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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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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사설

분노를 조직하기,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기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12. 12. 22:09

대학원 시절 내내 함께했던 신문사를 떠나며 쓰게 되는 마지막 글을 작성하려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전의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신문사를 다니는 동안 가장 열심히 한 것은 인터뷰와 기사 작성일 텐데, 떠나는 마당에 계속 떠오르는 것은 오히려 지면으로 만났던 글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치열하고도 내밀한 고민을 참 많이도 만났었다.

타인의 죽음에 관한 깊은 애도, 그러나 고통에 압도당하지 않고 지속하기 위한 노력들(20225월호 연극비평 <웃어, 세월호 연극에>), 부조리하고 변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분노(20223월호 대학원신문 후기 <‘혁명할 수 있게 해주소서>)와 그를 바꾸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들(202110월호 고전 읽기 <오늘이 정치경제학개론 과제물의 마감일입니다>), 확신도 후회도 선뜻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꿋꿋함들(20226월호 강사칼럼 <우리의 노동이 우리를 배신하지 않기를>&20229월호 강사칼럼 <비나이다 비나이다>)과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와 감사들(202112월호 원우 발언대 <대학원 생활과 인류애의 상관관계>&20229월호 원우발언대 <사랑하는 연구자 선생님들께>), 그리고, 평생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겠지만 결국 오늘 하루의 식사를 함께하는 사람들(202011월호 강사칼럼 <엄마는 꽃게탕의 꽃게를 손으로 먹는다>)을 무수히도 만날 수 있었다. 가깝지만 그 심중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때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역사를 가슴 깊이 새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나 또한 <사설>을 쓸 때마다 얼마나 많은 고민들을 토로하며 어쩌면 누구도 궁금하지 않을 내 생각의 경로들을 노출해왔을까. 매달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해당 사안에 대해 과연 제대로 된 분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 내 목소리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까지 참 많이도 고민해왔던 듯하다. 무엇보다 내 안의 문제의식이 전부 소진되어서 구차하게 과거의 기억까지 끌어다 쓰는 것은 아닐까 하는 회의감은 글을 쓸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러나 무력과 회의의 와중에도 간신히 찾은 나의 쓸모가 있다면, 그것은 구태의연한 분노 속에서도 미래를 기대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으리라고 믿는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지만 결국엔 모든 것이 변해있으리라고, 그리고 우리는 먼 미래에 그 시간들을 천천히, 하지만 즐겁게 회상할 수 있는 행복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나의 소망이라기보다도 어떤 결심에 더 가깝다. 󰡔계몽의 변증법󰡕이 제기한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하더라도 결국 파시즘의 시대는 끝이 났듯, 결코 진보하지 않는 역사 속에서도 늘 우리를 비추는 빛이 있다고 믿고 싶다. 그렇기에 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2022.02.24.~)과 이태원 참사(2022.10.29.~)의 비극을 통과하면서도 SPC 노사 협약 체결(2022.11.03.)을 기뻐하고 미성년 자녀 둔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불허 위법 판단(2022.11.24.)을 반기려 한다.

󰡔대학원신문󰡕87년에 창간하여 35주년을 맞이하게 된 지금, “어머, 대학원 신문이 아직 남아있어요? 너무 반갑다.”라고 말을 건네주시곤 하는 그 순간들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저마다의 이유로 이곳에 모여 또 저마다의 선택에 따라 흩어지게 될 이들과 마주칠 수 있었던 찰나의 우연에 감사드리며, 이곳에 모인 모두가 분노하되 냉소하지 않는 삶을 이어가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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