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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변증법에 대한 믿음과 계급의식으로 전치된 윤리 본문
변증법에 대한 믿음과 계급의식으로 전치된 윤리
- 죄르지 루카치 저, 박정호·조만영 역, 『역사와 계급의식』 거름, 2005. 제1장~제2장
염동규(문학평론가)
지난호에 실린 『역사와 계급의식』 에 대한 서평은 이 책의 규모와 의의에 비해 너무나 압축적이어서 아쉬움이 컸다. 감사하게도 본지 편집부가 이번 학기 내내 『역사와 계급의식』을 다뤄볼 것을 허락해주어, 한 학기 동안 이 책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상세히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다루게 될 부분은 「1장: 정통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과 「2장: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로자 룩셈부르크」이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질정을 바란다.
루카치는 ‘정통’ 맑스주의에 가해지는 교조주의의 혐의를 거부하면서 책의 첫 장을 연다. 맑스주의의 ‘비판자’들은, 맑스주의의 저작들이 현대의 연구에 의해 이미 극복된 낡은 저작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인정하지 않은 채 ‘정통 맑스주의’를 운운하는 이들을 교조주의자라고 비난한다. ‘정통 맑스주의’에 대한 루카치의 논변은 바로 이러한 비판에 대한 반박이다. 이 반박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맑스, 엥겔스의 정신에 따른 변증법에 대한 과학적 확신이다. 자연과학적 방법이 직접적으로 주어진 사실에만 ‘정태적으로’ 의존하여, ‘표상’만을 건져낼 수 있는 반면, 변증법적 방법은 본질적으로 역사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사실들의 내적 구조를 파악하여 ‘개념’을 얻어낸다. ‘현상’을 그 직접성에서 분리하여 ‘동태적으로’(변증법을 공부할 때는 언제나 이 ‘동태적 파악’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하는데, 여기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모순’의 개념이다. 간단히만 말해 세계의 어디에나 있는 모순은 사물들 혹은 사물 내에서 ‘대립’되는 측면들이 상호 ‘능동’적 관계를 성립시키는 것을 일컫는다), 역사적 ‘총체성’ 속에서 파악하면 그것을 ‘핵심’에, ‘본질’에 매개시킬 수 있고 마침내 필연적인 현상형태, 즉 ‘개념’을 얻게 된다. 이러한 방법적 확신은 역사와 계급의식의 모든 챕터를 관통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변증법은 숙명론에도, ‘주의주의’에도 빠지지 않게 하는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무기로서, 이론과 실천, 주체와 객체의 통일(그러므로 변증법은 인간사회에 대한(about) 지식이 아니라 “인간사회가 스스로를 알게 되는 것”이다)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이므로, 이를 부인하거나 모르는 부르주아 과학의 신봉자들과 속류 맑스주의자들은 강하게 비판되는 반면, 특히 2장에서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열렬한 고평이 이루어진다.
1~2장에서 이루어지는 루카치의 논의를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말한 변증법과 더불어 이와 결부된 것으로서의 ‘윤리적 사고 비판’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루카치는 “인간의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독일 이데올로기』의 유명한 명제를 인용하면서, 존재의 핵심은 인간 활동의 산물인 사회적 사건에 있다고 말한다. 루카치에 의하면 이와 같은 파악에 실패한 채, 존재를 “순수한 자연적 관계 또는 자연적 관계로 신비화된 사회적 형태”로 이해하면 인간에게 그것은 “고정되고 완결되어 본질적으로는 불변적인 소여”가 될 따름이다. ‘윤리학’은 바로 이때 출현한다. 우리의 존재가,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가 변혁될 수 없는 영원한 자연으로 드러나는 한, 이른바 실천의 가능성이란 한갓된 개인의 의식 문제로 뒤바뀌어질 따름(잘 돼봐야 이것은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를 향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윤리적 노동의 서사로 귀착될 뿐이다)이라는 것이다. 루카치에게는 바로 이것이 부르주아 사상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였고, 이에 맞서 사회적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인식이 가능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 “자본주의의 영속적인 위기의 산물인 동시에 자본주의를 위기로 몰고 가는 경향의 집행인”인 프롤레타리아트 계급만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객체(주체와 객체의 변증법적 통일)로 여겨졌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루카치가 ‘윤리’ 자체를 거부해버렸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로자 룩셈부르크에게 있어서의 당과 혁명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루카치는 ‘윤리적 사고’에 대한 앞선 비판을 되풀이하는 동시에 그것을 ‘계급의식’ 개념으로 전치시킨다: “계급의식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윤리’이며 그들의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고 그들의 해방투쟁의 경제적 필연성이 변증법적 자유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이렇게 본다면 루카치에게 있어서 ‘윤리’란 기각되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과정에 매개된 채 ‘계급의식’ 개념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것을 담지하는 조직적 기관이 바로 ‘당’이다. 계급의식과 ‘당’ 개념은 “자본주의의 몰락에 대한 확신”을 전제하는데, 이미 살펴본 대로 개념 자체가 역사적 과정에 매개된 것으로서 성립하는 것이니만큼, 루카치의 논변이 품고 있는 믿음의 차원을 단순히 주관적인 것으로 기각시키지 않는 것이야말로 루카치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핵심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단지 객관적 법칙에 대한 수동적 의탁(依託) 같은 것도 아닌데,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2장의 가장 감동적인 문장을 인용해봄으로써 글을 마치도록 한다: “이른바 종교적 믿음이란, 여기서는 모든 일시적인 패배나 반동인데도 역사의 과정은 우리들의 행위 속에서, 우리들의 행위를 통하여 자기 길을 끝까지 간다는 방법적인 확신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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