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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어른이 없는 나라에서: 지금 아카이브, <허우적> 본문

8면/연극비평

어른이 없는 나라에서: 지금 아카이브, <허우적>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10. 10. 15:03

어른이 없는 나라에서: 지금 아카이브, <허우적>

 

하은빈

 

교단에 섰던 작자들을 생각한다. 앉아있는 모양만 봐도 처녀인지 아닌지 태가 난다던 선생. ‘부정한여자들의 차림새와 몸매에 관해 불필요하고 장황한 묘사를 늘어놓던 선생. 똥 밟았다고 생각하며 그냥 넘기기에는 한두 사람이 아니었고 하루이틀 일도 아니었다. 수업 시간에 허튼 소리가 시작되면 아이들은 신속하게 시선을 교환하고는 교복과 머리카락 사이에 끼운 줄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거나 교과서 귀퉁이를 찢어 욕을 주고받는 식으로 각자의 불쾌를 감당했다.

 

나는 경멸을 돌돌 말아 감추고 그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였다. 그들이 내어준 것들을 토씨 한 자 빠짐없이 외우고 그들이 출제한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는 아이였다. 그것은 암묵적인 공모 관계였다. 이곳에서 빨리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 공모가 내 안의 무엇을 훼손하건 개의치 않았다. 삶이 시작되지 않았으니까 망가지거나 상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이 아니다. 내가 아직까지 삶이라고 부르지 않은 채 방치해둔 삶의 어떤 구간이 있을 뿐이다. 제대로 이름 붙여진 적 없는 십대의 경험들이 유독한 냄새를 풍기며 거기 고여 있다. 그것들을 조용히 묻는 조건으로 이십대를 보냈으나, 기억을 밀폐하기란 어려운 일이라서 종종 누수가 발생한다.

 

연극 <허우적>의 첫 장면. 집에 물이 샌다. 벽면을 자세히 보니 금이 가 있다. 세입자인 유진과 민서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이는 곧 어른과 대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두 사람은 각자 역할을 나누어 대사를 마련하고 말하기 연습을 하는 등 부단히 애쓰지만, 집주인과 위층 주민을 마주하는 순간 얼어붙어버리거나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이것은 두 사람이 어른을 마주할 때 각자 겪는 반응으로, 이들이 2018년 스쿨 미투 사건을 통과하면서 생겨난 제각기의 증상이다. 맥없이 돌아온 방, 물길은 턱없이 불어나 개울이 되는 듯하더니 급기야는 순식간에 거대한 강을 이룬다. 두 사람은 헤엄을 쳐보려 하지만 발목을 잡아채는 누군가가 자꾸만 물속으로 이들을 끌어당긴다. 누구지? 이들은 어른거리는 흐린 형상을 알아보려 애쓴다.

 

그리하여 나란히 들여다보는 것은 물속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 이들이 함께 지나온 2018년은 일련의 언어적물리적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시작은 대자보다. 어느 날 민서가 붙인, 학교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대자보. 그곳에 사람들이 옥신각신 포스트잇을 덧댐에 따라 일이 일파만파 커진다. 교무실로 직접 찾아오라는 으름장에 민서가 교무실을 드나들게 되면서 온 학교의 관심과 미움은 민서에게 집중된다. 민서가 뜻을 굽히지 않자 학교와의 갈등은 점차 몇개월에 이르는 구조적인 괴롭힘으로 바뀌어간다. 민서는 매일을 페미’, ‘레즈라는 낙인과 싸우는 투쟁의 나날을 보내고, 단짝 친구인 유진까지 휘말려 들어가, 둘의 일상은 폭력의 중심부에서 마구 출렁인다.

 

민서와 유진에게는 이 거센 곤경의 급류를 헤쳐 나갈 도리가 없다. 그 어떤 어른도 이들에게 수영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이들에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귀띔해주지 않았고, 이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온당한 언어적 틀을 이들에게 제공하지 않았다(“이것도 스쿨미투라고 쳐주나?”). 이들에게 가능한 일은 꼼짝없이 물살 속으로 잠겨 들어가는 것, 그 안에서 맹렬하게 허우적거리는 것뿐이다. 이러한 몸의 기억은 이들 몸 깊은 곳에 아로새겨져 두 사람은 성년이 된 이후에도 어른만 맞닥뜨리면 얼어붙거나 눈물을 흘리고 한밤중에 악몽에서 깨서는 목놓아 운다. 훼손되고 손상된 삶. 그것이 그들이 지난날 부조리에 저항한 대가, ‘지금, 여기에 있는 삶이 망가지고 상하는 것을 묵인하지 않았던 대가다.

 

기억을 되짚던 두 사람은 같은 시간 속에서 서로의 경험과 입장이 조금씩 틀어져 있음을 발견한다. 그 모든 시간을 함께 했음에도 서로가 몰랐던 이야기들이 새로이 굴러나오고, 생각보다 많은 영역에서 이들은 서로와 포개지지 않는다. 대화의 초점은 곧 당시 이들이 서로에게서 느꼈던 감정으로 옮겨간다. 민서가 유진에게 말한다. “근데 좀 원망스러웠어.” 유진도 민서에게 말한다. “근데 좀 버거웠어.” 민서는 유진이 그 모든 일을 잊고 싶어 하는 것에 충격을 받고, 유진은 민서가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떠나보내지 않는 것에 화를 낸다. 두 사람은 한동안 다툰다. 손은 서로의 발목을 잡은 채다. 이 괴로운 몸부림의 원인이 서로라는 듯이, 자신의 발목을 낚아챈 손이 바로 상대방의 것이라는 듯이.

 

그러나 이들은 실로 현명하기도 해서, 금방 자신들을 감정의 파도에서 놓아줄 질문을 찾아낸다. “그때 너는 뭘 원했어?” 두 사람은 한동안 각자가 품었던 바람과 욕망에 관해 가만히 듣는다. 고백하고 또 경청하는 이 행위는 감정과 기억의 거센 물살에 휩쓸려가지 않게 서로를 붙들어주고, 발이 닿는 뭍으로 몸을 끌어와준다. 나는 이 대화 자체가 그들이 어른들에게 간절히 바랐던, 그러나 어른들에게서 경험하지 못했던 무엇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찍어누르지 않고 질문하는, 꾸짖지 않고 경청하는 어른이 두 사람에게는 없었으므로. 그러나 어른이 없는 나라에서 오로지 서로에게 의지하며 곤경을 지나온 두 사람은, 어른들에게서 한 번도 배운 바 없는 방식으로 대화하며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돌보아준다.

 

텅 비어있던 극장의 벽은 어느덧 두 사람이 붙인 포스트잇으로 빼곡하게 들어차 알록달록해진다. 그 광경은 한때 이들에게 대자보와 그 대자보를 둘러싼 갈등의 이미지였을 것이나, 이제는 바람과 소망의 전시장이 된다. 그 앞에서 민서와 유진이 격하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균형과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리던 몸짓들이 이내 춤에 가까운 무엇이 되어간다. 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헤엄을 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다. 그리하여 극장은 사려깊게 잠시 지어보인다. 어른이 없이 자란 아이들이 마침내 서로를 선생 삼아 삶의 자리를 되찾아가는 장면을.

 

나는 내 앞에 앉은 관객이 조용히 우는 것을 본다. 그는 공연 내도록 숨죽여 우느라 어깨가 크게 들썩이고 있다. 객석 이곳저곳에 앉아 있을 또 다른 민서와 유진을 생각한다. 오늘의 극장이 잠시 그들의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공연에서까지 그들이 구태여 소리 죽여 울 필요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다행히도 크고 경쾌한 음악은 모자라지 않을 만큼 길게 흐르고, 무대에서 민서와 유진 또한 충분히 오래 춤춘다. 어른이 없는 나라에서 스스로 어른이 되어 온 이들이 객석에서 홀가분히 눈물을 훔칠 수 있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