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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미디어 ‘정치’ 속에서 퀴어 코드를 조명하는 법 본문
3면 쟁점 인터뷰_성상민 문화평론가
기획의 변 - 최근 정치권에서 들려오는 발언이나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의 등을 참고해 본다면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서 퀴어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만연한 것으로 보이며, 퀴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에 최근 개봉한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등이 흥행하면서 대중 매체 속 퀴어는 점점 가시화되고 때로는 전면화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에 본지에서는 대중 매체 속에서 퀴어와 퀴어 코드의 유행이 지니는 사회적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성상민 문화평론가의 인터뷰를 실었고, 당사자가 바라보는 미디어 속 퀴어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심기용 활동가의 말을 한데 묶었다.
미디어 ‘정치’ 속에서 퀴어 코드를 조명하는 법
지난 10월 2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종생 총무와 만나 차별금지법의 제정에 대해 “먹고 사는 문제들이 충분히 해결되는 게 지금은 더 급선무”라며 “충분히 논의하고 사회적인 대화·타협이 충분히 성숙된 다음에 논의해도 되겠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 사회가 다양한 성적 지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문화예술계 전반에서는 성소수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다양한 콘텐츠가 등장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다큐멘터리 《모두의 패밀리》,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과 <딸에 대하여> 등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 중 몇 작품은 흥행을 거두며 퀴어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이끌어 냈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으나, 여전히 미디어의 성소수자 재현 방식이 다소 정형화되었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대중 매체에서 성소수자가 등장한 약사를 살피고 이러한 현상이 사회에 보여주는 의미를 심층적으로 파악해 보기 위해 성상민 문화평론가와 만났다.
한국 대중 매체 속 성소수자의 등장과 발전
‘퀴어(Queer)’란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포괄적인 단어로 사용되며, 동성애·양성애·무성애·트렌스젠더 등을 폭넓게 일컫고, ‘퀴어 코드(Queer Code)’는 대중 매체에서 성소수자임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추측할 만한 여지를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 대중 매체에서 퀴어 코드가 처음 등장한 배경은 무엇이었으며, 그 재현 양상은 어떻게 변화해왔을까.
“한국 대중문화에서 성소수자의 등장은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집니다. 소설가 이효석이 1939년 발표한 『화분』을 우선 주목해 볼수 있는데요. 『화분』은 한 부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입니다. 남편이 부인 이외의 동성 애인을 두고 있고, 이를 둘러싼 각종 사건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동성 간의 로맨스, 불륜 등이 등장하죠. 이 소설은 1970년대 들어 하길종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영화와 원작 모두 굉장히 끈적하고 다양한 로맨스로 묘사되지만 그들의 ‘사랑’ 그 자체를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일그러진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 위한 철학적 수단으로 사용되었죠. 그렇기에 이를 사후적으로 현대에서 퀴어 코드가 있다고 해석할 수는 있지만 당시에 작품을 집필, 촬영할 때에 이러한 요소까지 고려했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와 더불어 1970년대 남성 희극인들이 여성 분장을 하고 대중 매체에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남성이 여성 역할까지 맡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곤 했습니다. 이때 남성과 남성, 혹은 남성과 여성(분장을 한 남성)이 만나 사랑을 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죠. 물론, ‘남성의 일’로 인식되고 있었던 대장장이, 이발사 등의 직업을 ‘여성(의모습을 한 남성)’이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은 긍정적으로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이후에도 대중 문화 전반에서 성소수자가 등장하고 있지만, 퀴어를 이상한 사람(변태 등)으로 묘사하거나 코믹한 요소를 첨가하는 등 이미 특정한 이미지로 굳어진 상황입니다. 한편, 퀴어적 지향성은 ‘정욕이 넘치다 못해 동성애까지 하는’ 등 권력과 욕망을 과도하게 표출하는 것으로 그려지기도 하는데, 이는 결국 악역에게 부여하는 하나의 특징으로서 퀴어 요소를 첨가하는 방식입니다. 즉 남성과 여성이 연애를 하는 게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퀴어란, 이질적 특성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이죠.
오늘날 정서와 비슷한 퀴어 코드가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이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4년 개봉한 이훈 감독의 영화 <마스카라>를 예시로 들면 이 영화는 국내 최초의 커밍아웃 트랜스 젠더인 배우 하지나 씨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인데, MTF(Male to Female,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성전환을 선택한 트랜스 젠더) 여성이 강간을 당하고 그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내용입니다. 1996년 개봉한 박재호 감독의 <내일로 흐르는 강> 역시 성소수자를 내세운 영화 중
하나입니다. 이 영화는 6·25 전쟁의 고통으로 가족의 상실을 겪은 인물, 학생운동에 헌신 후 고향으로 피신하는 운동권 학생 등의인물이 등장하는 등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30대 중반에 성정체성을 깨달아 게이바에 방문하는 주인공이 등장하죠. TV 드라마로는 1996년 방영한 《남자셋 여자셋》에서 쁘아송(홍석천 분)이라는 인물이 있는데요. 쁘아송이 커밍아웃한 게이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캐릭터 특성상 그러한 ‘뉘앙스’를 풍깁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2005년 개봉한 <왕의 남자>가, 2010년 방영한 SBS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양태섭, 김경수라는 게이 커플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MBC 《개인의 취향》 속 최도빈, 《커피프린스 1호점》 속 최한결 등 1990년대 이후로 퀴어 코드를 포함한 작품이 대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성소수자를 다루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1990년대 들어 성소수자가 대중문화 전반에 등장할 수 있는 여건과 함께 더 깊이 있는 서사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봅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 과정이 대중 매체만의 영향력이라기보단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와 같은 성소수자 단체가 목소리를 내고 운동을 하며 시너지를 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또 호주제 폐지, 페미니즘의 부흥 등 기존의 가부장제 질서를 없애자는등의 사회적 변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함께 맞물린 것이죠. 즉,당사자들의 목소리와 대중 매체가 상호 작동하며 긍정적 결과를이끌어 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형화된 이미지로 ‘만들어진’ 성소수자들
지난달 5일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이 예매 1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는 등 성소수자가 전면에 등장하는 콘텐츠가 흥행을 거두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 외에도 2017년 개봉한 영화 <불한당>은 숨겨진 퀴어 코드를 발견한 팬덤이 만들어져 그에 따른 재조명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렇듯, 퀴어 코드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매체 속 성소수자는 다소 ‘정형화된’ 모습으로 재현된다는 비판 역시 제기되고 있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가진 퀴어를 그려내지 못하고 ‘여성스러운’ 게이, ‘남성스러운’ 레즈비언 등 ‘상상된’고정적인 틀에 가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디어 속 퀴어는 어떻게 표상되어 왔으며,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과거 등장인물의 이질적인 특징으로서 퀴어 코드를 부여해 온 방식은 많이 사라졌지만, 미디어가 다루고 부여하는 성소수자는 여전히 일관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SBS 《인생은 아름다워》 속 홍석천 씨의 캐릭터가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겠는데, 작품에서 그가 동성애자인지에 대한 여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중성적’이고 섬세한 모습을 가진 인물로 그려집니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마음을 모두 이해하고 여자 주인공에겐 ‘안전한’ 남성 친구로서 등장하는 묘사 방식이 사용된 것이죠. 이처럼 ‘친근한 퀴어’의 이미지는 1990년대 이후 표상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미디어가 퀴어를 소비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찾아왔음을 방증합니다.
하지만 새롭게 변주된 캐릭터가 등장했다고 하더라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극적인 눈요깃거리로서 퀴어를 활용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을 조망한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다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어떠한 시각으로 성소수자를 다룰 것인지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LGBTQ+에 대한 짙은 편견을 가지고 있고, 성소수자들은 정당한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죠. 혹자는 그렇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을 조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친근한 퀴어’ 캐릭터는 이미 2000년대 이후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쓰여왔고, 이제 변화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방송 매체 자체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2011년 KBS 단막극 <클럽 빌리티스의 딸들>에는 세 레즈비언 커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이를 두고 몇몇 시민단체들의 항의가 빗발치며 다시 보기 서비스가 중단된 사례가 있습니다. JTBC 《선암여고 탐정단》 역시 동성 간 키스신을 방영했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로부터 경고 처분을 받기도 했죠. 즉, 대중 매체와 방심위 등 미디어는 ‘정치’의 영역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방송 제작사 입장에선 퀴어를 다뤘다가 방심위로부터 징계를 받거나 과도한 항의의 위험을 감안해야 하기에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시청자 의견을 듣기 위한 창구를 개방해야 하는 방송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상당할
것이고, 결국 ‘안전한’ 방송을 제작하게 되는 것이죠.
이때 지상파에 비해 비교적 다양한 퀴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OTT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OTT는 어플을 설치하고, 이용료를 결제해야 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야만 하고, 이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젊은 세대가 주 고객층이죠. 또 퀴어 콘텐츠의 주된 소비층 역시 이와 비슷한데, 퀴어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이들이 퀴어 코드가 포함된 프로그램을 시청할 뿐 아니라 제작할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즉, 소비자로서의 엘라이(Ally,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 연대·지지자)들이 영향력을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OTT라고 하여 퀴어 콘텐츠에 대한 항의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티빙(TVing)에서 공개된 드라마 《대
도시의 사랑법》이 일부 기독교 단체와 학부모들의 항의에 예고편을 비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국내 OTT가 항의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항의 세력 중 실제 서비스 이용자의 비율을 알 수 없는데도 항의를 수용했다는 것이 한국의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엔 BL(Boys Love, 남성 간의 로맨스를 다루는 장르)이 유행하는 등 영화나 드라마를 비롯한 대중 문화 전반에 ‘장르 코드’로서 작용하는 측면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로맨스 장르의 한 갈래이니 이성애의 ‘성 역할’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죠. 물론 방송은 매체의 법칙 안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현실과 완벽하게 동일한 것을 기대할 수는 없겠으나 당사자들의 모습을 더욱 반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갈 때, 다양한 성소수자를 대중 매체에서 조망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더욱 평등한 사회를 위해 미디어가 나아가야 할 방향
박상영 작가와 같이 당사자성을 지닌 문학이 유행하고, 이러한 대중 문화를 향유하는 등 사회 인식은 충분히 진보했다는 의견이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선 차별금지법, 혼인 평등과 같이 제도에선 여전히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퀴어 작품의 증가가 성소수자의 가시화와 긍정적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는지, 이를 위해 미디어가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할지 물었다.
“이재명 야당 대표의 차별금지법에 관한 발언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교적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 더불어민주당 또한 투표에서 기독교 세력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실제 입장과 별개로 계속해서 정치적 현안에 성소수자를 두고 줄다리기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죠.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처음에는 페미니즘 지지하는 여성 창작자를 배제하라고 요구하는 것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맘에 들지 않음’을이유로 일부 시민들이 항의를 지속하고 있죠. 그 결과 GS25, 르노 코리아등 대기업, 다국적 기업들이 그들의 요구를 반드시 들어줘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업이 해외에서는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며 성명을 내기도 합니다. 이는 기업들도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태도를 달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특정 혐오 세력의 요구를 들어주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렇게 해야 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죠.
그렇기에 미디어는 더욱 적극적으로 차별에 반대하고 다양한 성적 지향을 포용한다는 메시지를 표현해야 합니다. 미디어가 당사자들에게 용기를 줄 수도 있고, 공개적으로 퀴어에 대해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공론장 역할도 하는 것이죠. 즉, 단순히 소비되는 매체로서의 입장을 넘어 극명하게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에 대한 선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부의 자정만으론 이러한 선언을 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외부에서의 압박과 정책의 지원 등이 함께 맞물려 유의미한 메시지를 내야 합니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더 보이프렌드》의 경우 게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인데요. 등장인물을 보면 우리가 매체에서 주로 본 모습과는 양상이 다릅니다. 평소에 주변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남자라는 차이점을 제외한다면 일반적인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메시지와 더불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딸에 대하여>와 2014년 개봉한 이송희일 감독의 <야간 비행>, 그리고 2023년 발행된 만화책 『레생보: 레즈비언 생활 보고서』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딸에 대하여>는 어느 날 집으로 들어온 딸과 딸의 동성 애인과 하는 ‘불편한 동거’를, <야간 비행>은 입시라는 사회 모순을 마주한 남성 고등학생을 중심으로, 『레생보』는 사고처럼 사랑에 빠진 두 여성이 서로를 아내라 부르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세 작품 모두 퀴어에 대한 ‘좋은 재현’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꼭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수진 기자 susuleemasuri@gmail.com
■ 정재훈 기자 wjd88899@naver.c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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