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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연구 : 서사윤리를 중심으로 본문
노어노문학과 박사학위 논문
이선영
제목 :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연구 : 서사윤리를 중심으로
전공: 노어노문학과 노문학 전공
논문 목차
Ⅰ. 서론
1. 연구 목적, 연구 방법 및 선행 연구
2. 서사윤리
3. 『악령』 줄거리 요약
Ⅱ. 본론
1. 서술자 안톤 라브렌티예비치 G-v
1.1. ‘신빙성 없는 서술자’와 시점의 동시성
1.2. ‘신빙성 없는’ ‘서술자-연대기작가’
1.3. 사실 기술과 진실 기술
2. 메타소설로서의 『악령』
2.1. ‘환상적 리얼리즘’
2.2. ‘아름다움의 형식’과 오브라즈
2.3. 아름다운 소설
3. 두 편의 고백
3.1. 고백하는 서술자
3.2. 소설과 고백의 윤리
3.3. 고백의 두 형식
Ⅲ. 결론
참고문헌
논문 요약(초록)
본 논문은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을 서사윤리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서사윤리는 20세기 후반 영미권을 중심으로 대두한 서사 연구의 한 분야로, 서사의 윤리성을 서사의 내용과 형식 모두의 측면에서 조명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요컨대 서사윤리에서는 작가가 텍스트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일방적인 강요의 방식이 아닌 독자의 자발적인 성찰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양상에 천착한다. 이처럼 서사윤리는 서사와 윤리의 공고한 연관성을 근간으로 하므로 윤리의 문제가 작품 세계의 중심에 자리하는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서사윤리 연구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과 윤리의 긴밀한 연관성은 익히 여러 연구자에 의해 지적되어왔으며, 본 논문에서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특히 『악령』의 윤리성을 서술자, 메타소설, 고백을 키워드로 하여 살펴본다.
본론 1장에서는 ‘신빙성 없는 서술자’ 기법에 주목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서술자와 독자 간의 거리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독자의 윤리적인 성찰을 이끌어낸다. 독자는 신빙성을 결여한 서술자의 말에 의지하지 않고 작중 진실을 직접 파악해나가는 과정에서 편협한 시각에서 비롯된 편파적인 말의 비윤리성을 숙고하게 된다. 특히 『악령』에서 ‘신빙성 없는 서술자’ 형상은 ‘서술자-연대기작가’ 형상과 중첩됨으로써 말의 책임에 대한 독자의 심층적인 사유를 가능케 한다. 서술자의 편협한 시각에서 비롯된 편파적인 진술이 사실 기술은 될 수 있을지언정 진실 기술은 될 수 없다는 점이 두드러짐으로써 독자는 연대기작가임을 자임하는 서술자의 책임 문제, 사실 기술과 진실 기술에 관련된 말의 윤리를 숙고하게 된다.
본론 2장에서는 윤리적인 메시지를 윤리적인 형식을 통해 전달하는 도스토옙스키의 창작관을 집중 조명한다. 작가의 창작 원칙을 설명하는 용어인 ‘환상적 리얼리즘’과 오브라즈는 그에게 있어 리얼리티의 재현과 아름다움의 문제가 곧 윤리와 직결되었음을 보여준다. 도스토옙스키에게 아름다움은 본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을 독자가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작가의 창작 원칙에 내재한 이러한 윤리성을 토대로 겉보기엔 온갖 추악한 인물 및 사건으로 가득한 『악령』을 아름다운 소설로 규정할 수 있음을 밝힌다. 그 과정에서 『악령』에서 소설 쓰기의 문제가 다루어지는 양상을 조명함으로써 『악령』을 소설에 관한 소설, 즉 메타소설의 측면에서 분석하게 될 것이다.
본론 3장에서는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고백 모티프를 서사윤리의 측면에서 살펴본다. 도스토옙스키는 소설에 고백 모티프를 도입함에 있어 왜곡된 고백을 하는 1인칭 서술자를 내세움으로써 고백의 윤리에 대한 독자의 능동적인 사유를 유도하였다. 왜곡된 고백의 형식은 독자의 반성적 성찰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규범적인 고백 형식보다 더 큰 서사윤리적 함의를 지닌다. 『악령』에서 스테판의 고백과 스타브로긴의 고백은 규범적인 고백과 왜곡된 고백의 대표격으로 겉보기에는 대조를 이루지만, 두 고백이 독자의 인식 전환에 작용하는 양상에 초점을 맞추어보면 일그러진 형태의 추악한 스타브로긴의 고백이 서사윤리의 관점에서 보면 독자에게 더 많은 시사점을 제공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자면 다음과 같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1인칭 서술자를 통해 독자를 윤리의 문제로 끌어들인다. 작가는 ‘신빙성 없는 서술자’, 왜곡된 고백을 하는 서술자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윤리적 메시지를 독자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때 독자는 서술자의 신빙성 없는 발화, 사실이 아닌 허구에 기반한 서사, 추악하게 왜곡된 고백 등 본질에 대한 일그러진 형상을 통해 본질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된다. 도스토옙스키의 창작관에 비추어 말하자면 아름답지 못한 것을 통해 ‘아름다움의 형식’이 달성된다. 비윤리성을 담지하는 서술자와 여러 추악한 인물 및 사건, 일그러진 고백을 통해 독자를 ‘아름다움의 형식’으로 인도하는 『악령』은 서사윤리의 관점에서 보면 윤리적인 소설이자 아름다운 소설이다.
인터뷰
(1) 해당 전공을 선택하게 된 계기
열아홉 살이 되던 겨울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습니다. 대문호의 장편 소설을 온전히 이해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세계를 엿보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무어라 형용하기 힘든 에너지 같은 것이 마음 가득 들어찼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호기심을 안고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은 날 저녁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석영중 교수님의 『안나 카레니나』 강연을 보게 되었습니다. 살짝 엿볼 수만 있었을 뿐 가늠조차 할 수 없었던 드넓은 세계를 눈앞에 펼쳐 보여주시는 압도적인 강연은 제게 엄청난 울림이 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교수님의 다른 강연들까지 열심히 찾아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로부터 1년 후 저는 고려대학교 학생이 되어 교수님의 강의를 강의실에서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노어노문학과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교수님께서 알려주시는 러시아문학의 세계, 특히 도스토옙스키의 세계를 더 공부하고 싶다는 바람을 품게 된 것이 박사학위논문에까지 이르렀습니다.
(2) 논문 주제를 선정하게 된 이유와 꼭 전달하고 싶었던 내용
숏폼의 흥행, AI의 발달, 자본주의의 성행으로 인해 자극적으로 시청각을 홀리는 각종 컨텐츠가 넘쳐나면서 독서가 후순위로 밀려나는 오늘날, 그럼에도 고전 읽기가 우선시되어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 싶었습니다. 문학의 위기라는 말조차 새삼스러운 때에 오히려 문학의 본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를 찾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논문 주제를 탐색하던 중 최근 도스토옙스키 연구의 주요 화두 중 하나인 서사윤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서사윤리는 서사의 형식과 내용 모두의 차원에서 윤리성이 전달되는 양상에 천착하는 서사 연구의 한 분야입니다. 특히 서사 형식의 측면에서 서사윤리는 작가가 텍스트를 통해 독자의 자발적인 윤리적 성찰을 촉구하는 양상에 집중합니다. 저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그중에서도 『악령』을 중심으로 작가가 어떠한 윤리적 메시지를 어떠한 윤리적 형식을 통해 전달하는지를 분석하였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 강조되는 말의 윤리성은 알고리즘의 지배로 확증편향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고 AI의 발달 앞에 윤리의 문제가 경시되는 현대 사회에 큰 울림을 줄 것입니다.
(3)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의 어려움
논문을 쓰면서 마주하는 어려움의 정도나 종류는 각자 다를 텐데요. 이왕 이야기하는 김에 제가 겪은 어려움 중에서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누구나 마주할 만한 것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저에게는 산더미 같은 참고문헌 목록에서 벗어나 글쓰기에 돌입하는 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논문 하나를 읽으면 추가로 읽고 싶은 문헌이 두세 개가 추가되는 일이 매일같이 일어났습니다. 지도교수님께서 이끌어주시지 않으셨다면 저는 아직도 참고문헌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방대한 참고문헌을 가지치기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읽기만 하는 경우는 주변에서도 자주 발견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저마다 다양했습니다. 박사논문에 걸맞게 최대한 많은 자료를 소화하고 싶다는 의욕, 앉아서 무언가를 읽고는 있으니 그래도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은 아니라는 위안, 새로운 자료를 발견하면 어차피 새로 써야 하니 필요한 자료를 다 읽고 쓰겠다는 나름의 계획까지. 자료를 그만 보아도 되는 때는 오지 않으니 무언가라도 쓰기 시작하라는 조언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후배들에게 건네는 조언에서 꾸준한 쓰기를 꼭 강조하고 싶을 만큼요.
(4) 논문쓰기를 앞둔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매일 꾸준히 읽고 꾸준히 쓰라는 조언 이미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모두가 입을 모아 강조한다는 것은 그만큼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어려움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해보자면, 특히 꾸준한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논문을 쓰기엔 읽고 정리한 자료가 아직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키보드 치는 손가락을 한없이 무겁게 만듭니다. 하지만 읽은 것이 어느 정도 쌓였다면 읽는 시간만큼이나 쓰는 시간을 반드시 확보해야 합니다. 읽은 자료가 머릿속에서 절로 정리되어 단숨에 논문이 써지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무어라도 써보아야 내 생각의 흐름이 어느 쪽으로 향해가고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단 시작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쓴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이 많을 것입니다. 전날 3시간 동안 쓴 것을 다음날 검토하다가 3초 만에 모조리 지워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모두 겪는 것까지가 논문 쓰기의 과정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용기를 잃지 말고 나아가기 바랍니다.
'4면 > 고대 아카데미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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