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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현장과 책상 사이에서: 균형에 관한 단상 본문

2면/원우발언대

현장과 책상 사이에서: 균형에 관한 단상

Jen25 2024. 9. 10. 14:05

 

현장과 책상 사이에서: 균형에 관한 단상

 

어느 대학원생

 

연구를 잘하려면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 대학원 생활을 하며 자주 듣는 말이다. 글로 지식생산을 하는 집단에선 책상에 앉아 텍스트를 읽고 쓰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원래부터 여기저기 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부 때와 같은 전공으로 실용 학문을 다루는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공부하는 방식은 크게 달라졌다. 이곳에서는 텍스트와 데이터를 소화해야 하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 학부 시절에는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관찰하고 생각하는 데 시간을 많이 썼지만, 대학원에 들어와서는 오래 앉아 있어야만 학업량을 소화할 수 있었다. 데이터 분석을 할 줄 알아야 편하게 연구할 수 있다는 말에 이끌려 방법론을 익히는 데 시간을 쏟았고, 이론적 토대를 쌓기 위해 더 많은 리딩이 필요했다. 그래서 대학원 과정이 시작되면서는 현장보다는 점점 책상 앞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 애썼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리딩을 읽다가도 어느 공간에 관한 연구를 읽게 되면, 어느새 샛길로 새어 그 공간이 지금 어떤 모습일까 검색하고. 로드뷰를 보며 연구실 구석에서 랜선답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그러다 문득, ‘사람이 사는 공간을 연구하면서, 그곳에 가보지도 않고 분석하는게 말이 되나?’하며 혼자 푸념하는 일상이 반복되기도 했다. 다행히도 책상 앞에서의 시간이 헛되지 않아 텍스트를 읽어내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현장과의 거리감에서 오는 답답함이 커졌다. 그럴 때면 잠시 현장을 찾아 직접 보고 걸으며 이게 좋아서 더 공부하려고 했지, 그래서 이 연구를 시작했지라고 마음을 다잡곤 했다.

책상과 현장 사이에서 시간을 어떻게 나눠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던 2년간의 과정 동안은 종종 불안감을 느꼈다. 연구 대상을 직접 보고 경험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 했지만, 그럴수록 책상 앞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 불안해졌다. 반대로 현장과 너무 떨어져 있으면 내가 현실에 반영될 수 있는 방향으로 연구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현장감을 좇아 답사에 많은 시간을 보낼 때면 떠오르는 생각들을 곱씹고 정리하지 못해 불안했고, 그 불안함 속에서 책상 앞에만 매달리는 연구를 할 때면 현장을 충분히 보지 않고 글을 써도 되는지 괴로워하던 서툰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깨달은 것은 명확한 데이터 수집 목적이 없더라도 현장에서 얻는 에너지와 감각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공부를 해나가는 이유를 찾고 그 가치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현장에 가서 충분히 관찰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데이터와 이론은 중요한 연구 도구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놓치는 것이 많다. 무거운 데이터 분석을 끝내고 결과를 들여다보던 어느 날, 8월 한낮의 서울 중심가의 폭이 2m도 안 되는 도로에서의 터무니없는 보행 밀도 수치를 이해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그 골목은 열악한 집들이 모여 있는 쪽방촌이었고, 냉방시설이 없어 찜통 같은 방에서 나온 주민들이 거리에 나와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연구실에 앉아서는 해석할 수 없던 결과를 현장에서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이처럼 숫자는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으며, 사회를 연구하려면 사람을 직접 만나고 그 공간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왜 이 연구를 하는지, 그 목적과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몸은 하나뿐이다. 오늘도 현장과 책상 사이에서 나를 어디에 위치시킬지 고민하며 저울질을 한다. 이러한 고민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많은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일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각자의 방식에 맞는 균형점을 찾아가는 일이다. 나처럼 엉덩이가 가볍고 현장에서 얻는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에게는 현장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그 공간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연구의 의미를 되찾게 해준다. 동시에,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책상에 앉아 이론을 정립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연구는 비로소 완성된다. 이 두 가지를 조화롭게 연결하고자 여전히 균형을 찾아가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방법론과 이론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잘 드러내는 연구를 만들어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