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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딥페이크 성 착취물: 비뚤어진 젠더 의식과 미흡한 제도가 합성된 디지털 성폭력 본문
기획의 변 - 지난 달 텔레그램 메신저를 기반으로 지인의 얼굴과 음란물을 합성하여 유포한 '딥페이크 성 착취물 사건'이 드러나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지난 2019년 'N번방' 사건을 이후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디지털 성폭력에 관해 다양한 쟁점을 톺아보기 위하여 애리조나주립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김정희원 교수를 만나는 한편, 해외 판례와 비교를 통해 국내 형법의 개선방안에 대해 연구하는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홍태석 교수의 글을 함께 묶었다.
딥페이크 성 착취물: 비뚤어진 젠더 의식과 미흡한 제도가 합성된 디지털 성폭력
지난달, 메신저 ‘텔레그램’ 이용자 중 상당수가 지역별, 학교별로 지인들의 사진을 이용해 딥페이크 성 착 취물을 제작·유포한 것으로 드러나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일각에서 는 반복되는 디지털 성폭력과 관련한 입법 공백과 미온적인 처벌 수위 등 정부의 미흡한 대처에 불만을 표하며 신속한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디지털 성폭력이 단순히 기술 발전에 따른 문제가 아니라 이미 사회적으로 만연한 폭력·혐오 문화와 불평등한 젠더 인식 등을 반영한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특히 딥페이크를 활용한 디지털 성폭력의 사회·문화적 원인을 분석하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애리조나주립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김정희원 교수와 만났다.
딥페이크를 이용한 ‘디지털 성폭력’의 특수성
딥페이크(deepfake)란 딥러닝(deep learning)과 페이크(fake)의 합성어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기존 인물의 얼굴이나 신체 부위를 합성한 편집물을 말한다. 최근 개인의 SNS는 물론, 블로그 혹은 공식 홈페이지 등에 게시된 사진을 악용해 딥페이크 성 착취물로 제작·유포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디지털 성범죄의 연장선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먼저 딥페이크를 활용한 성 범죄의 특징은 무엇인지 물었다.
“우선,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에 대해 ‘디지털 성범죄’ 대 신 ‘디지털 성폭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특정 성폭력은 형법상의 명확한 한계와 입법 공백으로 인해 ‘성범죄’로 분류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죠. 현행법에 따르면 딥페이크로 성 착취물을 만들어서 유포하거나, 그럴 목적이 있었음이 입증될 때만 처벌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지인의 사진을 도용해 누드사진과 합성하고 혼자 본다면, 이는 엄연한 성폭력임에도 불구하고 처벌하기 어렵죠. 딥페이크를 이용한 디지털 성폭력의 가장 큰 특징은 사적인 메신저를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특정 포르노 사이트나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하고 유해한 콘텐츠를 삭제하는 등의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관리할 수가 없는 것이죠. 따라서 그 피해 사실과 규모가 잘 드러나지 않고, 플랫폼의 협조가 없으면 적극적인 수사가 어렵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디지털 성범죄는 은밀한 방식의 거대한 다단계로 작동하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링크만 있으면 가입할 수 있고, 딥페이크 제작을 위한 크레딧을 얻기 위해 지인의 사진을 제공하거나 타인을 초대하게 만드는 구조인 거죠. 메신저의 문제도 있지만, 딥페이크 기술 자체가 성폭력 논의에서 논점을 흐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딥페이크 성 착취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인의 얼굴과 함께 익명화되고 ‘파편화’된 몸이 합성된 형태입니다. 이를 두고 실제 촬영물이 아니기 때문에 성폭력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죠. 그런데 딥페이크에 등장하는 몸 역시 ‘훔쳐 온’ 이미지입니다. 합성되고 가공된 이미지일지라도 분명히 성폭력의 한 형태이고, 개인의 인격권을 완벽하게 침해하는 것입니다.”
불평등한 젠더 의식이 발전시킨 기술의 이면
디지털 성폭력이 증가하는 현상에 대해 일각에선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닌 ‘이용하는 사람의 문제일 뿐’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디지털 성폭력 문제와 기술 그 자체를 별개로 볼 수 있는지, 둘 사이 의 관계성에 대해 물었다.
“최근 한덕수 국무총리는 딥페이크 성 착취물이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 “SNS의 발달이 비정상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기술의 사회적 영향력을 무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의 사용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세상은 헤게모니의 영향권 아래에서 작동하고 있고, 현대사회가 자본주의, 가부장제, 성차별주의, 이성애 중심주의, 비장애 중심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죠. 즉, 기술 자체가 이미 비대칭적 인 성별 질서에 기반해서 개발되었고, 그 불평등에 영향을 받으며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구글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텍스트 검색만을 지원했는데, 지금처럼 이미지가 자동으로 뜨는 형태가 아니었습니다. 원하는 이미지가 있으면 사이트에 일일이 접속해 찾아보아야 했던 것 이죠. 그런데 한 여성 연예인이 파격적인 드레스를 입고 시상식에 등장하자, 해당 사진을 검색하려던 이용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검색창에 이미지가 자동으로 연동되게끔 시스템이 바뀌게 되 었습니다. 또한, 인터넷 도입 초장기에는 게시판을 기반으로 하는 유즈넷(Usenet)이 성행했는데, 당시 업로드된 이미지의 80% 이상이 성적인 이미지였고, 이는 P2P(peer-to-peer network) 시기로도 이어졌죠. 즉,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이 성 착취물의 확산과 맞물려 일어났고, 비대칭적이고 성차별적인 문화가 여과 없이 반영 되어온 것입니다. 2023년 미국의 한 보안 업체에서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딥페이크 콘텐츠의 98%가 성 착취물이고, 음란물의 경우 피해자 가 여성인 경우가 99%였을 뿐 아니라 그 등장인물 53%가 한국 배우와 가수였습니다. 이처럼 딥페이크 기술이 압도적으로 음란물, 또는 성 착취물 제작을 위해 쓰이고 있는 것으로 본다면, 기술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식의 논리는 크게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복되는 디지털 성폭력, 고착되고 있는 위험한 젠더 인식
한국 사회에서는 2019년 일명 ‘N번방’ 사건으로 디지털 성폭력 이 한 차례 공론화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딥페이크 성 착취물의 피해 규모는 커졌으며,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가 아닌 가해자의 가 까운 지인이 대다수라는 점에서 충격을 자아내고 있다. 딥페이크 를 이용한 디지털 성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어떠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저는 최근 딥페이크와 디지털 성폭력 문제를 ‘남성성의 위기’와도 연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인셀 (Involuntary celibacy, 비자발적인 금욕자)’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데요. 극단적 여성 혐오주의자들이 여성을 상대로 총기 난사 등 잔혹하고 무차별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현상을 두고 ‘남성성의 위기’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딥페이크 성 착취물을 통해 본다면, 한국의 젠더 문제는 이러한 ‘남성성의 위기’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먼저, 가해자들의 나이와 사회적 지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인셀은 대부분 20대 이상의 성인으로, 어린 시절 여성들에게 거절당한 트라우마를 안고 고립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올해 검거된 피의자 중 83%가 10대이고, 그중 촉법소년이 17%이며, 이들은 평소 교우 관계가 원만했죠. 가해자 대다수가 10대라는 점은 지금 논의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주목할 점은 지인뿐 아니라 가족까지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진행한 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74%가 딥페이크 음란물을 보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답한 동시에 가족이 그 소재가 되는 것은 굉장히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는 여성을 ‘성녀’ 또는 ‘창녀’로 구분하는 기존의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를 잘 보여주는 예시로, 가족과 같이 성적인 영역에서 제외된 여성(‘성녀’)이 아니라면 언제든지 성적인 행위가 가능하다고(‘창녀’) 판단하는 관습적인 이중 잣대인 거 죠. 그런데 이번 딥페이크 성 착취물 사건들을 보면 평소에 잘 지내던 학교 선생님, 여성 형제, 심지어 어머니까지 피해자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남성들이 충분한 성교육을 받거나, 심지어 관습화 된 여성에 대한 이중 잣대마저 터득하기 전에 온라인으로 여성 혐오의 방법을 손쉽게 접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를 비뚤어진 남성성의 형성이라는 문제로도 볼 수 있는데요. 단순히 여성들이 조심하고, SNS에 사진을 올리지 않는 등 처신의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나의 성적 욕구를 위해서라면 아주 가까운 여성이나 친지까지도 대상화·파편화·성애화해도 된다는 인식을 통해 아주 근본적인 수준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제도적 공백에도 미온적인 정부의 대응
일각에서는 디지털 성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로 제도적 차원 의 노력과 처벌이 미약하다는 점을 꼽기도 한다. 디지털 성폭력 수사 시 함정 수사를 강화한다거나, 성폭력 등에 한해 촉법소년의 연령대 등을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현재 디지털 성폭력 관련 예방책은 어느 수준으로 마련되어 있으며, 이에 대한 현 정부의 입장은 무엇일까.
“얼마 전, 여당 대표가 “딥페이크 기술을 악용하는 것도 인간이 고 막는 것도 인간”이라며 “과잉규제도 문제”라고 발언한 바 있죠. 이는 정부가 디지털 성폭력의 확산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러다 보니 정부 예산 삭감, 여성가족부의 권한 등 피해를 예방·구제하려는 노력에 제약이 걸리게 되는 것이죠. 예컨대 내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 대응 예산’은 8억 4,100 만원으로 올해보다 31.5% 감액되었고, 불법 촬영물 삭제 지원 등을 지원하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내년 예산 역시 9억5천여만원 삭감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러한 문제는 각 부처 간의 공조가 정말 중요한데, 태스크포스(TF)만 꾸리고 처벌 이외의 장기적 방안에 대해서는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 상황이기도 하죠. 한편, SNS에서는 플랫폼 사업자만이 모든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기업이 사회적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텔레그램 역시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요. 국내법의 영향 아래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공공기관의 조사에 협조하도록 강제하거나, 지속적인 모니터 링 또는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도록 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미 국의 경우 주 정부가 연합해 META(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모회 사)에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는데, 서비스를 이용하는 청소년에게 해로운 콘텐츠를 제공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결국 META는 10대 전용 서비스를 대폭 수정하겠다고 발표했고, 미국은 자국 기업의 수익 매출에 손해가 날지언정 이들을 통제하 고자 했죠. 그러나 한국에서는 텔레그램에 소송을 걸게 된다면 국내 기업에 대한 통제도 가해야 하기 때문에 국내 기업에 대한 형평성이 떨어지게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다국적 기업인 텔레그램을 제재하기 전에 국내 기업을 먼저 통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만약 국가가 10대와 여성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기업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통제를 시도해야 합니다. 지금은 국내 기업의 매출과 기술 발전을 위해서라면 여성들을 어디까지나 대상화하고 착취해도 된다며 방관하고 있을 뿐입니다. 결국, 민주적인 논의 과정을 거쳐서 모두에게 적절한 규제와 법률을 마련 해야 합니다.”
디지털 성폭력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성교육의 필요성
한국 사회에 만연해진 성 착취 문화의 근본적인 원인을 미흡한 성교육으로 꼽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바른 성 인식을 형성하기 위해 향후 성교육은 어떠한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나아가 디지털 성폭력을 예방하려면 우리 사회가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물었다.
“피해자가 누구든 상관없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디지털 성폭력을 저지르는 것은 쾌락과 권력욕을 한 번에 충족시켜주기에 자발적인 성찰을 통해 해결하기가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사회적인 압력과 훈육이 중요한 문제인데, 현재 한국은 성교육 커리큘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2015년 정부에서 6억 원의 예산을 들여 제작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는 ‘여성은 무드에 약하고 남성은 누드에 약하다’든가 성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이성과 단둘이 있지 말 것’이라고 적혀 있죠. 이 표준안은 시민사회 의 비판을 받아 수정하겠다고 했지만, 잠정 폐기된 뒤 현재는 정부 단위의 성교육 표준안이 운영되고 있지 않습니다. 유일한 가이드라인은 15시간 교육 의무를 정해둔 것으로, 사실상 시간만 채우면 되는 형태입니다. 즉, 성교육 자체가 불건전하다거나 아이들의 ‘조기 성 성숙’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교육 내용을 충실히 진행하지 않은 채 형식적인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은 것 이죠. 실제로 한국의 사례가 외국 뉴스에서도 자주 나오고 있고, 한국은 디지털 성폭력의 낙원처럼 인식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미 디지털 성폭력은 심각한 사회·문화적 문제가 되었고, 아 이들은 건강한 성 관념을 확립하기도 전에 성적인 콘텐츠에 쉽게 노출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이들이 ‘성’을 단순히 놀이로 생각하 지 않고 바람직한 성 이해를 확립할 수 있도록 충분하고 심층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많은 서구 국가에서 하듯 즐겁게 관계 맺는 법, 서로를 존중하면서 쾌락을 느끼는 법에 대해 스스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성차별과 성폭력, 여성 혐오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문제로 이를 완벽히 해결한 국가는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많은 변화를 이루어 왔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100년 전만 해도 여성은 너무 감정적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며 투표권을 금지당했지만, 70여 년의 투쟁 끝에 지금은 여성 참정권이 매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죠. 디지털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 기 위한 길은 길고 험난한 싸움이 되겠지만, 결국에는 해낼 것입니다. 오래 걸리더라도 기운을 잃지 맙시다.”
■ 이수진 기자 susuleemasuri@gmail.com
■ 정재훈 기자 wjd8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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