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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여성이 소망하는 것과 여성에게 금지된 것 본문
여성이 소망하는 것과 여성에게 금지된 것
-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쓰다, 2019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근작이 아니고서는 혹은 연구자가 아니고서는 잘 읽히지 않는다는 약간의 시차를 둔 소설들 가운데서도 꾸준히 호명되는 작품이 있다면 단연 양귀자의 소설일 것이다. 작가의 잘 알려진 작품 『원미동 사람들』이 리얼리즘을 표방했다면 이와 사뭇 다른 추리소설적 형식을 일부 차용한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당대 문학계 그리고 대중 사이에서 상반된 평을 받으며 여러모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당대 문학 담론장에서 이 작품은 여성 주인공이 젠더 억압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현실을 드러내지 못했거나 “미래의 전형을 생산하는 문학의 역할 수행”에 미비했다는 평을 받은 한편 작품은 당대 유명 배우가 대거 출연하여 영화화되기도 했으며, 대중으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한데 이 작품에 대한 문학적/대중적 호응은 비단 당대에 국한된 현상만은 아니다. 최근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 대한 언급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여성 문학 및 페미니즘과 관련한 테마를 탐구하는 현장에서 해당 작품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과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SNS에서도 적잖게 회자되곤 한다. 작품이 발표된 직후와는 분명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현재, 작품의 어느 지점이 우리에게 새로이 공명되는 것일까.
이 소설은 뛰어난 지성과 냉철한 성격의 소유자인 20대 후반의 여성 강민주가 당대 최고의 스타 백승하를 납치하고 사육하는 사건을 다룬다. 부드러운 성품, 흠결 없는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 멋진 남성 배우로 살아가는 백승하의 납치 사건은 강민주가 경험해온 젠더 폭력의 역사에서 비롯된다. 아버지의 내연녀였던 어머니는 그의 오랜 폭력에 시달리다 놓여났고, 암달러상으로 살아가다 강민주에게 거금을 상속했다. 어머니는 연고 없는 조폭 황남기를 거둬 먹이며 강민주에게 일종의 대안 가족을 만들어주었으나, 이들은 돈과 권력 그리고 힘에 복종하는 주종관계에 가깝다. 이런 개인사로부터 강민주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폭력성을 오직 대다수 폭력의 행사자인 남성에게 되돌려주고자 하며, 다름 아닌 자신만이 어떤 종류의 힘으로든 그들을 굴종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물심양면으로 부족한 것 없는 강민주는 심리학 대학원 석사 과정을 계기로 한 여성상담소에서 일한다. 그곳에 걸려오는 다수의 상담 전화에서 여성들은 각종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고발한다. 강민주는 폭력의 굴레에서 힘겨워하면서도 그것으로부터 기꺼이 벗어날 결심을 하지 못하는 여성을 보고 개탄하지만, 그러한 굴레 속에 여성을 처넣는 것이 그녀 자신만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기도 하다는 것을 상담 전화를 통해 분명하게 확인한다.
가령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온 경력 단절 여성이 그간 이혼 소송을 쉬이 하지 못했던 것은 ‘가정 주부’는 가정을 돌보는 데 기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재산 분할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정법 이후 더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고지하는 강민주의 말로부터 한 여성은 이혼을 결심하며 전화를 끊는다. 이처럼 강민주는 여성이 남성에 의한 폭력적 억압 체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자신의 지향점을 더욱 확고하게 굳혀가되, 그 과정에서 겪는 모든 고통을 다른 여성과 나눠 짊어지는 대신 오직 그녀 혼자 수행하고자 한다.
‘만인의 연인’이자 ‘이상적 남성상’인 백승하는 이 실천의 이상화된 본보기로 납치된다. 강민주가 백승하 납치를 통해 ‘확인하고 싶었던’ 현실이란, 고결한 듯 ‘연기’할 뿐인 남성성의 추한 이면을 세상이 자발적으로 적발하고 떠들어대도록 하는 것이었으나, 어째서인지 백승하에 대한 추문은 적극적으로 보도되지 않는다. 이에 그녀는 사람들이 ‘믿고자 하는 것’을 투영할 수 있는 기표를 증거로 흘리면서 그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을 유도한다. 이를테면 그에게 40대의 내연 관계로 추정되는 여성이 있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오늘날 현실에서 이슈화되는 연예인의 숨은 추문은 때때로 인간적 허용의 범주를 훌쩍 넘어있기도 하거니와 그와 같은 사실이 젠더에 따라 차등하게 폭로되거나 문제시되곤 한다. 젠더에 따라 ‘허용 가능한’ 사생활 표백/오염의 문제는 만인이 미디어를 구성하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더더욱 현실적 문제로 읽힐 법하다.
백승하가 ‘정말로’ 그런 인간이었는가에 대해 매우 미진한 결론에 이르는 것을 두고 세상 가장 무고한 남성을 벌하는 악독한 여성의 서사로 소설을 읽는 것은 납작한 해석일 것이다. 이 서사에서 중요한 것은 과연 둘 중 누가 무고했는가를 판별하는 일이 아닌, 남성적 방식으로의 전복 즉 힘과 권력으로 억압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주체가 여성일 때 그녀의 욕망이 과연 실현되는가의 문제다. 여성 인물의 지향점이 폭력이라는 한계점 안에 설정되어 있다는 비판도, 그런 점에서 보다 뒤에 판결되어야 하는 요소다. 여성은 폭력적 전복을 욕망할 수 있는가? 그렇다. 그러나 그녀에게 금지된 것은 그러한 욕망의 사회적 ‘허용’이다. 지성, 냉철함, 힘, 권력, 돈으로 표방되는 모든 지위를 부여받은 강민주조차 ‘여성의 복수’는 실행할 수 있을지언정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에 오늘날 이 소설은 더욱이 전위적으로 독해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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