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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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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면/원우발언대

미움받을 용기

Jen25 2024. 12. 27. 11:07

미움받을 용기

어느 대학원생

 

  또 한 해가 간다. 밤이 길어지고, 어느 순간 쌀쌀해진 공기는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섭리에 수긍하듯이 찾아온다. 이런 잔잔한 일상이라는 호수에 누군가 돌을 던지면, 깊이 가라앉는 돌과 표면의 파장은 사람을 오래도록 괴롭힌다. 점점 쌓여가는 돌은 기어코 그 물이 넘치게 만든다.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려온 시간이 무색하게도, 부족한 부분만 커 보이고, 늘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된다. 연구자로서의 견고했던 마음가짐이 흔들리고 일렁인다. 어느 순간 내가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조차 흐릿해져 보일 때도 많다. 책임지지 못하고 회피하는 사람들을 정말 싫어했는데, 대학원생이 된 나에게서 그 모습을 마주한다. 

  이번 학기는 특히 이런 날의 연속이었다. 분명 공부를 위해 일을 하는 것임에도 그 주객전도가 적지 않게 이루어졌다. 일은 늘 해냈지만, 공부에 있어서는 변명투성이였다. 이런 상태에 몸은 빠르게 망가졌다. 단 한 순간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도 만족스럽지 못한데 어떻게 타인에게는 괜찮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미움을 받을 용기는 쉽게 생기지 않는다. 물론 미움의 범위는 좁지 않다. 그래서 ‘미움’이 단순 비난이 아닌,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조언 내지 비판인 것을 알면서도 피하고 싶어진다. 이러한 심리적 거리는 점차 물리적인 거리도 추구하게 한다. 수업과 세미나 일정을 피해 학교를 떠나있기도 했다. 후폭풍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당장 숨 쉴 틈이 필요하다고 위안 삼았다. 그렇다고 대학원생의 위치가, 처한 상황이 바뀌는 건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지금 대학원을 준비하는 학부 동기들이 많다. 같이 가자고 해도 생각 없다고 휴학하더니, 예상에도 없었던 동기들도 많이 준비해서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같이 입학하고도 따로 졸업하는 게 익숙지 않아서, 어쩌면 학업을 마무리하는 동기들과 새로운 학업을 시작한 나와의 거리가 느껴져서일 수도 있겠다. 최근에는 학교에 면접을 보러와서 오랜만에 대학 때로 돌아간 기분을 체감했다. 시간상으로 그다지 멀지도 않은 때였는데도 아득하게 그려진다. 다들 휴학도 하고 듣는 수업도 엇갈려 같이 보낸 시간이 3년도 겨우 채웠겠지만 유독 그 유대감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이 친구들이 대학원 생활을 물어보면,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나는 그저 순응하고 견뎌왔는데, 과연 괜찮다고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는 탓이다. 사람마다 상대적이겠지만 가히 대학교 4년보다 지금의 일 년도 덜 되는 시간 동안 쏟아부은 노력이 더 많을 것이다. 철없이 놀기만 한 적은 없음에도 미움의 횟수가 더 잦다는 이유만으로 더 무력해지기도 한다.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던 시기부터 다니고 있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부모님

은 청춘을 이렇게 보내지 말라고 이야기하신다. 누군가는 뭐가 그렇게 급해서 다들 목적 없이도 쉬고 가는 걸 한 번도 쉬지 않고 왜 바로 또 학업을 이어 나가려고 했냐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을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 단순히 지금까지의 시간이 아까워서는 아니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과 그 답이 대학원에 있다고 생각해서 왔기에, 그 목표를 향해 꾸준하게 달려갈 뿐이다. 마라톤의 트랙을 잠깐 벗어나더라도 그것이 물을 마시기 위함이라면, 타인의 시선은 ‘미움’이 아닌 트랙 위의 러너를 향한 응원이 된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한 길이기에 그 미움을 소중히 여겨보려 한다. 미움받을 용기에는 큰 힘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순응하고 견디라는 것이 아니다. 가끔 무력하고 지친다면 앞이 아닌 옆을 잠깐 둘러보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스스로가 보내오는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기만 하면 결국 무너지기 마련이다. 호수에 돌이 쌓여 물이 넘치는 것과, 폭우로 넘치는 것은 차이가 있듯이 말이다. 타인의 ‘미움’은 가라앉는 돌과 파장으로 나를 돌

아보게 하지만, 퍼붓는 비는 돌아볼 새도 없이 넘쳐버리게 만든다.

  이 글을 읽는 어느 대학원생들에게도 묻고 싶다.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아쉽게도 동명의 책은 읽지 못해서 그 이야기는 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럼에도 나 자신을 위해 살겠다는 이유로 대학원생이 된 이들이, 그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내며, 건강하게 대학원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