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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분노를 조직하기,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기 본문
대학원 시절 내내 함께했던 신문사를 떠나며 쓰게 되는 마지막 글을 작성하려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전의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신문사를 다니는 동안 가장 열심히 한 것은 인터뷰와 기사 작성일 텐데, 떠나는 마당에 계속 떠오르는 것은 오히려 지면으로 만났던 글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치열하고도 내밀한 고민을 참 많이도 만났었다.
타인의 죽음에 관한 깊은 애도, 그러나 고통에 압도당하지 않고 지속하기 위한 노력들(2022년 5월호 연극비평 <웃어, 세월호 연극에>)을, 부조리하고 변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분노(2022년 3월호 대학원신문 후기 <‘혁명’할 수 있게 해주소서>)와 그를 바꾸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들(2021년 10월호 고전 읽기 <오늘이 정치경제학개론 과제물의 마감일입니다>)을, 확신도 후회도 선뜻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꿋꿋함들(2022년 6월호 강사칼럼 <우리의 노동이 우리를 배신하지 않기를>&2022년 9월호 강사칼럼 <비나이다 비나이다>)과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와 감사들(2021년 12월호 원우 발언대 <대학원 생활과 인류애의 상관관계>&2022년 9월호 원우발언대 <사랑하는 연구자 선생님들께>)을, 그리고, 평생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겠지만 결국 오늘 하루의 식사를 함께하는 사람들(2020년 11월호 강사칼럼 <엄마는 꽃게탕의 꽃게를 손으로 먹는다>)을 무수히도 만날 수 있었다. 가깝지만 그 심중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때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역사를 가슴 깊이 새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나 또한 <사설>을 쓸 때마다 얼마나 많은 고민들을 토로하며 어쩌면 누구도 궁금하지 않을 내 생각의 경로들을 노출해왔을까. 매달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해당 사안에 대해 과연 제대로 된 분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 내 목소리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까지 참 많이도 고민해왔던 듯하다. 무엇보다 내 안의 문제의식이 전부 소진되어서 구차하게 과거의 기억까지 끌어다 쓰는 것은 아닐까 하는 회의감은 글을 쓸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러나 무력과 회의의 와중에도 간신히 찾은 나의 쓸모가 있다면, 그것은 구태의연한 분노 속에서도 미래를 기대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으리라고 믿는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지만 결국엔 모든 것이 변해있으리라고, 그리고 우리는 먼 미래에 그 시간들을 천천히, 하지만 즐겁게 회상할 수 있는 행복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나의 소망이라기보다도 어떤 결심에 더 가깝다. 계몽의 변증법이 제기한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하더라도 결국 파시즘의 시대는 끝이 났듯, 결코 진보하지 않는 역사 속에서도 늘 우리를 비추는 빛이 있다고 믿고 싶다. 그렇기에 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2022.02.24.~)과 이태원 참사(2022.10.29.~)의 비극을 통과하면서도 SPC 노사 협약 체결(2022.11.03.)을 기뻐하고 미성년 자녀 둔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불허 위법 판단(2022.11.24.)을 반기려 한다.
대학원신문이 87년에 창간하여 35주년을 맞이하게 된 지금, “어머, 대학원 신문이 아직 남아있어요? 너무 반갑다.”라고 말을 건네주시곤 하는 그 순간들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저마다의 이유로 이곳에 모여 또 저마다의 선택에 따라 흩어지게 될 이들과 마주칠 수 있었던 찰나의 우연에 감사드리며, 이곳에 모인 모두가 분노하되 냉소하지 않는 삶을 이어가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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