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국가란 무엇인가 #광주518 #세월호 #코로나19
-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로나 콜른타이 #위대한 사랑 #콜른타이의 위대한 사랑
- 고려대학교언론학과 #언론학박사논문 #언론인의정체성변화
- 코로나19 #
- 고려대학교대학원신문사
- 선우은실
- 마크 피셔 #자본주의 리얼리즘 #염동규 #자본주의
-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 BK21 #4차BK21
- 권여선 #선우은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김승옥문학상수상작품집
- n번방
- 수료연구생제도 #고려대학교대학원신문사 #n번방 #코로나19
- 쿰벵
- 5.18 #광주항쟁 #기억 #역사연구
- 산업재해 #코로나시국
- 쿰벵 #총선
- 시대의어둠을넘어
- 죽음을넘어
- 심아진 #도깨비 #미니픽션 #유지안
- 518광주민주화운동 #임을위한행진곡
- 임계장 #노동법 #갑질
- 김민조 #기록의 기술 #세월호 #0set Project
- 공공보건의료 #코로나19
- 한상원
- 애도의애도를위하여 #진태원
- 보건의료
- 미니픽션 #한 사람 #심아진 #유지안
- 항구의사랑
- Today
- Total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사랑 그리고 사랑 본문
사랑 그리고 사랑
<젤리피쉬>(벤 웨더릴 작, 민새롬 연출)
김소연
연극평론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한참 화제가 되고 있던 때였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주인공과 그녀가 맡은 사건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는 호평이 주를 이루었다. 우영우로 분한 박은빈에 대한 찬사도 빠지지 않았다.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그런 호평들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을 짧은 메모로 내 SNS에 올렸었다. “비장애인 배우의 장애인 연기는 어쩌면 실재 우리 이웃으로 살고 있는 현실의 장애인을 지운 채, 비장애인들이 생각하는 장애인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평소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메모장이나 다름없는 내 SNS에 뜨거운 반응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 드라마를 즐겁게 보면서도 불편했던 점이 무엇인지 명확해졌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배우와 역할을 왜 일치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혹은 비판도 있었다.
비장애인 배우의 장애인 연기에 대한 짧은 메모가 이렇게 격렬한 반응을 불러올지는 미처 몰랐다. 현대공연예술에서 ‘몸’은 표현과 재현의 도구 혹은 매체를 넘어 존재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양식과 의미에 대한 논의가 이미 풍성하다. 그런 점에서 ‘장애’는 몸에 대한 질문을 파고드는 매우 중요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도리어 이러한 현대예술의 관심이 장애에 대한 미학적 착취는 아닌가 하는 질문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현재의 쟁점이다. 그런데 여전히 이런 논의는 현대공연예술만을 맴돌고 있는 것일까.
<젤리피쉬>는 다운증후군 장애가 있는 켈리가 사랑에 빠지고 임신과 출산을 겪는 이야기다. 엄마 아그네스는 켈리의 연인 닐이 비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사랑을 미성숙한 장애인에 대한 가스라이팅이나 성폭력으로 의심하고 저신장 장애가 있는 도미닉을 켈리에게 소개시키려고 한다. 한편 켈리의 연인 닐은 소아성애자, 변태성욕자라는 주변의 경멸에 시달리다가 직장을 그만둔다. 켈리와 닐이 떠난 여행에서 더블베드룸을 예약했음에도 호텔의 매니저는 당연하다는 듯 트윈베드룸의 열쇠를 건넨다. 그리고 그녀의 임신은 의학적으로 관리되어야 할 사례다. 누구에게나 사랑, 임신 그리고 출산은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은 사건이다. 그런데 다운증후군 장애인인 켈리가 겪는 폭풍은 사랑과 임신에서 비롯된다기보다는 그녀가 사랑과 임신에 진입하는 것을 막는 편견과 제도와의 싸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켈리는 사랑을 지키고, 아이를 지킨다. 닐은 그녀와 함께 있고, 아그네스는 켈리의 선택을 동의하지 않지만 그녀를 돕고, 도미닉은 켈리의 친구가 된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의 이야기이면서, 그러나 끝내 사랑 이야기에 도착한다.
희곡은 영국의 극작가 벤 웨더릴(Ben Weaterill)이 썼다. 벤 웨더릴은 집필을 시작할 때부터 다운증후군 배우인 사라 고디(Sarah Gordy)를 켈리 역으로 두고 썼다고 한다. 희곡의 대사는 짧은 문장으로 전개되는데, 이 또한 상연을 염두에 둔 희곡 쓰기이다. 도리어 단문으로 이어지는 대화가 서브텍스트를 깊게 품으면서 인물과 관계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사라 고디는 텔레비전 시리즈, 연극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부시극장 초연에서 사라 고디가 켈리를 연기하고 연극의 성공으로 영국 내셔널씨어터에서 다시 공연되었다.
이 희곡의 한국공연에서 가장 큰 난관은 다운증후군 배우를 찾는 일이었다고 한다. 사라 고디처럼 매체를 넘나들면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다운증후군 배우는 아직 한국에는 없다. 그렇다고 비장애인 배우를 선택할 수도 없다. 켈리의 대사와 행동은 다운증후군 장애인들의 말투, 행동방식에서 쌓아 올려진 것이다. 켈리 역을 맡은 백지윤 배우는 다운증후군 장애를 가지고 있다. 발레 등 공연 활동을 했지만, 연극은 이번이 첫 무대다.
이 새로운 시도를 위해 지난해 쇼케이스에서는 여러 장치를 두었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 관객들이 입장할 때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무대 위에 올라와 눈빛과 터치를 이어가는 놀이를 벌였다. 무대 위에서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서다. 장면이 전환할 때면 배우들은 역할을 벗고 서로를 격려하고 연출가도 무대에 올라와 진행 상황을 체크한다. 다음 장면을 준비하는 이러한 모습은 암전 없이 관객들에게 노출된다. 그리고 프롬프터. 배우들에게 대사를 읽어주는 프롬프터는 무대 아래 가리운 공간에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공연에서는 무대 주변의 프롬프터가 그대로 노출된다. 켈리의 동선에 따라 미리 프롬프터도 무대 주변을 이동하고 켈리의 대사 진행을 살피면서 대사를 불러준다. 프롬프터의 목소리가 강조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리어지지도 않는다. 지난해 쇼케이스에서는 연극의 시작에 앞서 연출이 나와 관객들에게 연습실을 그대로 옮겨놓았다는 소개가 있었다. 다소 낯설 수 있는 연극의 진행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리라.
본 공연으로 오른 이번 무대에서도 이러한 선택들은 그대로 이어졌다. 백지윤 배우를 위한 보조적 장치에 머물지 않고 켈리와 켈리의 이야기를 더 풍성하고 깊이 있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지윤 배우의 켈리는 흔히 기대하는 완벽한 변신의 연기와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연기는 변신술이 아니며 인물의 창조는 배우 자신을 지운 하얀 도화지에 그리는 그림이 아니다. 백지윤의 연기에서 ‘사이’는 드라마의 빈틈이 아니다. 프롬프터가 대사를 불러주는 ‘사이’마저도 그렇다.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분투의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다운증후군 장애인의 말하기나 행동의 특징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 역시 선택하고 행동하는 분투의 시간이라고 해서 그것을 꽉 찬 긴장으로 뿜어내지는 않는다. 무대 위의 켈리는 우리의 모습으로 더 당겨진다. 물론, 그 사이의 긴장이 백지윤의 연기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함께 만드는 것이다. 연극은 드라마의 진행과 드라마를 만들고 있는 과정을 겹쳐놓음으로써 때로 드라마를 벗어나는 시간들마저도 품고 있다. 그런데 함께 도우며 만들고 있는 과정을 겹쳐놓음으로써, 연극은 사랑 이야기에서 출발하고 다시 사랑 이야기에 도착하는 켈리의 이야기와 포개진다. 켈리가 자신의 사랑을, 아이를 지키는 것은 켈리 혼자서 이루는 것은 아니다. 아그네스와 닐과 도미닉과 더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아그네스의 사랑도 또 다른 도착에 이른다. “켈리 너에게 동의하지 않지만, 나는 너를 도울 거야.”
'8면 > 연극비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또 다른 이가 나타나 카메라를 켜고 (0) | 2025.03.05 |
---|---|
위대한 사진 한 장과 기억의 노래 (1) | 2024.12.28 |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 이야기 (6) | 2024.11.08 |
너에게 가닿아 나를 알기 (3) | 2024.10.16 |
돌봄 노동자들의 노래, 우리는 퀸 (2) | 2024.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