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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우연한 선택이 만든 삶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본문
우연한 선택이 만든 삶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이수진 기자
요즈음 뉴스를 볼 때면 세상은 너무나 소란한데, 내 주변은 이상하리만큼 차분하다. 이젠 너무나 유명해진 대자보의 시작 문구,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문구가 자연스레 떠오르고 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내 삶은 대체로 ‘우연한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특별한 목적의식이랄 게 없고 그때마다 좋아하는 것들을 골라왔다. 그렇게 만들어진 스물 이후 나의 궤적은 어쩌다 보니 역사전공, 신문사, 시민단체, 그리고 마침내 대학원으로 이어진다. 때때로 앞에 주어진 선택지를 심사숙고하여 고르고, 먼 미래까지 계획하는 지인들을 볼 때면 부러움이 몰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우연히 만난 길에서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찾아옴을 이젠 잘 안다,
우연한 선택 가운데 유난히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 학부 때 역사와 사회를 전공하고 학보사 사회부에서 오래 활동한 경험을 살려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던 와중 마주한 우연한 선택으로 역사 문제를 주로 다루는 시민단체의 박물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시민단체에서 일한다고 소개하면 때때로 이런 질문이 들어올 때도 있었다. “그런 역사 문제는 이미 끝난 것 아니야? 언제까지 사과해야 하는 거야? 어차피 질 재판은 왜 해?” 강제 동원 피해 유족 할머니는 이 질문에 “재판에서 진다고 해서 이 싸움을 멈출 이유가 없고 그 기록 마저 역사가 될 것”이라고 말하셨다.
무엇이 그들을 ‘계란으로 바위치기’ 하는 투쟁으로 이끌었을까? 한 어르신은 내게 ‘아버지가 강제 동원당했다는 사실을 알기 이전’의 삶에 대해 때때로 이야기 해주곤 하셨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난 이후의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해왔고 그것으로 인해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까지 듣다 보면 그 파란만장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우연한 선택이 시민단체 활동가라는 새 지평을 열어 주었다면, 유족들의 우연한 선택은 그들을 수 십년간 투쟁하는 ‘운동가’로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돌아와 ‘돈’과 ‘정치’라는 힘과 무기를 가지고 이들을 쥐락펴락하려는 것을 보고 있자면 ‘안녕들 하냐’고 물을 수밖에 없다. 긴 시간동안 유족들과 활동가들이 해온 투쟁의시간은 무시한 채 ‘좋은 미래’가 있으니 이걸 고르라고 종용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가. 내가 안온한 삶 속에서 좋아하는 것을 찾아 우연한 선택을 할 때, 누군가는 부러 거친 삶을 고르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왜 계속 싸워야 하냐’는 무용한 질문은 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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