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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反中’과 ‘反美’의 이분법을 넘어서 : 2024년 대만의 선택과 그 의미 본문
‘反中’과 ‘反美’의 이분법을 넘어서 : 2024년 대만의 선택과 그 의미
기획의 변 - 2024년은 전 세계에서 각종 선거가 예정되어 있어 ‘선거의 해’라고 불리고 있다. 그 시작을 끊은 것이 대만(중화민국)에서 치러진 대선과 총선이었다. 대만 유권자들은 지난 2020년에 이어 다시금 민주진보당(民主進步黨, 이하 민진당)의 총통을 선택했다. 따라서 이번 대만의 선거결과를 이해하기 위해, 대만 정치를 연구해온 본교 정치연구소의 지은주 교수를 만나는 한편, 이번 대만 선거에 참여한 대만 유권자의 생생한 목소리도 담아 한데 묶었다.
지난 1월에 진행된 대만 대선에서는 4년 전에 이어 민진당이 또 한번 승리를 가져갔다. 40%의 득표율을 기록한 민진당의 라이칭더(賴淸德)는 33% 득표율을 보인 국민당의 허우유이(侯友宜)를 누르고 총통으로 당선되었다.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해 일각에서는 ‘반중’과 ‘반미’의 대립구도로 설명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보다 더 깊고 넓은 정치·사회적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본지에서는 이번 대만 대선의 주요 쟁점과 특징에 대해 심층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대만 정치를 연구해온 본교 정치연구소의 지은주 연구교수를 만났다.
의제에 따라 갈라지는 대만인들의 정치적 선택, 단순한 이분법으로 파악할 수 없어
일부 국내 언론에서는 이번 대선 국면을 주로 ‘반중(민진당)대 반미(국민당)’의 구도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이분법적 평가는 대선 과정에서 제기된 여러 구체적인 의제를 포괄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대두된 주요 쟁점이 무엇이었으며, 민진당을 또다시 선택한 대만 국민들의 정치적 판단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 물었다.
“현재 국내에서 나오는 언론 보도들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기 위해 대립성을 부각하는 경향이 있고, 대만의 민진당을 반중으로, 그 반대편인 국민당은 반미로 표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국민당을 반미로 단정하는 것은 단순한 이분법이 초래한 대표적인 오류입니다. 실제로는 민진당은 반중이면서도 친미로 볼수 있고, 국민당은 친중이면서 동시에 친미로 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양당 모두가 친미 성향을 띠며, 다만 중국에 대한 입장이 다른 것이죠.
한편, 반중과 반미의 구도 역시 정치적 측면, 특히 안보 이데올로기를 기준으로 해석한 결과입니다. 경제 이슈를 기준으로 보면 민진당도 확고하게 반중적 지향성을 보이지는 않고 있죠. 예를 들어 중국은 대만의 농수산물 주요 수입국이기에 민진당 정부가 중국과 정치·외교적으로 대립각을 내세우더라도 경제적 영역에서까지 전면적으로 반중을 내세우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그들의 원칙을 인정하는 대상과만 대화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중국은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정당으로 비추어지는 민진당과는 경제적으로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 하고, 대만 주민들 역시 선거에 임할 때 경제적 의제와 관련해서는 민진당보다는 중국과 대화할 수 있는 국민당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대만의 주민들은 단순히 안보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각자의 상황을 고려해 투표하고, 이처럼 다양한 의제에 따라 갈라지는 표심은 이번 선거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총통은 민진당에서 배출되었지만, 우리나라의 총선에 해당하는 입법위원 선거에서는 중국과 대화를 끌어내어 민생과 관련된 사안을 실질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국민당을 다수당으로 선택했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이번 선거 결과 전체를 놓고 보면, 대만 주민들이 반중을 선택했다거나 친미로 경도(傾倒)된 것으로 볼 수는 없어요. 일부 언론에서 취하는 이분법적인 시각으로는 사안에 따라 달라지는 지점들을 고루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국민당·민진당의 기원과 양당제로 수렴된 대만의 정치지형
대만의 정치지형은 크게 국민당과 민진당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양당의 주요 차이나 지향성이 지금까지 어떻게 구분되는지, 대만의 국민당과 민진당의 기원과 대만 내부의 정치지형에 대해 물었다.
“대만의 국민당은 중국 대륙에서 국민정부를 이끌었던 국민당이 1949년 국공내전에서 중국 공산당에게 패배한 뒤 대만으로 이주하여 활동하고 있는 정당입니다. 국민당은 이러한 국부천대(國府遷臺) 이후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다른 정당의 설립이나 정치 활동을 용인하지 않은 채 대만을 일방적으로 통치했습니다. 이때의 대만을 정당 국가(party state)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국민당은 우리나라의 군사독재-권위주의 정권과 유사하게 수출 지향 산업을 육성하면서 경제성장을 통해 정당성을 얻으면서정권을 유지했습니다.
한편 민진당은 권위주의 통치 시기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모여 1986년 정당을 설립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권위주의 통치 시기에도 선거는 개방되어 있어 다양한 정당활동이 가능했지만, 이전까지 대만에서는 정당 활동을 아예 할 수 없었습니다. 민진당 인사들은 당시에는 ‘당외(黨外)’ 세력으로 활동하다가 1986년 기습적으로 정당을 설립했고, 장징궈(蔣經國) 총통이 정당 수립을 인정하면서 공식 정당으로 출발하게 됩니다. 국민당은 경제성장을 중시하는 보수 정당의 색채를 보이고, 민진당은복지나 분배 그리고 여성, 환경, 노동 쪽에서 진보적 입장을 견지하며 서로 경쟁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대만에서는 국민당과 민진당을 각각 외성인(外省人)의 당과 본성인(本省人)의 당으로 구별하곤 했습니다. 외성인은 중화민국 정부가 대만으로 이주할 때 국민당과 함께 왔던 사람들을 지칭하고 본성인은 원래 대만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대만의 정치에는 본성인과 외성인 간의 족군(族群) 균열이 존재합니다. 오늘날에는 일상생활에서 그 경계가 많이 흐려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중국인과 대만인으로 구분하는 정체성 균열이 나타나고 있죠. 이러한 정체성의 균열은 정당 일체감과 연결되면서 대만 선거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한편, 최근 새로운 사회적 의제들도 주요하게 대두되면서 제3당이 약진하기도 합니다. 여성, 환경, 성 소수자 문제 등의 의제에대해 주로 목소리를 냈던 민진당이었지만, 이는 실질적인 행동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에 불만을 가진 청년들이 2016년 시대역량(時代力量)을 창당하며 ‘반중’과 함께 사회적의제들도 함께 제기했습니다.
대만에서 제3정당은 양당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만에서 중선거구제를 채택했을 당시에 다당제적 특징이 강하게 나타났지만, 2005년 선거법 개정을 통해 기존 우리와 같은 병립식 양표제로 변경한 이후에는 양당제적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거제도는 총통제와 결합 되면서 양당제를 추동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대만정치의 역사를 보면, 포용성 (inclusion) 있는 정치제도를 만들기 위한 시도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양당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양표제 하에서는 정당투표도 이루어지기에 2024년 총선에서 민중당이 제3당이 되었지만, 현행 선거제도하에서는 제3당이 총통을 배출하기 어렵기 때문에, 양당제적 특징은 계속 유지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민진당 정권의 연장과 향후 양안 관계의 전망
이번 대선의 결과 민진당 정권이 연장되면서 대만-중국과의 관계(‘양안관계’)가 더욱 경색될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대외관계의 차원에서 민진당의 기본적 대중(對中) 정책 기조는 무엇이며이번에 민진당 정권이 연장된 것은 대만-중국 관계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하는지 물었다.
“2016년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당선된 이후 현재까지 8년 동안 두 번 집권하면서 양안관계는 계속 악화되었고, 2022년 8월펠로시(N. Pelosi) 하원 의장이 대만을 방문했을 때 위기가 최고점을 찍었습니다. 당시에 펠로시가 대만을 떠나자 중국은 대만을 포위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시뮬레이션을 감행하기도 했죠. 이때만큼은 아니지만, 이번 선거를 앞두고도 중국은 대만 해협 근처에서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전투기를 출격시키는 등 군사적으로 위협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것은 민진당 후보가 총통으로 당선될 것 같을 때면 중국이 통상적으로 해왔던 위협 정도로 평가되었습니다. 대만 주민들 역시 당장의 실질적인 위협으로 여기지는 않았던것으로 보입니다.
대만의 선거 국면마다 중국이 대만에 대해 무력시위를 일삼는 까닭은 이를 통해 독립지향적인 민진당 후보의 당선을 막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독립을 지향하는 모습을 보이면 전쟁이 날 수 있다는 압박을 가하면서, 대만 주민이 민진당보다는 국민당 후보에 투표하기를 기대하는 것이죠.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안보이슈가 부각되면 민진당이 불리하다고 생각하지만, 대만 주민의 표심은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을 보입니다.
최근에는 중국도 이를 인지하고 군사적 위협에 대한 효용성을 재평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따라서 중국은 군사적 위협과 함께 다른 방식으로 대만을 견제하고 있죠. 예를 들어 대만의 수교국을 빼앗는 등의 대만 주민의 표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대만은 2023년에는 온두라스와 단교했고 이번 선거가 끝난 이후에는 팔라우와 외교 관계를 끊게 되었는데 여기에 중국이 깊숙하게 관여했던 것이죠. 그런가 하면 2016년 차이잉원이 당선된 이후부터 대만의 농수산물에 대한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시키고 있습니다. 중국은 대만 농민들과 어민들이 중국으로의 수출이 막히면 생계유지가 힘들어지기에, 독립을 지향하는 민진당에 투표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민진당은 중국과 대화할 수 있는 채널이 미비해서, 중국의 변화한 전략에 대해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중국의 여러 견제에도 불구하고 민진당이 다시금 정권을 잡게 되었지만, 라이칭더 신임 총통은 중국에 직접 맞서기보다는 이른바 대만의 ‘독립’과 관련해 간접적인 노력을 시도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의 대만이 미국의 동맹국의 범주에 있는 국가가 결성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인 CPTPP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에 가입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요. 또한, 대만의 UN가입도 재차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가 국제사회에서는 독립된 국가만이 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러한 행위 자체가 라이칭더가 대만의 독립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선거 이후의 동북아 및 세계정세, 당분간 유지될 것
이번 대선의 결과를 두고 한편에서는 동북아에서의 전쟁 국면까지 치달을 것으로 전망하는 시선도 있다. 그만큼 이번 대만 대선은 ‘양안관계’를 넘어 동북아나 세계정세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마지막으로 대만 대선 이후 동북아 지역을 비롯한 세계정세는 어떻게 나아갈지 물었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대만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단순히 그 시각을 양안관계로 한정해서는 올바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이른바 ‘신냉전’이라고 하는, 그중에서도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동북아는 물론 세계전체의 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죠. 그리고 이러한 미·중 갈등의 중요한 지점에 대만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우선, 동북아 지역의 정세와 관련해서는 중국이 어떤 행보를보이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 같습니다. 중국은 보통 대만의 선거 이후 1년 정도 관찰 기간을 갖습니다. 새로운 총통이 어떤 방향성을 보이고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중국의 반응도 달라지겠죠. 또한, 2024년 미국 대선의 결과도 중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바이든이나 트럼프 중 누가 당선되는가에 따라 미국의 대만 정책도 조정될 것이고, 거기에 대응해 동북아 지역의 정세도 변화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미국 대통령이 친 대만적인 행보를 하면 중국이 보다 강경하게 대응하게 된다고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다만 중국이 실제로 강경한 자세를 취할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른 지점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우선 최근에 중국이 상당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는 점도 중요한 변수가 될수 있죠. 이와 관련하여 미중간 패권경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관련 부분을 주목해 봐야 합니다. 최근 미국이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을 동맹국 중심으로 재편성하는 가운데 중국기업을 배제하고 대만 기업을 포용하면서 양안관계에서 새로운 차원의 경쟁 공간이 생겨났습니다. 이를 설명하려면 훨씬 더 깊게 들어가야 하겠지만, 결론적으로는 중국이 대만문제와 관련하여 미국과 직접적으로 대결각을 세우기 어려운 이유 중에는 경제적인 상황과 관련한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세계정세의 수준에서 살펴본다면, 현재 진행 중인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 패권경쟁은 앞으로도 수년간 팽팽하게 이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동아시아 지역과 미-중 관계는 매우 복잡한 역학관계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대만을 둘러싼 여러 정황이나 조건들을 단순히 대만의 집권당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대만 대선 결과 그 자체만으로 동아시아 내 전쟁 위기를 예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재훈 기자 wjd88899@naver.com
■천관우 기자 kw10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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