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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역사의 참혹함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삶의 눈부심을 쓸 수 없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며 본문

7면/기자 칼럼

“역사의 참혹함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삶의 눈부심을 쓸 수 없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며

Jen25 2024. 11. 8. 00:33

“역사의 참혹함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삶의 눈부심을 쓸 수 없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며

 

20241010, 한강은 한국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들은 한강의 소설을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삶의 연약함을 표현하는 시적 산문이라 평하며 수상 이유를 밝혔다. 그날 밤 나는 한강의 작품을 하나씩 들춰보며, 그가 꾸준히 또 침착하게 이야기 해 왔던 폭력의 반대편을 떠올렸다.

저기 잿빛 눈보라를 뚫고 묵묵히 걸어가는 한 여자가 있다. 갱도 앞에 멈춰 서지만 그것도 잠시. 이윽고 그는 끝이 어딘지도 모르는 굴길 속으로 망설임 없이 들어간다. 그의 뒤를 좇아 온 나는 헤매기 시작한다. 눈이 녹아 발이 다 젖은 채로.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찌를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그 고통과 공포가 점점 더 나를 옥죄어 온다. 그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도대체 무엇을 위해? 피할 수 없는 고통과 공포. 그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끌어안고 있다. 저 깊고 짙은 어둠을 베어내는 한 줄기 빛을 상상하며. “한 문장을 쓰고 한 나절을 울기만 하다가 겨우 진정하고 다시 한 문장을……

해방 정국의 학살과 1980년대 광주에서의 참상. 절멸이 목적이었던 국가와 군부의 폭력. 그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에, 그들이 평생을 걸쳐 수집해 온 자료와 기록에 압도당하며 그는 수많은 죽음과 마주한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고통과 공포. 그럼에도 그는 폭력이 무참히 헤집고 간 흔적을 촘촘히 꿰맨다.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이. 작별하지 않는다의 경하가 제주에 도착해서 4·3사건의 유족인 인선의 어머니를 생각하고, 그가 유년기를 보냈던 곳에서 눈을 맞으며 자신과 그가 막연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던 것처럼. 그는 폭력의 순간들을 다시 더듬어 쓰며, 인간이 저지르는 것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장면들과 자발적으로 연결되고자 한다. 갱도 속에 쌓인 수천 구의 몸들 위에 쌓이는 눈과 지금 우리의 어깨 위에 내리는 눈이 같은 것이 아니라는 법은 없기에. 그런 법은 결코 없어서, 그는 한결같이 말한다. 인간의 가장 연하고 물렁한 부분을 건드리는 총과 칼의 잔혹함을, 그것이 여전히 인간의 목에 겨누어지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음을, 그리고 그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도 인간임을.

그의 작품을 번역해 온 데보라 스미스가 소년이 온다<Human Acts>로 의역했듯, ‘인간이 하는 일은 비정하고 무자비하며, 동시에 나약하기 그지없다. 처절하게 발버둥 쳐도 총에 맞아 떨어지고 칼에 찔려 피투성이가 된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보듬어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나와 연결된 이들의 부르짖음에 우리가 결코 무감각하지 않기를, 우리가 인간이라면, 인간이 범한 폭력과 그로부터 비롯된 상처를 오래 기억하기를, 그 희미한 숨을 함께 나눠 가질 수 있기를, 그런 것들을 바라면서, 그는 줄곧 글을 써 왔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