비용과 애정을 쏟아 내가 간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간병인으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을 때의 고통은 오래 남아,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히게 되죠. 심지어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 나는 혈연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외면당할 뿐 아니라, 배우자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장지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서 애도도 할 수 없는, 그런 안타까움이 가중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동반자·배우자로서의 의 권리를 무시하고, 죽음에 이른 배우자를 잘 떠나보낼 수도 없게 하는, 즉 애도할 권리마저 박탈시켜버리는 상황은 성소수자들의 존엄성까지도 부인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렇듯 그동안의 사회제도는 출산-양육-돌봄-죽음의 전 과정에 있어 법적 가족에게만 권리와 책임을 부여해 왔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는 이 가족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은 수많은 존재들이 살아가고 있고, 그 사각지대에 놓여 이들이 상당한 감정적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국가라면, 개인의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는 국가라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가족을 이루지 못하는 불평등을 겪는 이들의 상황을 먼저 헤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안타까운 연쇄를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삶과 죽음을 둘러싼 모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부가 되고, 양육자가 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생활 동반자관계와 그 외의 다양한 관계들

지난해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에 의해 대표발의된 생활동반자법은 법적인 가족 단위로만 주어지는 사회권의 차별을 해소하고자 입양 관련 규정을 새롭게 포함시킨 바 있다. 현재 성소수자 동거인들의 출생·입양·돌봄 등의 논의가 어느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고, 실제 법안이 제정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현실적인 과제들이 있는지 물었다.

생활동반자법은 기존의 혼인, 혈연, 입양으로 맺어진 가족의 범주에 생활 동반자 관계를 포함해 기존 사회제도에 적용시키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가족 생활과 관련된 주거, 돌봄, 세금, 휴가 등 여러 제도의 혜택을 혈연과 혼인을 뛰어 넘는 동반자적 관계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죠. 작년 2,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이 동성 커플 배우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진 것도 이 흐름 속에 있습니다. 물론 그 판결에서 동성 커플을 사실혼 관계라고는 볼 수 없다고 했지만, 여전히 사실혼 인정을 위한 투쟁은 계속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생활동반자법이 제정이 된다면 사실혼 관계까지 포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사실 저는 이 법안 자체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법은 성소수자도 포섭할 수는 있지만 진정으로 성소수자를 위한 법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 이상의 관계를 포괄할 수 없고, 외국인은 등록할 수도 없을뿐더러, 장애인에게도 접근성이 떨어집니다. 생활동반자법은 두 사람 사이에 돌봄과 부양 등의 의무가 있고, 그것들을 지켜나가야 하는 등 실제 이성 간 혼인을 한 부부의 의무와 굉장히 유사한 한편, 친인척 관계가 생기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성 간의 혼인은 두 사람이 서로 가족이 되어 배우자의 가족까지 내 가족이 되는 것인데, 생활동반자법은 오로지 둘만의 계약과 같습니다. 하나 이상의 파트너십을 맺는 성소수자들도 존재할 뿐 아니라 한 사람이 누구를,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돌보고 있는지를 정확히 측정할 수 없는 와중에, 이렇게 결혼이라는 기존 이성애 중심적인 제도와 닮아 있는 방식-두 사람의 계약 관계-을 설정한 것은 꽤나 제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활동반자법이 시행이 되면 일정 부분의 사람들은 이 법 안에 포섭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여전히 법적으로 생활 동반자 관계를 등록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누군가와 동반자 관계를 맺고 싶어도 맺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서, 두 사람 중심의 생활동반자법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은 틀림없이 배제될 것입니다. 생활 동반자관계마저 맺지 못하는 사람들까지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생활 동반자 관계보다 더 포괄적이고 자유로운, 대안적 공동체를 생각하는 편이 더 유의미하다고 봅니다.”

 

대안적 커뮤니티의 가능성

마지막으로 대안적 커뮤니티의 형태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 더 나아가 동성 커플(부부)과 그 자녀 등과 같은 다양한 공동체를 인정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물었다.

무엇보다 어떤 친밀한 관계가 외부의 압력이나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해체되는 상황이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헌법에 있는 부부생활의 보장을 조금 더 확대해석해서, 저는 이러한 것들이 기본적인 권리이며 국가가 책임을 갖고 귀 기울여야 할 문제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는 결혼을 해라 부부니까 보장해 주겠다, 혹은 출산을 해라 양육자니까 지원해 주겠다는 식의 조건부 정책이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살아감에 있어서 우리가 누구와 함께 살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하도록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것이 결혼 형태이든 동거 형태이든 성애적 커플이든 비성애적 커플이든 수십 명의 커뮤니티이든 그 모든 형태의 관계를 차별 없이 고려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저출생 문제는 그 다음에 고려해야 할 일입니다. 법적인 가족이 아닌 사람들, 그리고 법적인 가족 안에서도 고통 받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 안에는 당연히 성소수자의 권리 문제나 차별 시정이 포함되어 있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자체가 조금 더 젠더적으로 사회적 소수자들을 포용하고자 하는 인식을 갖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