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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만약’을 위해 누군가를 외면한다면 본문
‘만약’을 위해 누군가를 외면한다면
지난달 말,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부결되었다.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10여 년간의 투쟁이 겨우 결실을 맺게 될까 하는 부푼 기대감은 윤 각하의 거부권에 휘청였고, 다수의 노동자가 아닌 소수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국회의원들 앞에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 노란봉투법이 제정된다면 헌법상의 기본 권리인기업의 재산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 반대 측의 주요 입장이었다. 기업의 재산이 타인의 육체적·정신적 건강과 시간, 인간성마저 갉아먹으며 축적된 것이라면, 과연 생존과 직결되는 파업권과 동등한 선에서 논의될 자격이나 있는 문제일까. 인간다운 환경에서 노동하며 그에 상응하는 임금을 받을 권리, 그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정당하게 요구할 헌법상의 권리가 지켜져야 한다는 너무나도 상식적인 생각이 오히려 순진무구한 백일몽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노란봉투법의 취지와 내용을 조금이라도 살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한국의 노동법이 지나치게 ‘사용자’ 위주로 돌아가고 있어 법에 명시된 파업권의 범위가 너무나도 제한적이라는 것을. 노란봉투법이 제정되어야 비로소 국제노동기구의 권고 기준에 접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 많은 근거와 비교자료를 들이밀며 호소해왔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노동문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2022년 전국지표조사 결과 노란봉투법 제정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37%, 반대는 40%로 드러났고, 2023년 KBS에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노란봉투법에 대한 의견이 ‘불법 쟁의 행위 조장 등 부정적’이라는 답변이 46.5%로 집계되었다. 그저 ‘노동’이라는 두 글자 자체에 대한 이념적 멸시가 남아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노동 쟁의를 정권에 도전하는 ‘폭동’으로 치부해버리는 오랜 관습이 남아있기 때문일까.
문제는 훨씬 깊이 흐르는 듯하다. 지금 내가 누리는 안락함과 풍요로움이 남들과 ‘공유’될 수 있는 게 아니라 ‘빼앗기게 된다’는 인식, 혹은 그마저도 생각하기 싫은 무관심. 그 편협한 생각을 가리기 위한 포장으로 제시되는 건 주로 제도적인 변화로 인해 또다른 피해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이다. 이는 노동문제이기 때문에 특수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소수자를 대하는 방식이 그저 되풀이되고 있는 것뿐이다. (비종교적인 관점에서)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반대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가 바로 무고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 아니던가. 뭐 일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노란봉투법이 제정된 이후에 정당한 점령과 쟁의의 형태가 아니라 무분별하고 무차별적인 폭력과 파괴만을 일삼는 이가 단 한 명도 생기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의도치 않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만약’을 위해 지금 당장 눈앞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외면하는 일은 무책임한 변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내가 편하기 때문에, 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의 고통은 지속되어도 상관없다는 인식이야말로 노란봉투법을 위한 투쟁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쟁과 제도적 움직임의 불씨가 휘청일지언정 꺼지지는 않기를, 깊이 공감하며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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