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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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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면/원우발언대

왜 인문학을 공부하시나요

Jen25 2024. 11. 7. 18:27

왜 인문학을 공부하시나요

 

어느 대학원생

 

지난 1010일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수상 직후 인터넷 신문부터 TV방송, 라디오, 지면신문, SNS까지 한강의 수상 소식을 다뤘다. 오죽하면 친구들과의 단체카톡방에서도 한강의 수상 이야기로 떠들썩했을 정도였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의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서정적 산문이라고 밝혔다. “인문계 나오면 뭐 먹고 살거니?”라는 질문에 문송합니다라고 답해야 하는 이 나라에서 말 그대로 인문학의 승리라는 말이 어울리는 선정 이유가 아닐 수 없다.

불행히도 나는 한강 작가의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소년이 온다를 읽고 작가가 글을 통해 전하는 사회비판적인 메시지에 반해 채식주의자를 찾았고, 한강 작가 특유의 인간의 심리를 묘사하는 기괴한 문체에 놀라 더 이상 한강의 다른 책을 찾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한강의 다른 책들은 이제는 읽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서점에서 한강의 책들은 재고가 없어 예약판매로 구매해야 하고, 고려대학교 도서관에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8권 모두 대출중에 예약 한도도 초과되었다. 심지어 전자책마저 모

두 대출중이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한강 작가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인문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대신 인문계 대학원으로의 진학을 선택한 나에게 한강의 수상소식은 내가 완전히 잘못된 선택을 하지는 않았구나라는 약간의 안도이자 희망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익명으로나마 한강의 책과 관련된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한강의 수상 이후 작지만 소중한 월급을 받는 직장에서 아침토크 시간에 한강의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연예계 소식, 정치뉴스, 상사에 대한 욕 등으로만 채워지던 아침 토크 시간이 책에 대한 이야기로 꾸며진 것은 처음이었다. 토크의 주제는 한강 작가의 책이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였고, 나의 답은 인문학이 가지는 공감의 힘이었다.

한강의 책을 보면 놀랍도록 한국의 사회와 역사를 그려내지만, 그것을 마냥 한국만의 것으로 특수화시키지는 않는다. 광주와 제주라는 장소를 보고 한국인이라면 ‘5·18’‘4·3사건을 떠올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소설을 읽고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없고, 내용의 이해를 넘어 먹먹함이라는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들게 된다. 결국 한강 작가가 그려내는 인간의 삶은 전쟁과 폭력으로 인해 소중한 것을 잃고, 사회적인 시선에 의해 침묵을 강요받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전세계의 모든 사람의 직접적이나 간접적인, 그런 보편적인 경험이다. 한강은 그런 인간 삶의 고통과 열정을 오랜 시간에 걸쳐 직접 대면하면서 그들의 삶을 자신만의 단어로 표현해낸다. 그런 단어가 문장이 되고 챕터가 되고 책이 되어 독자에게 읽히면서 나의 이야기라고 받아들이게 하는 매력이 한강의 글에는 있다. 인간의 삶을 자기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 바로 인문(人文)’의 힘이다.

대학원에 있다 보면 왜 인문학을 공부해요?”라는 질문을 종종 듣게 된다. 돌이켜보면, 나는 결국 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해서 왜 그런 선택을 하였는지, 사람을 둘러싼 사회구조와 그 사회 안에서의 그들의 실제 삶, 즉 인간에 대한 궁금증에 인문학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나만의 언어로 적어 내려가 복원하고, 다른 사람을 글로서 설득하는 일이 멋있고 즐거워서 대학원까지 왔던 듯하다.

하지만, 대학원 진학하여 수업과 근무, 발제와 토론준비, 간간이 있는 세미나 등으로 일주일을 채우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왜 대학원, 그것도 인문계 대학원을 왔는지 목표를 잃어버리게 된다. 말 그대로 현생에 치이다 보면 분명 나는 분명 인간이 좋아서 인문계 대학원에 왔는데 오히려 인간이 싫어지기도 하고, 머릿속에는 고민이 이만큼 있는데 글로는 한 문장도 완성하지 못하는 내 표현력에 좌절하기도 했다. 이런 시점에 한강의 수상 소식은 인문계 대학원생마저도 잃어버렸던 인문학의 이유를 상기시켰다. 결국 나는 인간의 삶에 대한 물음을 나의 단어로 답하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인문학(人文學)’ 그 자체로 돌아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